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오직 모를 뿐!_동우스님

최고관리자 | 2013.08.07 15:07 | 조회 4131



오직 모를 뿐!

동 우 / 화엄반  

긴장감으로 머리와 손발이 따로 놀던 치문도 지나가고, 등이 타들어 갈 것 같던 사집도 지나가고, 금당 뒷마루에 걸터앉아 금강경 게송을 골똘하게 생각하던 사교도 지나 어느덧 이제 화엄이 되어 제가 차례법문을 하는 날이 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살필 察, 무리 衆 차 도량 내에 풀의 무리를 살피고 있는 작은 찰중, 대교반 동우입니다. 오늘 저는 “오직 모를 뿐”라는 주제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저에게는 지금 이 자리에서 스님이 되어 차례법문을 하게 된 최초의 의문이 있습니다. 바로 “나는 누구인가?”입니다. 제가 자아 정체성을 찾을 무렵 저는 문득 “내가 누구지?” 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 답이 궁금하던 중 윤리 수업 시간에 부처님께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속가 어머니가 보시던 경전을 뒤졌습니다. 그러다 “무비스님의 금강경 오가해” 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지만 사전을 찾아가며 한 두달에 걸쳐 두 번을 읽었습니다. “A는 B다” 처럼 “나는 무엇무엇이다” 라는 정의가 내려져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저는 색즉시공 공즉시색만 무한반복 되어있는 금강경을 덮었고, 경전에는 답이 없다고 단정 지어 버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올라간 저는 문득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지는데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삶의 이유를 느끼지 못했던 저는 높은 산 정상에서 한순간에 먼지처럼 흩어지는 상상을 자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흩어질 散자를 좋아합니다. 허무한 제 마음처럼 육체도 한순간에 허공으로 흩뿌려지기를 바랬나봅니다. 아마 죽는 건 무섭고 사는 건 의미 없으니 적절한 선에서 미화시키는 걸로 타협 한 것이겠지요. 사실 이때 출가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고3이라는 처절한 상황 속에서 현실도피를 하는 건 아닌가 싶어 잠시 접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있다는 인식조차 할 수 없었던 때였기에 내가 누구인지? 왜 살아야하는지? 에 대한 의문은 저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 후 대학에 들어가서 숭산 스님의 책을 읽고 인과법을 알게 되었고, 그 다음날부터 바로 채식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바로 여기에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에 그것을 실천하고자 눈을 육각형으로 부릅뜨고, 이를 앙다물고 땅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다녔습니다. 그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깨어있는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눈을 아무리 부릅떠도 혼란스러울 뿐 제 의문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숭산스님이 오직 모를 뿐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에 “나는 누구인가? 오직 모를 뿐!”을 하면서 가르침대로 모르는 마음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만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템플스테이가 해보고 싶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사찰인 범어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2박 3일간의 템플스테이가 끝나고 거기서 알게 된 어떤 보살님께서 여기 아는 스님이 있으니 같이 차나 마시고 해서 그 인연으로 범어사 스님에게 매주 능엄경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다 머리카락이 너무 답답해 시원하게 삭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제 정리할 때가 온 건가 하는 마음이 들자 스님을 찾아뵙고 출가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 출가 하려고 하는지 물으시기에 “제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라고 대답하자 저에게 너는 욕심도 많고 머리가 나쁘고 결정적으로 너무 못생겨서 안 된다고 못 박으셨습니다. 비구니 스님들이 얼마나 예쁜데 니가 어떻게 출가를 할 수가 있냐며 저기 아무 절이나 가서 평생 무료로 종무소에서 일이나 하다가 다음 생에나 기약해보라며 현기증 나는 소리를 하셨습니다. 그러다 출가하는 일이 수승한 길이지 하시며 칭찬 짧게 한마디 하시고, 다시 구박하고 이렇게 들었다 놨다를 반복 하시더니, 제 눈에서 불꽃이 튀는걸 보시고는 그제 서야 크게 인심 쓰듯 “그래 이리로 출가해라” 고 하셔서 운문사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나태해지려 할 때면 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두 주먹 불끈 쥐고 이를 갈면서 아!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물러터진 제 성격에 분심 나게 해서 출가의지를 굳히시려고 한 것이겠지요. 스님의 깊은 뜻은 감사하지만 평생 한번으로 족한 대화였습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종무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출가할 때의 충격도 충격이지만 그 후 운문사에 살면서 5번의 남는 방학 중 3번을 하시자 소임으로 종무소에서 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못생긴 저는 출가를 한 후 아직도 이 답을 찾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치문 여름부터 시작한 소등 후 한 시간 좌선을 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오직 모를 뿐~, 설거지를 하면서도, 설거지 하는 이것은 누구인가? 오직 모를 뿐~, 감자를 캐는 이것이 무엇인가? 오직 모를 뿐~, 수업시간에도 오직 모를 뿐~ 하면서 말입니다. 오직 모를 뿐! 이 말에서 한마디도 더 나아가지 못했지만 오늘도 저는 예불 모시며 이 의문이 풀리길 간절히 발원합니다.

꿀단지를 들고 가다 떨어뜨려도 그 뿐, 뒤돌아보지 않고 오직 모를 뿐! 대중스님 여러분 정진여일 하십시오. 저도 정진여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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