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행복_혜운스님

최고관리자 | 2013.11.18 13:13 | 조회 3647


행 복

혜운 / 치문반 

하늘은 높고 청명하며, 하루가 다르게 물드는 산빛이 고운 계절, 가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혜운입니다.

오늘 제 법문의 주제는 행복입니다. 도량 한번 거닐어 보셨는지요. 운문사의 가을은 자연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운문사의 가을을 만끽하기까지 지난 두 철을 어렵사리 지나왔던 것 같습니다. 입학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철이 지나갔으니까요. 그렇게 새파랗던 잎사귀들이 노랗고 붉게 물드는 것처럼, 저 또한 알게 모르게 변화가 많이 생겼습니다. 지난 여름방학, 운문사 들어와서 처음으로 방학을 맞아 많은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면서 보내셨습니까? 저는 무엇 때문에 출가를 했는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행복하려고 출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근본적으로, 내 삶을 향상시키려는 욕구가 출가의 동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삶의 본질이 무엇일까 하는 물음도 생겨났습니다. 또 제가 찾는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보통은 행복이라고 하면 아름다운 외모, 돈, 명예, 재물 등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은, 누군가가 나의 가치를 알아주고 관심을 가져준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을 때가 아닐까요? 제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관계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느끼는 것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가령, 제가 아파 지대방에 누워 있다면, 도반스님들이 다가와 건네는 말 한마디는, 아픔의 고통보다 커다란 위로가 되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의 행복을 결정하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의미를 가져다주는가? 둘째, 나와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좋은가? 이 두 가지 질문은 행복을 나타내는 열쇠라고 합니다.

일이 가져다주는 행복이라면, 저는 첫 철 종두소임을 살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소임자로서, 전달사항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던 혀가, 전달사항만 하려하면 왜 그렇게도 꼬이는지... 처음엔 익숙지 않아 참 힘들었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일이 능숙해지면서 함께하는 모든 것들이 감사하게 느껴지고 여유로워졌습니다. 나중엔 몸도 아팠지만, 아픈 줄 모르고 즐겁게 일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몸만 따라준다면, 그 멤버 그대로 다시 뭉쳐 또 살고 싶은 맘도 있을 정도입니다.

결국, 일이 가져다주는 행복 또한, 두번째 질문에서 말했던, 인간관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운문사만 해도 어른스님, 상반스님, 도반스님 오고가는 관광객에 이르기까지 의식하든, 못하든 여러 관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혼자 행복한 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라는 존재는, 특히 치문반으로서 도반스님들이 있기에 저 또한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뒤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를 위해주고 챙겨줍니다. 상처입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서 화를 내는 저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에게 미안해지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늘 강조하셨습니다. ‘인연과 업보를 바로 보아라. 모든 것은 인과 연의 화합으로 생겨나고 인과 연이 흩어지면 자연소멸된다.’ 그 무엇하나 홀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인연의 법칙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나의 마음씨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씨가 곱다 마음씨가 차갑다 등의 말을 자주 쓰는데, 이 마음씨는 마음의 땅에서 심어 놓은 씨앗에서 나온 말인 것 같습니다. 곧 마음 땅에 어떤 씨를 심느냐는 것은 어떤 인을 간직하느냐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을 발하여 좋은 일을 행하면 누가 행복해집니까? 나는 물론 나와 관계한 다른 이들도 함께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연을 잘 가꿔 행복하고자 하는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마음 땅에 좋은 씨를 심어야하겠습니다. 꼭, 돈이나 명예가 아니어도 부처님 법을 잘 깨닫는다면 더없는 맑은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읽고 인상 깊었던 법정 스님의 책 <텅 빈 충만> 가운데 한 구절을 소개하며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텅빈 충만

귀는 대숲을 스쳐오는 바람소리 속에서
맑게 흐르는 산골의 시냇물에서
혹은 숲에서 우지는 새소리에서
비발디나 바하의 가락보다
더 그윽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빈 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충만하다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득 찼을 때보다도
더 충만한 것이다

행복하십시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