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보시바라밀_혜원스님

최고관리자 | 2013.11.18 13:20 | 조회 3859



보 시 바 라 밀

혜원 / 치문반

봄, 여름... 때론 덜익어 화를 내기도 하고 누군가를 한껏 미워했을지라도 이 가을에는 알알이 잘 익은 마음으로 사랑과 자비의 열매를 하나씩 나누며 산다면 좋지 않을까요?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혜원입니다.

육바라밀 가운데 ‘보시바라밀’을 주제로 차례법문 하고자 합니다.

오래 전 학창시절에 쉘 실버스타인의 아름다운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한 그루의 사과나무와 매일 그 나무를 찾아오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나뭇가지에 매달리기도 하고 사과를 따먹기도 하며 놀다가 피곤해지면 나무 그늘에 누워 단잠을 자기도 하였으니, 그런 소년을 보고 나무는 무척이나 행복해 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나무를 찾아온 소년은 돈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열매를 따다 팔면 돈이 생길 거라며 나무는 열매를 내어주었고, 그렇게 해줄 수 있어 나무는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오랜 시간 후에 소년은 청년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결혼을 하는데 집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가지를 전부 잘라내게 했지만 그래도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먼 훗날 소년은 늙고 외로운 노인이 되어 돌아와 피곤해서 조용히 쉴 곳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나무 밑동이 최고라며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었고 둥치만 남았지만 나무는 참 행복했습니다.

이런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이, 부처님께서 몸소 행하시고 증득하신 해탈의 가르침 가운데 보시바라밀이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보시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법보시, 재보시, 무외시보시가 그것입니다.

그 중에 먼저 재보시에 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것은 돈이나 물질로 남을 도와 생명에 활력을 주고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것으로, 이때 준다는 생각이나 상대에 대한 어떤 개념을 가지게 되면 보시한 만큼에 상당하는 복덕은 있으나 공덕은 없다고 합니다. 반대로 상대의 입장이 되어서 주었다는 생각이나 분별하는 마음 없이 보시를 하게 되면 그 과보는 가히 세간법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복덕이 되어 돌아온다고 합니다. 간혹 돈이 생겨 불보살님 전에 얼마를 보시해야겠다고 정했다가도 급한 일이 생겨 다른 곳에 사용한다면 이는 오히려 빚을 지게 되는 것이니, 이와 같은 도리를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두 번째로, 자신이 만물의 근본이며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알게 해주는 법보시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어려울 때 위로하여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말과 진심어린 말, 축원해주는 말을 통해 상대의 입장에서 마음을 함께 하는 것을 법보시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그 거룩한 모습에서 찾을 수 없고, 신으로 변장한 모습을 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내가 만나는 거리의 사람들이나 시장의 상인 등 모든 인연이 불보살님 아님이 없습니다. 상대를 믿지 않거나 마음에 벽을 드리우고 이야기를 한다거나 상대를 대하게 되면 서로가 한마음이 될 수 없고 이것은 진정한 법보시가 될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이 상대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서 그를 나와 같이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이것을 참다운 법보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나’라는 상이나 생각 없이 자성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바 없이 믿고 주는 무외보시가 있습니다.

무외보시의 대표적인 예를 이야기해 드릴까 합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와 함께 탁발 가시는 길에 모래와 흙을 가지고 소꿉장난하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은 모래와 흙을 가지고 집과 창고도 만들고 신발에 담아서는 밥이라고 하며 재미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본 한 아이가, “부처님께 무엇이든 공양할 수 있다고 하던데...”라고 생각하고는 밥이라며 모래를 소복이 담은 신발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키가 너무 작은지라 동생을 엎드리게 하고는 그 위에 올라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그 모래를 아난에게 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래를 가지고 가서 내 방의 허물어진 곳을 바르도록 하여라.” 정사로 돌아와 방을 바르고 나니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아이들 두 명이 환희심으로 모래를 보시하였기에 그 복덕으로 국왕이 되어 삼보를 받들고 여래를 위하여 팔만사천 보탑을 건립할 것이다.” 이에 아난존자가 여쭈었습니다. “어찌하여 한 줌 흙의 인연으로 그와 같은 큰 복덕을 성취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상대를 존경하고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준다는 것 자체가 보시이기에 다함이 없는 도리로서 비록 모래일지라도 보시공덕이 있는 것이다.”

부처님 입멸 후 3백년 뒤 인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임금으로서, 덕이 뛰어나 전쟁을 포기하고 타협과 화합으로 나라를 다스렸던 왕, 역사상 가장 이상적이었던 군주로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아쇼카왕이 바로 그 때 부처님께 모래 공양을 올렸던 소년이라고 합니다.

자기상에 매여 있는 마음을 눈뜨게 하여 깨달은 이가 되게 하고 내생에는 고통에서 해탈하게 하는 길이며 일체가 나 아님이 없다는 한마음을 내어 내 안의 중생도 함께 제도하고 남을 위한 일이 결국은 자신을 제도하는 도리임을 알고 하는 것이야 말로 함이 없는 무주상 보시이자 으뜸의 보시바라밀이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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