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우리에게 행복이란_해성스님

최고관리자 | 2013.11.18 14:58 | 조회 4479


우리에게 행복이란

해성 / 화엄반

안녕하십니까. 화엄반 해성입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지금 이 순간 행복하십니까 아니면 불행하십니까.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물론 저에게도 불행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7년 전, 이름있고 돈 잘버는 회사에 들어가면 행복이 다 보장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욕심이 많아 남들과 비교하며 제 자신에 만족할 수 없었고, 그럴수록 하염없이 작아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만들어가며 불행해했고 또 괴로웠습니다.

그런 저에게 부처님 도량은 그동안의 겉포장을 벗어버리고 순수한 나를 만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머리를 깎고 나니, 매일 머리 손질하고 화장을 해야 할 번거러움 없이 물에 스르륵 고양이 세수만 해도 얼굴에서는 빛이 났고, 더러워도 막 입어도 티 안나는 회색의 고의와 적삼에다 고무신만 신어도 최고의 패션이었기에 이것 저것 신경 쓸 일이 없어 좋았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해보지 못한 일들이 태산 같았지만, 남들과 경쟁할 필요도 없이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단순하게 그냥 열심히 하면 되었기에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너무 편안했습니다.

법당에서 목청껏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날아갈 것처럼 속이 후련했었고, 힘은 어찌나 장사인지 거름푸대는 물론, 쌀포대에 돌부처님까지 불끈불끈 들어 나르며 절에서 힘쓰는 일들은 도맡아 했습니다. 지금껏 살면서 부모님께 얻어만 먹었지 공양 한 번 해드린 적 없었는데, 밥하고 국끓이고 거기에 반찬까지. 공양상을 차리는 제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잘보이고 잘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았기 때문일까요? 작은 일에도 마냥 웃고 즐거워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이처럼 제게 출가는 제 2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었고 관세음보살님처럼 내가 필요로 하는 이가 있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베풀어야겠다는 원도 세우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저의 원을 아셨는지 제겐 베풀어야 할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은사스님께서는 ‘천분의 어머니를 모신다.’ 는 원력으로 복지센터를 시작하셨습니다. 경제력이 있고 후원이 두둑해서 있는 거 그냥 퍼주면 그래도 맘 편히 할 수 있을텐데, 절에 있는 것을 나누고 여기 저기서 후원을 받으러 다녀야했습니다. 절에선 기도부전에 공양주, 온갖 살림을 맡아 하면서도 센터에 내려가면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고 도시락배달을 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회계에 온갖 행정일을 하다 보니 그간 행복은 잊혀져갔습니다.

‘스님은 내가 일만하러 온줄 아시나?’

이런 일들이 제겐 벅차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게 아니라 의무감으로 다가왔고 불만이 쌓여 다시 저를 불행하게 만들어갔습니다.

그때 형님이 들려준 운문사 생활은, 아무리 힘들다고 열변을 토해도 제겐 유토피아였습니다.
‘나와 같은 스님들끼리 모여사는 운문사는 얼마나 좋을까?’
한참 힘들어 하다 오게 된 운문사에서는 모든게 즐거웠고, 행복의 의미를 다시 알게 해주었습니다.

비록 도반들과 함께 하며 때론 얼굴을 붉힌 적도 있었지만 그러면서 내 생각에 가득 차있는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쉬는 날이면 도반들과 이산 저산 찾아다니며 자연을 즐기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옹졸했던 마음이 좀더 넓어지고 삶의 활력소도 찾게 되었습니다. 소임을 살면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치문때 서기를 살면서 내 성격때문에 힘들어하는 회계스님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나의 욕심이 선택의 기로에선 우유부단함으로 나타남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집때는 부반장을 살면서, 먹을 것을 챙겨주며 맛있게 먹는 반스님들을 보며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게 해줬고, 그걸 계기로 작은 별좌까지 살게 되었습니다.

작은부전을 살 때는 좌충우돌에 은근히 사고치고 다니는 제가 아랫반 스님들을 보며 좀 의젓해질 수 있었고, 여름의 화초 소임은 땀 흠뻑 흘리며 잡초를 제거하고 꽃들을 바라보며 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회주스님 시자를 살면서는 짜투리 시간도 허투로 쓰지 않고 항상 여일하게 정진하시는 스님의 모습 보며, 은사스님을 향한 불만이 존경심으로 바뀌어감을 느꼈습니다.

그간 행복을 찾아 헤맸는데, 운문사에서의 생활은 행복은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지금 이곳에서 만족하며 최선을 다해 즐길 줄 알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내가 있는 곳이 운문사건, 할 일이 넘쳐 허걱되며 힘들다고 투정부리던 우리 절에서건 상관없이 말이죠. 그냥 마음으로 온전히 수용하면 되는 것을 즐기면 되는 것을 난 여긴 좋고 저긴 싫다는 분별심에 사로잡혀 살았던 것입니다.

이젠 행복했던 운문사를 졸업하면, 돌아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르신들과, 신도분들, 혼자서 절, 센터, 학교를 동분서주하며 바쁘게 생활하시는 은사스님과 3년간 묵묵하게 그런 스님을 도와 기도하고 있는 형님에게 돌아가 온마음을 다해 행복 바이러스가 되어드리겠습니다.

끝으로 우리나라에서 <화엄경>의 수많은 게송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게송으로 마무리를 지으려 합니다.

‘一切唯心造’

일체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도 다 내 마음먹기 달린 것!
대중스님 여러분,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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