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선 주 / 사교반 모든 욕락을 버리고 일찍 발심했다고 하기엔 살짝 늦은감이 있지만 영원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만은 똑똑히 구별해서 걸어가고 싶은 안녕하세요? 사교반 선주입니다. 저희들이 살면서 진실로 단 한 순간이라도 고요하고 평화로운 순간이 있을까요? 저는 초저녁을 가장 좋아하는 데요 이 시간은 일력과 월력을 벗어난 시간이라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이라고 합니다. 늘 ‘이 지극히 평화로운 즐거움이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는데요? 첫 출가 하고자 한 이유도 이 지극한 즐거움을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시골 오지 마을로 답사를 많이 다녔는데요 시골마을에서 만난 분들은 처마 끝에 철지난 옥수수을 거꾸로 매달아 잘 말려서 구수한 옥수수차를 숭늉으로 끓여내시는 할머니들이였고 장날이면 멋진 중절모에 윤을 낸 백구두를 신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할머니 동동구리무라도 손에 들고 술이 거나하게 취해 돌아오시던 할아버지들이였습니다. 그러나 이 문풍지에 곱게 바른 낙엽같은 정서와 삶만으로도 끝내 위로 받지 못했던 저는 은사스님과의 짧은 인연이 세 번째 되는 날 출가했습니다. ‘안되는 되는 것이다.’ 출가하더라도 삶의 가치관이 급격하게 달라질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부처님이 이루신 절대적 견성의 순간은 아닐지라도 마음의 평화와 조금의 즐거움이라도 찾을 줄 알았던 저는, 인욕으로 밭을 삼고 무심함으로 열매를 맺어야 하는 출가생활이 마냥 즐거웠을 리가 없었습니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의 유명한 글귀 중 “출가하는 일이 어찌 쉬운일이랴? 안일함만을 구하는 것도 아니며, 따뜻하고 배부르기를 구하는 것도 아니며 ....... ”라는 글귀는 저에겐 나름의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먼저 안정되고 내가 편안해야 남들도 배려할 수 있다고 여겼던 저의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보여졌던 저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여러 가지 편견과 이야기들 속에 점점 지쳐가고 힘들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와 보여지는 나 사이의 괴리감에 마냥 젖어있기만 하기에는 일상은 너무도 바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늘 마음속에서 잊지 않은 말 한 마디 “안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 속에서 제가 매일매일 되새기는 말이었습니다. 대학교 때 공양주 하시는 고모보살님을 만나러 간 절에서 우연히 본 이 글귀가 이토록 오랫동안 저의 귓가에 맴돌며 저를 지탱해 줄 줄 누가 알았을 까요? 그저 삼천배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게 된 저는,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실수와 상황에 맞딱드려질 때마다 늘 이 구절을 되새겼습니다. 어느 날 산나물에 대한 답사를 나갈 때였습니다. 안동 황학산 밑에 사는 한 할머니께서는 기억하시는 나물이 90가지도 넘었습니다. 연세가 70이 넘으신 이 할머니는 어릴 적 열 살도 되기 전부터 나물을 캐러 다니셨더랬습니다. 할머니께서 나물을 캐러가는 그 길은, 사람들이 다니는 편한 등산로 길이 아니었습니다. 풀이 무성한 경사진 언덕길이었고 한 번에 한 가지 나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취나물이 있으면 곰취가 있고 모시딱지 새딱지가 있는 알아볼 수 없는 고만고만한, 제가 보기엔 풀이었으나 그 할머니에겐 나물밭인 곳들을 잘도 찾아내셨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논문과 다큐를 함께 제작하는 중이었고 우리가 주목한 것은 단지 나물의 가지 수만이 아니었습니다. 강원도 영월 속담에 “그 집 며느리가 나물 서른 가지를 모르면 그 집은 굶어죽는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삶에 대한 “절실함” 이었습니다. 밥 대신 끼니를 잇기 위해 먹어야 했던 ‘소중한 식량’이었던 거죠. “안되는 것이 되는 것이다”라는 말 속에 담긴 저의 간절함은 ‘무조건 하면 된다.’라는 무대포 정신이 아닌 많은 사람들을 배려하고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저의 부족함에 대한 간절한 채찍질이었습니다. 저는 푸세식 정랑을 정말 좋아합니다. 똥은 가장 더러운 것, 가장 밑에 처한 것이지만 모든 농작물의 거름이 되어 멋지게 영글면 수많은 사람들의 입속에 들어가 배고픈 사람들의 뱃속을 따뜻이 채워주고 아픈 사람에게는 병을 치료해 주며 나아가 수행자에게는 가장 많은 복을 쌓을 수 있는 청소공간이 되기도 하니까요. 사실 제가 지극히 평화로운 순간은 그저 푸세식 정랑을 청소할 때 변기 주변을 싹싹 수세미로 닦을 때입니다. 그러면서 저를 위로하지요 “전생에 김태희는 적어도 몇 생은 똥지게꾼이었을거야! 히히~” 하며 말이지요. ‘오래된 것이 가장 길게 간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시죠?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고도로 발달된 과학기술이 우리를 유혹한다고 하더라도 오래된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인간세상에서 ‘걷기’와 ‘숨쉬기’만큼 오래된 것이 있을까요? 수많은 자동차에 밀리나 했더니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도 올레길은 ‘걷기 위한’ 관광 명소가 되었고 ‘숨쉬기’는 ‘호흡이다’ ‘명상이다’ 하는 때아닌 열풍 속에 있습니다. 이것을 ‘힐링’이라고도 부르죠? 천연 거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되고 오래된 이 ‘똥’만한 거름이 없다는 것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바라는 지극히 평화롭고 즐거운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의 가장 밑에서부터 천천히 배우고 익혀 나가야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수행자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바로 이 천연 거름처럼요. 그래서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저는 ‘똥보다도 부족하다’고, 그것은 단순한 자기 비하가 아닌 저의 자리와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환기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사실 그 어떤 교리보다도 저를 흔들었던 것은 부처님 전생담 중에서 배고픈 승냥이에게 자신의 온 몸을 던져 보시하시는 부처님의 절대적 헌신의 순간이었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오늘도 그 무언가를 위해 지극히 노력하며 사시나요? 잘 되고 가고 있으신가요? 처음부터 부처님의 전생담에처럼 모든 것을 다 내어 줄 수 있는 준비가 당장에 되어 있진 않지만, 한 방울의 낙숫물이 바위를 뚫 듯, 안되어가고 있는 수많은 과정들이 바로 되어가고 있는, 될 수 있는 긍정의 순간임을 잊지 않는다면 곧 이 지극한 평화로움 속에 서 있게 되지 않을까요? 겨울입니다. 한 겨울의 차디찬 햇살은 결가부좌한 어느 수행 자의 깊은 안정과 닮아있죠? 부디 여일하게 수행정진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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