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상처 치유하기
사미니과 영운
안녕하십니까? 삶의 상처 치유하기 란 제목으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치문 반 영운입니다.
인생은 흘린 눈물의 깊이만큼 아름답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겉으론 평온하게 보이지만 내면의 크고 작은 상처를 숨기고 살아간다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힐링'이란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마음치유를 하는 곳도 참 많습니다.
저도 출가 전 참 많은 상처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의 기대만큼 공부를 잘하지 못해 상처 받고, 커서는 금전적인 문제로 상처받고, 지식이 없어 상처 받고, 지위가 낮아 상처받고, 심지어 나이가 많은 것 때문에 상처 받은 적도 있습니다. 매도 한 두 번이지 알게 모르게 잔매를 계속 맞으면 천하의 장사도 견딜 수가 없는 법이라고들 말합니다.
물론 모든 고통은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것이라 배웠지만, 보편적으로 많은 이들이 상대적 빈곤감과 상실감, 우울함을 자주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이런 상처들이 모든 일에 자신 없게 만들고 움츠려들게 하면서 소심한 사람으로 만드는 큰 요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살면서 받은 상처들이 일종의 마음의 병을 만들었던 것 같은데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니 육신마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 법을 만나면서 병들었던 마음도, 몸도 모두 치유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오늘 여러분께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마음이야 말로 만유의 근본이기에 일체가 마음이 짓는 것임을 실감하게 된 것은 절에 가서 참회의 기도를 시작하고부터입니다. 스님께 돌이 부처님으로 보일 때까지 기도를 하라는 말씀을 듣고 정말 간절하게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저는 참회의 기도로 절 기도를 했는데 처음에는 백 팔배로 시작을 해서 삼 백배, 오 백배, 천배로 늘려가며 두 시간씩 매일 절을 했습니다. 기도 중간 중간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울기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이십년 가까이 한결같은 기도를 해서인지 몽중가피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금전문제로 한창 고심할 때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관세음보살님을 찾으며 절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엔가 꿈속에서 관세음 보살님이 황금 열쇠를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신기하게도 금전문제가 감쪽같이 해결되었습니다.
그후로 명절이나 성도재일에는 꼭 삼 천배를 했는데 삼 천배를 하고 나면 정말 몸과 마음이 개운했습니다. 이렇게 절기도를 하면서 자신감이 생길 무렵 스님께서 이제는 앉아서 마음공부도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부터 서둘지 말고 삼십 분 정도 앉으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잘 지켜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5분도 아니 1분도 집중이 안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생각도 안 나던 온갖 망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다리는 왜 그리 저리고 아픈지 숨도 안 쉬어지고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해주는 여유마저 생겼고, 불안한 마음, 원망하는 마음이 아닌 감사한 마음, 미안한 마음이 먼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마을에서의 삶이 더없이 무상하게 여겨지면서 남은 생만큼은 저를 이끌어주신 스님처럼 수행자로서 보살행을 실천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인들에게 출가를 한다고 말하니 나이 들어 그 힘든 데를 왜 가냐며 모두 반대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승가와 인연이 깊었는지 기도하는 동안 주변의 모든 인연들이 저절로 정리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출가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은사스님께서는 늦게 출가했어도 강원은 나와야 한다며 운문사를 추천해주셨습니다. 비구니 사관학교라는 명성이 자자한 운문사에 방부를 들이고 보니 과연 소문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일분일초를 다투며 숨 가쁘게 사는 것이 치문반 첫 철의 현실이었습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너무 긴장한 탓인지 상반스님 앞에 서기만 하면 멀쩡하던 혀가 꼬여 말을 제대로 못하기 일쑤였고, 소임자로서 마땅히 챙겨야 할 일들을 놓친 적도 많아 걱정도 많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의 허물이 많아서겠지만 때론 작은 상처를 받기도 하면서 이런 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스스로 고민해본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걱정을 많이 듣고 부대끼며 대중생활 하는 자체가 업장을 녹이고 탁마가 되면서 중물이 들여지는 소중한 기회라는 강사스님의 말씀에 스스로를 위안하며 다시 힘을 내기도 했습니다.
‘자아의식’이 남아 있는 한 앞으로도 여전히 많은 상처를 받으며 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그 상처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오히려 그것을 디딤돌 삼아 수행하고자 합니다. 부처님 법을 만나 진정한 상처 치유의 방법을 배워 가는 것 같아 무척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법구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자기를 이기는 것은 그 누구를 이기는 것보다 빛나는 승리이며,
자기를 꺾고 자기의 항복을 받은 자 바야흐로 모든 것의 주인이 되리라.
이 아름다운 운문사 도량에서 덕 높은 선지식이신 어른스님들을 모시고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으로 당근과 채찍을 함께 내려주는 상반스님들, 또 우리 치문반 도반스님들과 함께 살 수 있음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남은 강원생활 항상 기본에 충실하며 순간순간 깨어있는 수행자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