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祈福(복을 빌다)
사집과 동우
어린 시절 하루에 버스가 세대 밖에 들어오지 않았던 일명 촌구석에 살았던 저희 집 뒷마당에는 아주 커다란 감나무 한구루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정성스럽게 꾸며진 작은 신주단지를 모신 볏짚이 있었는데, 매일 아침 할머니는 그곳에 청수를 올리시고 양손을 합장하여 비비시며 “우리애비, 우리 새끼 손자, 우리 매누리..다다~~만사형통.. ”등 뭐라고 뭐라고 소원을 말씀하시면 옆에서 저도 따라 손을 모아 초쿄렛 많이 먹게 해달라고 빌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옛날 고전에나 나올법한 이런 장면이 그려지시나요?!
최근 저는 “깨달음은 등지고 기복의 늪에 빠진 한국불교”라는 논평을 보았습니다..제목만 보아도 아......,라고 짐작이 가는 내용이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전부터 한국의 불교는‘기복신앙’이라는 비판과 폄하의 말을 말이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한국불교는 왜 기복의 늪에 풍덩 빠지고 말았을까요......,
4세기경 중국을 거쳐 불교가 전래되기 전 삼국에는 이미 토착신앙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산에는 산신, 바다에는 용왕, 마을 어귀에는 서낭당등 자연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여러 신들을 만들어 섬기며 삶의 안락과 풍족, 국가의 천하 태평을 발원하였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불교는 토착신앙의 많은 부분을 인정하고 융합하는 방법을 택하여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삼국유사>에서 일연스님은 신라의 서울 안에 일곱개의 가람의 터가 있으니 천경림, 삼천기(용궁 남, 용궁 북, 사천미, 신유림 및 서청전)등은 토착신앙의 신성지역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존 토착신앙의 공간에 불교사찰이 들어섰던 것을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결과적으로 사찰내의 산신각, 칠성각, 명부전, 시왕전, 용왕전이나 절 입구에 장승이나 돌무더기 등은 토착신앙과 불교가 함께 공존하며 발달된 또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오늘날까지도 전해지는 수륙재, 팔관재, 인왕백고좌회, 예수재등의 각종 불교 의례는 각각의 법회의 성격과 내용은 다르지만 목적은 현세. 내세의 복락을 위한, 구복을 위해 행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운문사에서 점을 치는 법회를 연다고 하면, 아마 초파일이나 오백전 기도를 올릴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재로 2007년 동화사에서는 창건 1천 514주년 개산 대재를 봉행하면서 이 법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바로「占察善惡業報經-한자를 그대로 풀어보면 ‘점을 쳐서 선악의 업보를 살피는 경전’⌟ 소의 경전으로 하는 점찰법회라고 합니다.「삼국유사」의해편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원광법사는 귀국하면서‘점찰보(占察寶)’라는 것을 갖고 와서 가슬갑 즉 현재 운문사에 동쪽으로 구천보가량 되는 곳에 두었는데, 이것이 이 법회의 시원이라고 합니다. 점찰법회는 자신의 숙세의 선악의 업과 그 업의 무겁고 가벼운 것을 보고 삼세 과보의 차별을 알아보고자 목륜상을 만들어 던져서 그 결과로 나온 악업을 참회해 없애고, 수계를 통해 악업을 정화하는 의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점찰경에서는‘ 業이 마음을 따라 일어나 果報가 되어 서로 응하며 어긋나지 않으므로, 善惡의 業報를 점쳐 자신의 마음을 깨우쳐 의심스러운 일을 결정하기’위해 점찰법을 행한다고 그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로 보아 법회는 첫째 단순히 점이나 무속신앙과 불교가 융합되었다기 보다는 그 형식만을 빌려왔다는 점과, 둘째 불교의 세계관인 업과 윤회에 대한 ‘연기’의 도리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는 점과, 셋째 ‘점찰보’를 재단역할로 하여 법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보시’행, 작복(복을 짓는)의 실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편 법회 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참회와 보시를 통해 기복과 작복을 동시에 짓게 할 수 있었던 이 법회는 이후 8세기 중엽 진표스님에 의해 더욱 체계화 되었고 속리산과 팔공산등 여러 곳에 전수되었다고 합니다.
보조스님께서는 “深觀能禮所禮가 皆從眞性緣起하고
深信感應이 不虛하야 影響相從이니라.” 하셨습니다.
“능례와 소례(예배를 하는자/즉 본인과 받는자/ 즉 부처님)가 모두 참성품(진성)의 인연에서 일어나는 것을 깊이 관하여 불보살과의 감응함이 헛되지 아니하여 그림자와 메아리같이 서로 따르는 것을 깊이 믿어야 하느니라.”라는 말입니다.
대승불교든 초기불교든 불교 공부를 조금 하였다면 이 글의 첫 구절은 충분히 파악하고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성품이나 분류에 관한 교리, 연기나 진성이나 여래장 같은 사상은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갖고 있으니까요..그런데 과연 불교를 과학, 혹은 철학이나 심리학과 접목시키며 요리조리 공부하고, 108배는 운동으로 하며 명상을 힐링으로 하는 소위 현대의 불교하는 지성인들은 두 번째 구절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자력과 타력 신앙을 운운하며 잘난 체할 수도 있겠지만, 불보살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감응’이라는 두 글자를 그들은 얼마나 느끼며 믿어 의심치 않을 수 있을까요?
행자시절.. 겨울 폭설로 인해 길에 차도 잘 다니지 않던 어느 초하루 법회날 이었습니다. 세 걸음 걷고 한번 쉬고, 또 걷고 쉬고 걷고..아직 해도 다 뜨지 않은 어둑어둑한 새벽, 단정히 쪽진 백발머리로 절 마당에 들어서는 한 노보살님..“아이고 이렇게 춥고 미끄러운데 넘어지면 어쩌시려고! 고만 집에 계시지 오셨냐고” 걱정스레 눈을 찌푸리자.. “오늘 못 오면 다음은 없을 것 같아서 왔어요, 이 몸뚱이 언제 걷지 못할지 언제 저세상 사람이 될지도 모르니까, 오늘 법회가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기여기여 왔습니다..”라고 하십니다.
결국 기복신앙은 미신으로 치부되고, 단순히 한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욕심스런 행위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닐 겁니다. 기복은 작복의 인이 될 것이고, 작복의 과는 다시 성불할 수 있는 또 다른 인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지요. 목적지가 얼마나 남았고, 몇 시간이 걸리며 어떻게 하면 갈수 있다고 입으로만 떠들며 가지 않고, 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과, 이런 저런 것 다 모르지만 그저 다만 갈 뿐인 이들..과연 누가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지혜와 복덕을 모두 갖추면 부처이고, 지혜만 닦으면 아라한이 되며 복덕을 닦으면 전륜성왕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부처님 전에 다만 오롯이 삼천배를 올리며 엎드려 빌고 또 발원하며 복을 구하는 저들은.. 부처님께서 갖추신 칠각지 못지않은 칠보로 이 사바세계를 제도하기 위해 대원을 세운 전륜성왕의 화신은 아닐지..그건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