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청언/ 치문반
"한 수행자가 길을 가다가 속옷이 풀려 땅에 떨어졌다. 그는 좌우를 돌아보고는 몸을 굽히고 조심스럽게 옷을 끌어당겨 입었다. 산이 그 모습을 보며 껄껄 웃었다. "당신은 참 이상도 하다.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데, 옷이 벗겨졌다고 해서 그렇게 수치스럽게 생각할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수행자는 말했다. "우선 당신이 나를 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나 또한 나를 보지 않았습니까. 거기다가 하늘도 태양도 땅도 숲도 나를 보았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가 어찌 수행의 옷자락이나 잡을 수 있겠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사계절 꽃이 피는 아름다운 운문, 겨울철에 ‘부끄러움’에 대해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어른스님들과 대중스님들 앞에 서고 보니 부끄럽기만 한 치문반 오백씨 청.언입니다.
불교는 깨달음의 처음을 어디에 두고 있을까요? 뜻밖에도, 그건, 부끄러움 즉, ''참회'에 두고 있습니다. 참회로 깨끗해진 후에라야, 발원이든, 기도든, 참선이든, 수행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낯뜨거움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초기 안거 당시에는 수행을 하기 위해 모인 여러 스님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청정을 새롭게 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수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부처의 제자들은 부끄러움을 세밀하게 나눠놓았습니다. 능력이 모자라는 부끄러움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은 부끄러움이 있고 미혹이 생긴 부끄러움이 있고 죄를 숨기는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모두 부끄러움이지만 그 질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가장 저열한 부끄러움은 죄를 짓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 부끄러움이라고 명시해놓았습니다.
그러하니,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여러사람 앞에 고백하고 부끄러워 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약속하는 발로참회야 말로 수행의 첫걸음이라고 한것은 어찌보면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가을철 막바지, 후원소임을 나갔을때, 발로참회 폭탄?을 맞았을때, 억울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마음에 우울하고 울적해졌는데요..그 감정은 좀 다른 색이더군요.
슬퍼졌어요. 땅에라도 꺼질 듯 깊은 슬픔이 몰려 왔습니다. 이게 뭐지, 뭘까, 하고 들여다 보면서, 후원 소임자 방으로 돌아 들어오는 그 순간, 저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 이것...이거 였구나.
내가, 일주문 밖으로 도망쳤던 이유.
왜? 라는 물음에 저도 이유를 댈 수 없었던 일.
그건 바로, 빛 앞에 드러나는 어둠, 제 실체가 드러나는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쳤던 것입니다.
제 자신의 부끄러움으로 부터의 도피. 그대로 대면하기가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였던 것입니다. 수행은 어찌보면, 그런 자신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고, 드러내고,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고, 고치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수행의 첫걸음을 참회, 부끄러움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워 할 줄 알고, 널리 드러내 고백하게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면서 감춰 두기에 급급해 상처가 곪아가는지 썩어가지는 도 모른채 살아가는 것보다는 아파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니, 얼마나 장부다운 모습인가요. 그리하여 저는 발로참회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고, 좀 더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대하게 되었습니다. 해서, 조금씩 달라지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는일도 재미있고 환희로운 일이었습니다. 그건 어둠속에서 미로속을 헤매다 작은 빛을 발견한 것과 같은 것이 었기 때문입니다. 업식으로 얽혀 사는 중생의 삶에서 죄업은 당연한 것이고, 그 속에서 허우적 대기만 했던 삶이었으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있느니 얼마나 멋지나요?
저, 길모퉁이를 돌면, 문득 부끄러워 지겠지...
그리고, 그 부끄러움에서 새롭게 시작하면 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도반스님들께 감사드리고 싶어요. 반스님들이 없었다면, 제가 치문의 터널을 지날 수 있었을까요? 이승에서 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언덕, 나의 고향, 지난한 내 삶의 여정의 닻을 내렸던 항구 였습니다. 제가 다시 돌아왔을때, 제 맘이 상할까봐, 경책운력 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눈빛 하나도 흐트러 트리지 않았던 스님들, 벌금을 모아주고 잘 살아보자고 격려해 주었던 스님들, ...지금은 올챙이처럼 꼬물꼬물 모여있지만, 때가 되면 각자 헤어질 때가 오겠지만, 그때까지 가끔 싸우고 소리지르겠지만, 많이 배우고, 서로 깨우쳐 주면서 화엄때까지 무사히 회향하길 발원해 봅니다..그때까지 저는 계속 참회하고, 부끄러워 하면서, 나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면서 용서를 청하면서, 그렇게 깨끗해지고, 깨끗해지고 ,깨끗해지면서, 수행의 그릇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