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수행자의 삶에 대하여_무구 스님

가람지기 | 2011.04.11 16:22 | 조회 3993



수행자의 삶에 대하여


안녕하십니까?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매화의 향기가 그윽하듯 수행의 향기를 뿜어보고자
오늘도 열심히 정진하려고 하는 사집반 무구입니다.

저의 출가 동기는 단순한 것 같습니다.

어느 따뜻한 봄날 죽음을 눈앞에 둔 제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숨이 꼴딱꼴딱 하고 있는 사이에도 생각은 수도 없이 교차하겠지요.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마음일까? 아마도 지난날들을 돌아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살면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일에 대한 미련, 혹 한이 맺혀서 그 한을 가지고 죽음을 맞이한다면 제 자신이 너무 가엾다는 생각과 그렇게 죽기는 싫다는 맘이 들면서 홀연히 출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순천 송광사 아랫마을로 초등학교 소풍을 열두 번이나 갔어도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지냈는데 이십대 초반쯤 집안에 스님이 계시다기에 의정부 망월사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마침 출타중 이시라기에 기다리겠냐는 물음에 그러겠노라 하니 방을 안내해주시는데 세상에 그런 방은 처음 보는 것 같았습니다. 방에 내가 아는 물건이라고는 장판과 벽지뿐이었습니다. 밥은 얻어먹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허름한 이불을 덮고 잠자리가 낯설어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려 창문으로 내다보니 웬 스님이 목탁을 들고 마당을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처음 보는 것이 하도 기이해서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음, 중들은 저리 다 미쳐서 공부하나보다.’ 라고 생각하고서는 다시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제가 지금은 이 운문도량에서 그렇게 미치기 위해서, 미쳐보고 싶어서, 미쳐지지가 않아서 용을 용을 쓰는 중입니다.

저희 은사스님께서 강원 어디갈래? 물으시기에 강원 갈 생각도 안하고 있는데 운문사는 못 올 것 같아 다른 강원 이름을 댔습니다. 그때부터 은사스님께서는 전투태세로 바뀌셨습니다. 제가 몰랐던 거지요. 위에 형님의 20일 단식에도 끄떡 없으셨던 분인걸 말입니다. 걸망을 챙기고 차 앞자리에 앉으라고 하셔서 아무 생각 없이 오는데 스님께서 저보다 더 비장한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무구야, 좋은 연장이 되어서 돌아 오거라.”

저는 그만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고 그 말씀이 동아줄이 돼서 저를 묶고 묶고 또 묶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치문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내가 연장이면 운문사는 용광로인가? 그러면서 발을 내딛었는데 역시 운문사는 곳곳이 용광로 아닌 곳이 없었습니다. 무쇠와도 같은 제가 아주 바늘 끝 만하게 불에 닿기 시작하는 걸 느꼈습니다. ‘나’ 라고 하는 것을 보기시작하면서 항상 내 마음의 허물만을 보고, 남들의 시시비비를 보지 않기를 바라며 분별심을 여의고자 애쓸 줄을 알게 되었고 신, 구, 의 삼업을 단속하여 숙세의 업의 습기까지 다 녹여 일념, 무상, 무념으로 가고자 자신을 살피고 애쓸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설우스님의 강의를 통해 마치 물방울이 물 위에 떨어지면서 반짝하고 무늬를 만들 듯 그렇듯 첫 맛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환희로웠습니다. 금방 공부가 될 것도 같았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늘 여여한 것이 아니라 가다가다 한번씩, 어쩌다 일 년에 한번 씩 정말로 뱁새가 총총총 열 발자국 걸어 먹이 한번 쪼아 먹듯 하니 또한 조바심이 나서 없는 머리를 쥐어 뜯어보기도 했습니다.

불법을 만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점은 진실 된 앎으로 인해서 즉각적인 성장과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라는 그릇된 견해, 남을 배려하고 미워하지 않게 되는 마음, 주기 어려운 것을 주고 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해나고 참기 어려운 것을 참고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괴로울 때 서로를 버리지 아니하고 비천함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이러한 선의적인 행위는 불법의 힘이 아니고서는 얻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은사스님께서 “중은 자기 팔자를 능가할 수 있는 공덕을 쌓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여년 전 어느 큰스님의 법문 중에서 잊을 수 없는 법문이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첫째, 밥을 적게 먹어라.

둘째, 일의(一衣) 일발(一鉢)로 살아라.

셋째, 안으로는 내심을 기르고 밖으로는 남을 도우며 살아라.

넷째, 평생 공부하다 죽어라.

이 짧은 몇 마디에 수행자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음을 절감합니다. 이와 같이 살고자, 부디 저의 뜻이 굳건해져서 불퇴전하기를 부처님께 엎드려 발원하고 또 발원해 봅니다.

이곳은 저에게 더 없이 훌륭한 수행장이 아닐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감사하며 어느 책에서의 선시 한 구절이 마음에 들어 들려드리면서 오늘 법문을 마칠까 합니다.


비는 나무꾼을 재촉하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바람은 배를 강기슭에 닿게 하나니…….


수행자인 저희들은 무엇이 각자 본성의 자리로 돌아가게 할까요?
대중스님 여러분! 성불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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