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五辛菜_지명스님

최고관리자 | 2013.03.14 13:35 | 조회 3492



五 辛 菜

지 명/ 사교과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져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져 있습니다. 정성으로 마련한 이 음식으로 바른생활 바른 마음으로 인류를 위하여 봉사하겠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제가 출가를 결심하고 절에 들어가서부터 강원에 오기까지 매 공양마다 은사스님을 비롯하여 모든 식구들이 공양전에 항상 하는 게송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봄을 알리는 매화꽃이 수줍게 인사하듯 운문의 문을 열어주더니 살다 살다 이런 더위는 생전 처음 겪어 멘붕상태로 원두반을 졸업하고 38명이 다 별좌의 시대를 열어가는 엄마반인 사교반 지명입니다. 사교를 지내봐야 운문사를 졸업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데 어느덧 벌써 사교의 끝자락을 장식하게 되고 또한 이 자리에서 법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차례법문을 준비하며 “과연 어떤 주제로 써야하나?” 하고 많은 고민 중에 행자때부터 오신채는 먹지 말라고 하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정확히 애기해주는 이가 없어서 이리저리 찾아보다 또 능엄경에 언급된바가 있어 이참에 한번 써 봐도 괜찮을듯하여 오신채라는 주제로 법문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흔히 승가에서는 자비의 종자가 끊어진다하여 육식을 금하며 자급자족의 삶을 가꾸며 또 그 속에서 회향하는 채식을 합니다.

허나 우리가 늘 먹는 식물 중에서도 불가에서 멀리하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오신채입니다. 입춘채, 진산채, 오훈채, 오신반이라고도 하며 이는 불가뿐만 아니라 우리의 세시풍속에도 녹아있습니다. 봄에 먹는 오신채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종류가 조금씩 다르며 일정치 않고 의학적, 상징적, 종교적의미가 내포되어있는데 민가에서 오신반은 겨우내 결핍되었던 신선한 채소를 보충하고 자칫 잃기 쉬운 봄철입맛을 돋우는 햇나물 무침으로 입춘날에 오신채를 먹는 풍습이 있습니다.

또한 오신채는 오방색의 경우에서처럼 노란색 나물을 중앙에 놓고 주위에 청, 백, 적, 흑색의 나물을 놓아 이것을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하기도 하며 한데 섞어 먹음으로써 화합, 융합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중국과 일본에서도 정월에 오신채를 먹음으로 1년 내내 전염병이 예방되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먹는다 합니다.

불가에서 오신채는 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를 말하고 이를 금기시하며 계율로 정하고 수행하는 출가자와 스님이 지키도록 합니다. 출가하는 우리들은 공동생활을 하며 수행을 시작하게 되는데 맵고 향이 강한 오신채는 자극적인 것을 쫓던 중생시절의 탐욕과 같아 수행 중에 먹게 되면 마음을 흩트리고 번뇌 망상을 일으키키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 입맛은 중생의 입맛인지라 추운겨울이면 따~끈한 오뎅국물이 생각나고 출출할 때면 꼬들꼬들한 라면에 푹~삭힌 파김치가 생각나는 건 아직은 과거 무시겁이래로 쌓여있던 때가 덜 벗겨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오신채 중에서 달래가 참 좋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저의 형님에게 얽힌 일화 때문입니다. 행자시절... 은사스님이 고뿔에 걸려 며칠 동안 공양을 못 드시자 저의 형님은 삼성각 앞 뜨락에 소복히 피어 있던 달래를 그날 저녁 된장찌개에 끊여서 드렸습니다. 문제는 저의 형님이 오신채는 알지만 달래는 본적이 없다는 거였죠. 그래서 덕분에 저는 형님이 잔소리할라치면 아무것도 모르는 행자를 불러 달래된장찌개부터 애기합니다. 그럼 형님은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니까요...그러니 저에겐 참으로 고마운 달래가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저의 절 삼성각 앞에는 매 철마다 어김없이 달래가 군락을 이루며 나오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오신채에 관해 언급하신바가 있으신데 능엄경에는 “공부하는 중생들이 깨달음을 구하고자 한다면 세간에 넘쳐나는 오신채를 끊어야 한다. 오신채는 익혀 먹으면 음란한 마음이 생겨나고 날것으로 먹으면 분노하는 마음만 커지게 된다. 오신채를 먹은 사람은 12부 경전을 설할지라도 시방세계의 하늘과 선신이 그 냄새를 싫어해 저 멀리 떠난다. 또한 오신채로 식사를 하면 온갖 아귀들이 입술을 핥으므로 항상 귀신과 함께 있어 복덕이 나날이 없어진다. 그러니 중생이 깨달음을 성취하려면 영원토록 오신채를 끊어야 한다” 라고 설하셨고 범망경에 따르면 “다섯가지 냄새 나는 나쁜 채소는 먹지 말지니 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라는 이 매운 채소는 일체 음식에 넣어먹지 말지니라. 만일 먹는 자는 경구죄를 범하느니라” 라고하며 오래전부터 수행자가 오신채를 먹는 것을 금해 왔습니다.

별생각 없이 먹어왔던 음식에 길들여져 있던 저로서는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왠지 허기지고 힘이 들고 아프고 난 뒤에는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야 배가 부르고 “아! 밥 먹은 거 같다”라는 생각에 빠질 때가 많은데 오히려 나를 힘이 나게 하는 게 아니라 이런 음식으로 인하여 내가 나를 잘못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내공이 큰지라 당장에는 끊기가 어렵겠지만 시나브로 시나브로 나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봅니다. 끝으로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항상 하는 저의 발원문으로 차례법문을 마칠까 합니다.

아미타부처님을 항상 머리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양어깨에
오른손에 친가의 중생을 왼손엔 외가의 중생을
허리엔 나와 인연있는 일체 중생을 이끌고
내가 세세생생 성불할 때까지 이끌고 가겠습니다.
부실하다고 정평이 난 허리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중스님들...성불하십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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