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의 기로에선 우리의 승가상 정립
법 진 / 대교과
끝과 시작의 기로에선 우리의 승가상 정립 운문사에서 학인으로 지낼수 있는 시간이 이제 19일 남았습니다. 요즘 저에게는 졸업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습니다. 언제나 그수식어는 변합니다. 행자,학인,소임자... 부처님제자로 출가한 우리는 많은 시작을 맞이합니다.
일반사람들의 삶의 절차는 초중고등학교졸업후 대학진학, 그리고취직. 보통 이렇습니다만, 스님들의 삶의 절차는 어떨까요 사실 표면적으로보면 비슷합니다.
첫삭발후 모든세속의 습을 버리고 중물들이는데 집중투자하는 시간인 행자. 새로익힌 습을 바탕으로 스님으로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강원생활. 그리고 강원졸업후 스님들의 진로... 삭발염의한 스님이라면 누구나 한두번쯤 현실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게됩니다. 교학에 나아갈스님, 선공부에 중점을 둘 스님, 포교에 나설스님, 기도를 원력으로 수행하는 스님등등...
지금 이 위치에서 우리는 가장 많은 선택이라는 고민을 하고 있을것입니다. 그선택의 이면에는 먼저 올바른 승가상이 정립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과연나는 출가해서 지금까지 올바른 수행자로 살아왔는가. 그리고 살아갈수 있을것인가. 수행하고자 하는 스님들의 원력은 강하지만 사실 비구니 스님이라는 이름에는 제도적으로 제한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제도적,현실적 제약은 불편한 갈등만 일으킬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제도적 제약이 많은 한국불교와 상반된 경우로 상좌부와 티베트 ,선을 두루 아우르는 불교국가라 할수있는 대만의 한 예를 보자면, 1965년 인순대사와 증엄대사가 “비구니는 팔경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난후 비구니 교단이 크게 발전하여 현재 구족계를 받은 스님중 80%가 비구니스님이라고 할만큼 많은 변화가 왔다고 합니다. 바로 사회적, 현실적문제에 보다 발빠르고 개방된 의식 전환에서 비롯된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구니승단과 규모의 수준이 세계제일이라고도 할수있는 한국 불교에는 비구니 스님이 차지하는 역할이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불평등한 관념과 제도가 존재합니다. 바로 그뿌리에는 대만에서 일찌감치 폐지한 팔경법이라는 제도가 아직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팔경법에는 ‘100세의 비구니라도 갓출가한 사미를 공경해야 한다’ 는 등의 8가지 조항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신분제도와 양성불평등을 타파하신분인데 왜 이러한 계율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사실 여인 오장설이나 팔경법과 같은 편견적 사상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아와 연기, 중도에 어긋나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여론은 팔경법의 진위 여부에 대해 후대의 삽입이라는 역설을 하기도 합니다. 부처님 재세시에도 규율을 정할시 수범수제라 하여 제자들이 허물을 일으킬때마다 그에 맞는 규율이 정해졌습니다.
그의미는 바로 부처님게서 일시에 다 제정하신것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와 상황을 반영하여 합당하게 제정되고 수정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예로 후대에 만들어진 보살계나 선원청규를 들수있지요. 팔경법또한 당시 가부장적인 인도사회에서 여인혼자 산다는 자체가 불가능 했기 때문에 임시적이고 특수하게 만들어진 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숫타니파타에서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이름으로 性으로 붙여져 있는것은 통칭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태어난 그때에 붙여지고 임시로 시설되어 전해지는 것이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결국 性이라는 글자의 신분제도는 인간이 만들어낸 욕망의 결과이며 허상이라는 말씀이지요. 여러 정황을 볼때 계율은 절대적으로 불변한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납니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할 불교의 모습은 많은 세월동안 우리의 의식속에 자리잡은 관념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수행과 깨달음에는 차이가 없음을 자각하는 순간 진정한 내적인 발전과 변화가 오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불법이 후세에 길이 빛날 수 있도록 하는 몫은 또 다른 시작을 하려고 하는 지금 이때에 진심으로 사유하고 있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운문사의 하루하루가 짧게만 느껴지는 요즘 회향과 시작의 의미가 몸과 마음으로 와닿고 있습니다. 나자신과 모두에게 이 법문의 자리가 자신의 승가상을 정립하고 고민하는 시점에서 현실을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미우나고우나 이날 이때까지 함께해온 도반스님들께 고마운 마음을 허운스님의 말씀으로 대신 전하며 이법문을 마칠까 합니다 “과거숙업에 이끌려 한세상을 물결치듯 흘러왔습니다. 바람앞의 등불처럼 쇠잔하기 그지없는데 오히려 마무리지어야 할 일은 많기만 합니다. 매번 문득문득 떠올릴때마다 헛된 이름만 낸것은 아닌지 부끄럽습니다. 지나온 한평생도 어찌보면 꿈이고 허깨비일 따름입니다. 태어난다는 것은 죽음의 시작이니 지혜로운 사람은 빨리 정신차려서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일심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어느여가에 세속사람들하는 흉내를 내겠습니까.”
대중 스님여러분, 의식속에 있는 관념의 틀을 깨고 매순간 깨어있는 수행자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