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선열의 법식_영조스님

최고관리자 | 2013.05.07 13:28 | 조회 3709



선열의 법식

영 조 / 화엄반  

안녕하세요. 오늘 차례법문 마지막을 장식할 화엄반 영조입니다.
매화의 향기와 그 매혹적이며 사랑스러운 자태에 저절로 행복해지는 봄날. 또한 풋풋한 치문반 스님들이 병아리처럼 콩콩 다니는 따스한 봄날, 대중스님들께서는 편안들 하십니까?

차례법문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7분 사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수도 있는 그 시간에 어떠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어떤 법문을 해야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까? 화엄이니 교리적인 것을 해야 위엄이 서지 않을까? 한바탕 대중을 웃게 해야 박수를 받지 않을까? 수많은 잡다한 생각을 하다가 저는 펜을 내려놓았습니다.
왜냐하면 법문이라는 것은 그 내용이 나와 일체가 되어서 마음 속 깊이 되새겨져 나와야 하는 것인데 저는 내용보다는 잘했다는 소리와 순간적인 인기라는 허세에 치중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나와 일체가 되며 대중스님들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고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발우공양!
한 철이 시작되면 누구든 몸이 불편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대중이 청풍료 큰방에서 조용히 하게 되는 발우공양, 출가해서부터 강원을 졸업하고 선방을 다닐 때까지 대중이 모인 곳이라면 빠지지 않는 발우공양에 대해서 차례법문을 하는 것이 제 경험상으로 느낀 것도 많고 또 앞으로도 계속 나의 법문을 듣고 발우공양을 할 대중스님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제 법문의 주제로 삼기로 했습니다. 잘했지요?

그럼 발우공양의 의미에 대해 살짝 알아볼까요? 발우는 어시발우, 국 발우, 천수 발우, 찬 발우 이렇게 네 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자의 특징에 맞게 음식을 덜은 후 조용히 입승스님의 죽비소리에 맞춰 공양을 하는 것, 그것이 발우공양입니다. 어떤 의미가 발우공양 속에 깃들어 있는지 아시는 분계십니까? ...
아마 한 단어만 들으면 모두 ‘아~’하고 아시겠지만 조용한 관계로 제가 살짝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부처님 재세시에 9마리의 용아기를 자녀로 데리고 있는 구자모라는 용이 있었습니다. 구자모는 자신의 용 아기들을 위해 인간 아기를 음식으로 먹이고 있었지요.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부처님께 와서 통곡을 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하루는 부처님께서 구자모의 막내용아기를 살짝 데로고 와 품에 숨기셨습니다. 자식을 잃은 구자모는 울부짖으며 온 세상을 돌아다니다 결국 찾지 못하자 부처님께 왔습니다.

“부처님, 제 막내아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좀 찾아주십시오.”
“그러느냐?
자식을 잃은 네 심정이 지금 어떠하느냐?”
“온 세상이 무너지는 듯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잠도 오지 않고 무엇을 먹을 생각도 안 나며 온 집안이 풍지박산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네가 너의 아들들을 위해 인간의 아기를 데려갔을 때의 그들 부모의 심정을 이제는 알겠구나...”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된 구자모가 반성을 하면서 부처님께 아뢰었지요.
“하지만 부처님 저희는 그럼 죽어야 한단 말입니까? 저희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럼 저희는 무엇을 먹고 살라는 말씀이십니까?”
부처님께서는 빙긋이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저 청정히 수행정진하는 스님들이 발우공양이라는 것을 한다.
그 공양을 마친 후에는 삼라만상에 있는 모든 중생들을 위해 회향하는 법식의 물이 있는데 그 법식의 물을 받아먹도록 하거라.”

이렇게 해서 그때부터 구자모를 비롯한 음식을 얻을 수 없는 삼라만상의 모든 아귀들은 스님들이 청정히 수행해서 그 정진력이 깃든 발우공양의 퇴수물을 공양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한번쯤은 다 들은 이야기지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대 저는 굉장히 환희심이 났습니다. 그래서 항상 조심히 수행을 하듯 정성들여 발우공양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찬 발우에 씻어 놓은 물 위로 천수다라니가 비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아! 나의 이 설거지물이 삼천대천세계의 어느 존재들에게는 선열을 법식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동시에 내가 그런 수행을 할 수 있는 수행자임에 감사하며 온몸에 환희심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발우공양에 대해, 스스로에 대해 숙연해지는 그 경건함...
여러분들은 느껴보셨습니까?

그 이후에 발우공양을 할 때면 저는 더욱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발우를 피고 접으며 공양을 합니다. 왜냐하면 소리가 날때마다 가뜩이나 배고픈 아귀들의 주리를 더 틀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지요. 쉽게 생각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굉장히 배가 고플 때는 맛있는 음식의 냄새와 그 음식을 만드는 소리만 들어도 입에 침이 고이고 배가 고파 어찌할 줄을 모르지요? 우리 대중스님들이 발우공양을 할 때 정신을 들지 않아 순간순간 내는 소리에 아귀들은 그런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매일 발우공양을 무슨 상전 받들듯이 하면 아마 다들 위장이 일주일도 못 되어서 병이 나겠지요.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예 소리를 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수저를, 젓가락을 들고 놓을 때, 천수를 따르고 설거지를 할 때, 찬상행익을 할 때 조심하는 마음을 가지자는 것입니다. 나보다 약한 존재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우공양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며 이와 하는 거 수행하면서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졸리고 피곤한 마음에 아무렇지 않게 털커덕 털커덕 발우를 놓고, 퇴수를 따를 때 쪼르륵 소리가 나게 하는 것들은 발우공양을 수행의 하나라 생각하는 수행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때론 너무 피곤하고 졸리고 밥맛이 없어 대충대충 생각하고 먹게 되는 발우공양이지만 매일매일 이루어지는 습관 속에 젖어 안일해지는 발우공양 시간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그런 분이 한분도 없을 것이라 저는 믿겠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발우공양에 대해 물을 절약할 수 있고 음식물 쓰레기로 인한 자연파괴를 멈출 수 있는 좋은 식습관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그런! 세상이 인정해 주는 발우공양을 우리 승단은 더욱 발전시키며, 또한 의식을 행하는 스님들은 의식에 깃든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실천할 수 있는 수행력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운문사에 살포시 깃든 봄의 기운처럼 대중 스님들 한분 한분의 가슴속에 행자 때의 풋풋한 그 초심이 총총히 깃들길 사문 영조는 간절히 발원하며 차례법문을 마치겠습니다.

대중 스님 여러분, 사랑합니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