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이 제 길입니다
치문, 어느 날 강사스님께서 바람에 흩날리는 눈발 하나도 다 자기자리가 있어서 제 자리에 똑똑 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만물이 제가끔 제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완전하다는 이 말을 들은 그 날부터 전 눈발 하나가 제 자리에 똑~ 떨어지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보고 싶었습니다.“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하는 생각과 더불어 눈에서 눈물이 또로록 떨어졌습니다.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늘 제 생각과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왜곡된 시선으로 생활하며 살고 있는 제 자신이 답답했습니다. 혹시 내가 보고 있는 이 나무가 사실은 이 모습이 아닌 건 아닐까? 이 꽃은, 저 스님은, 이 하늘은.... 도량을 돌아다니면서 제 머릿속은 끝없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그 모습이 아니면 어떡하나하는 불안감이 밀려왔습니다. 당시 싫어했던 도반스님을 가만히 보면서 혹시 저 스님이 사실은 너무도 훌륭한데 내 뒤바뀐 시선으로 잘못보고 있는 건 아닌가, 정말 좋은 도반을 놓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요리 뜯어보고 저리 봐도 고개는 갸웃뚱! 출가해서도 반쪽뿐인 삶을 살 수는 없었습니다. 출가해서 노력하면 다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 나라고 하는 좁은 생각을 버리고 이 우주 법계와 내가 하나가 되어보자. 그렇게 이 세상을 살아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저라는 사람이 남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과 잘난 척 하려는 마음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제 행위의 의도가 순수한지, 순수하지 못한지를 보고 나를 드러내려는 순수하지 못한 마음이면 그 행위를 일부러 하지 않았습니다. 잘 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또 제 자리였습니다. 발전되는가 싶으면 또 제자리. 제 자신을 비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런데 비웃기라도 하듯 제가 애를 쓰면 쓸수록 여지없이 원래대로 돌아가 있는 것입니다. 허탈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좌절감이 깊어갈 수록 잔인하게도 바람에 흩날리는 눈발 하나가 제 자리에 떨어지는 그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은 더욱 커져만 갔고, 밤에 누워도 누운게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길고 긴 치문을 보내고 사집 첫 철! 바랬던 관음전 부전소임을 살게 되었습니다. 소임동안 문 밖을 나가지 않으리. 나가지 않았습니다. 대타를 세우지 않겠다. 소임 인수인계로 인해 한 번 대타를 세우곤 빠지지 않았습니다. 예불 모시는 동안 편하게 앉지 않겠다. 발목이 아프고 발가락이 아파도 무릎 꿇고 예불을 모셨습니다. 사시에 부처님 공양 올리기 전에는 먹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강사 스님께서 수업 중 큰 스님이 정랑 갔다오고서 손을 씻지 않고 목탁을 잡는 스님을 나무라셨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 날로 나도 음식 먹고 양치하지 않은 채 목탁 잡지 않겠다 결심하고 오후 불식을 시작했습니다. 저녁 정통 사용시간은 예불모신 후라서 저녁을 먹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목소에 가서 양치할 수 있는데 그때는 그 생각을 못했습니다. 어떻게든 이 길 인연 맺어준 부처님께 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무엇이든 해서. 아니 고통이라도 참아보면서. 부처님이 큰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면서 행복하기도 했고, 그 사랑을 알면서도 인간의 마음을 갈구하며 울고 웃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머릿속에서 끊이지 않고 시시비비를 일으키는 달라지지 않는 모습에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봄철 소임을 마치고 한철 잘 살았다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잘 살았다고 생각했던 그 생각은 집에 돌아가서야 그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했다는 생각, 다른 스님은 어땠는데 나는 이랬다는 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과, 시시비비. 상이 없이 했을 때 그것이 참다운 기도가 된다는 것을 듣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부끄럽습니다. 제 무지가! 집으로 돌아온 저는 이번 방학에는 모든 일에 수순하고, 대중 어른스님들이 내 눈치 보지 않게 하고, 항상 밝은 얼굴로 일하자고 결심했습니다. 부처님께도 제 힘이 부족하니 도와주셔달라고 부탁도 드리고요. 이 굳건한 결심은 너무도 힘 없이 300명 108순례단의 공양 준비를 시작으로 여지없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1년에 한 번 있는 대중스님들 회의, 공양주 소임, 밭일, 초파일 행사, 병간호를 대하면서 굳건해 보였던 결심은 형체도 없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무너질수록 은사스님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고, 더욱 냉정해지시기만 했습니다. 그 마음 한 번 돌리면 되는데 굳어진 제 마음은 아무리해도 돌려지지가 않았습니다. 가슴을 두드리며 “한 번만 참지. 한 번만 참으면 되는데. 왜 그렇게 안 되냐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이렇게 가슴앓이를 하면서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를 힘들게 한다는 것이 죽기 보다 싫었던 제가 출가해서 지금까지 마을에서와 똑같은 모습으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을에서는 직장동료, 가족, 친구라면 승가에서는 대중스님들, 은사스님, 그리고 도반들을 힘들게 하며 지내온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차가운 시선에 지쳐있던 전 마을사람들의 걱정해주고 믿어주었던 그 눈빛들이 참으로 그리워졌습니다. 다시 출가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노력하고 노력해도 승가에서 말하는 업이라는 것을 끊기가 아니 바꾸기가 너무도 어렵다는 생각과 그것을 내가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상실감이 저를 자꾸 마을로 돌아가고 싶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참을 울다가 불현 듯 혹시 내가 지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출가 전, 그대로 완전한 삶을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것을 갈구했던 것처럼 지금 이 모습, 이 자리, 이 상황이 최상인걸 모르는건 아닐까?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습니다. 전 남에게 구걸하지 않고, 스스로 노력하며 만들어가는 이 삶의 방식이 참으로 좋습니다. 제 자신과 눈물 흘리며 애쓴 노력만은 헛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