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날마다 좋은날입니다-사교반 진우上 스님

가람지기 | 2008.07.21 13:51 | 조회 2813

푸르름이 무성한 여름입니다. 모든 식물들이 왕성하게 성장하는 계절이지요.

대중 스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진우上입니다.

치문반 때 공양상 차리기, 공양물 나르기, 각종 청소로 정신없이 운문사 도량을 뛰어다니고, 사집 때는 밥 숟가락 놓으면 호미 들고 밭으로 뛰어나가고, 사교가 되니 운문사 차 도량이 모두 사교반 영역이 아닌 곳이 없더군요. 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있어 나를 돌아볼 시간이 생겼습니다.

치문 시절, 눈치 없고 둔하고 동작도 느린 제가 신속 정확을 요하는 일상생활에 익숙해지느라 얼마나 고달팠는지는 상상이 가실 것입니다. 사집 때, 강사스님이 즐겨 쓰신 말씀! "고재고재라!" 사는게, 먹고 자고 공부하는 모든 일상생활이 '苦'였습니다. 그 때마다 저에게 위안을 준 게송이 있는데, 문수보살의 게송이었습니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부딪히는 모든 일들에 화나고 짜증날 때, 이 게송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금강경 제 16 능정업장분에 이르기를 "금강경을 지니고 외우더라도 만약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면, 이 사람은 전생에 지은 죄업으로 응당 악도에 떨어진 것이로되 금생에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함으로써 전생의 죄업이 모두 소멸되고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했습니다.

힘들 때마다 '내 업장이 녹고 있구나.' 타이르고 위로하고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렇게 사교에 올라와서는 2년 넘게 같이 지내온 시간에 익숙해져 반 스님들에게 말과 행동, 특히 말을 함부로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했다가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제가 더 많이 놀랐던 때가 많았습니다. 내가 아무렇게나 툭 던진 한마디에 아프지는 않을까, 한번쯤 생각이 듭니다.

금강경 제 14 이상적멸분 중에 "내가 옛적에 가리왕에게 신체를 낱낱에 베일 때에, 나는 그때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었느니라. 왜냐하면 내가 옛적에 마디마디 사지를 베일 때에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었다면 응당 성내고 원망함을 내었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 어느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만약 내 신체 중 팔이 베여 화가 났다면, 그건 팔이 베어서가 아니라 베인 팔이 내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는데, 참으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해온 모든 일들이 사실은 소임이라는 핑계를 대고, 나를 위해서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무척 힘들고 억지로 하고있는 것 같지만, 나를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대중 스님들! 지금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십니까?

금강경 제 18 일체동관분에 이르시길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되, 저 국토 가운데 있는 중생의 갖가지 종류의 마음을 여래가 다 아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여라개 설한 모든 마음은 다 마음이 아니요, 그 이름이 마음이기 때문이니라.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수보리야 지나간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하셨습니다.

공부는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즉 현재에, 과거․현재․미래 삼세가 다 들어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더위가 무럭무럭 자라는 이 계절, 대중 스님들 모두 더위에 지지 않으시길 바라면서, 운문문언 선사의 멋진 법문으로 마칠까 합니다.

대중 스님 여러분!

"날마다 날마다 좋은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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