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어려운 길. 출가- 한산스님-

가람지기 | 2008.06.23 13:32 | 조회 3561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누군가가 제게 지금 당장

이런 질문을 한다면 말성이지않고 예, 차례법문입니다. 라고 대

답할텐데, 어린왕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글쎄요..돈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

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은 순간에도 수만가

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안녕하십니까? 어려운 일인 줄 알면서도 이 순간만큼은 대중스

님들의 마음을 이곳에 머물게 하고픈 대교반 한산입니다.

혹시 바우라는 아이를 아십니까? 바우가 10살때의 일입니다. 바

우는 어머니를 따라 김제 금산사에 갔다가 그곳의 미륵부처님을

뵙는 순간 문득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기쁨이 넘쳐 와서 소리를

지르며 절을 세 번하고 내려왔습니다. 그 뒤 자꾸 절에 가자고

조르는 바우에게 어머니께서 왜 그러냐고 묻자 밤마다 꿈에 나타

나 자신을 업어주는 미륵부처님을 만나고 싶어서라고 대답했고,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4년 후 그런 어머

니를 두고 14살 바우는 출가를 했습니다. 그 14살 바우가 바로

한국 근세 불교의 선지식이신 만공큰스님이셨습니다.

여기 앉아계신 대중스님들께서도 모두 출가동기와 그에 관한 에

피소드가 한 가지 씩들은 있으시겠죠? 발심하여 출가하려던 그

때의 그 마음을 기억하시는지요? 출가를 할까 말까 많이 망설이

기는 하지만 막상 이 길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는 걸 운문사를

다니면서 더욱 더 절실히 느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운문

사의 치문반을 예전에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19살에 저희 스님

께서 주시는 고무신과 아디다스 샌달을 웃으며 바꾸진 않았을 듯

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사람으로 태어나도 불법이 있는 세상

에 태어나기 어렵고 불법있는 세상에 태어났더라도 직접 불법 만

나기가 어렵다'고 부처님께서도 인정해주시는 이 어려운 일.. 출

가 수행인이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소중한 인연임에 틀

림없을 것입니다.

대부분 이렇게 처음 출가할 때는 태산 같은 각오와 결심, 기대감

으로 시작합니다. 허나 세월이 지나면 처음의 마음은 차츰 퇴색

되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그런 자신을 너그러이 이해합니다.

특히 물질문명이 발달하여 살기가 편해진 요즘은 더욱 그러하겠

죠.. 허나 그럴수록 퇴색되어가는 그 마음자리를 되돌려 억지로

라도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났다. 는 생각이나 “항상 경사스럽

고 다행하다”는 생각을 내다보면 수행은 점점 깊어진다고 합니

다. 일타큰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수행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항상

시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인데 시작하는 자세로 오래오래 하다

보면 저절로 선정력이 강해지고 지혜가 뚜렷이 밝아져 결코 물러

서지 않는 불퇴전의 자리에 이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TV가 저

희스님 방에 한 대 뿐이던 어린시절.. 스님들께선 만화 외엔 어떤

프로도 보지 못하게 하셨는데 만화가 아님에도 꼭 불러서 보여

주시는게 있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소년소녀 가장들이 나

와서 어렵게 사는 것. 또는 부모가 있어도 찌질거리고 못사는 가

정을 꼭 보여주시며 우리들이 복이 많다는 걸 강조하시곤 하셨

조.. 또 가끔은 제게 “니는 얼굴도 못났고 키도 작고 니가 할 것

이라고는 중노릇 밖에 없다”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신 말씀들..

이런 저희스님들에 의한 훈습 덕인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금

의 망설임도 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출가를 했습니다. 그렇게

대학교 4년을 다니고 운문사에 들어와 한 번씩 듣는 반스님들의

출가동기. 특별한 동기가 없는 전 그런 스님들이 너무도 신기하

고 부러웠습니다. 그리곤 난 왜 출가를 했는가 하는 의문들이 제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그렇게 고민하는 제게 저희스님께선 부모

님도 찾아주셨고 이 사람 저 사람들도 만나고 여기저기 다닐 수

있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뼈 속 깊이 느낀

건 세속적 쾌락은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 그 끝은 반드시 고통

이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지금도 마땅히 근사한 출가동기는 찾

지 못했지만 지금은 고민하지 않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는데 그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항상 믿고 지켜봐 주시는 그 분

들이 계시기에.. 제 고민에 아무 도움이 못 되 미안하다며 그냥

안아주시는 그 분들이 계시기에 그 믿음 헛되지 않게 하도록 그

저 할 뿐입니다. 늘 시작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

분들 닮는 날이 오겠죠.. 이야기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인도의 제20조인 사야다 존자 때의 일입니다. 사야다 존자가 어

느 날 저녁공양을 마치고 뜰에 나와 앉아있었습니다. 그때 까치

한 마리가 뜰 앞의 감나무 위에서 까욱까욱 하며 울었습니다. 존

자는 까치를 보고는 빙그레 웃으며 조용히 염불을 해 주었습니

다. 존자가 웃는 것을 본 제자가 까닭을 묻습니다.

“스님 왜 까치에게 미소를 띄우면서 염불을 하셨습니까?”

“저 까치는 5백생전의 나의 자식이니라 5백생 전에 내가 발심하

여 수도하러 떠라려 할 때 저 아들 녀석이 내 무릎에 앉아 목을

껴 안으며 ‘아버지 우리를 버리고 출가하시려거든 차라리 우리들

을 죽이고 가십시오’ 하면서 출가를 말렸느니라 그렇게 애원하는

자식이 하도 애처로워서 그만 출가를 포기하고 말았어. 그래서

나는 한 생을 늦게 출가하게 되었다. 발심하여 출가하려는 이를

출가하지 못하게 한 그 과보로 아들은 5백생 동안 까치의 몸을

받게 된 것이고 오늘도 속세의 인연 때문에 이 곳으로 날아와서

저렇게 울고 있단다. 그래서 그를 위해 잠시 염불을 해 준 것이니

라.”혹시 대중스님들 중에도 따라다니는 까치가 있지 않으신지

요? 그 까치가 울 때 오늘도 공양물이 올껀가 보다..라고 생각하

기 보다는 혹 전생에 내 출가를 막았던 인연은 아닌가하는 측은

한 마음으로 사야다 존자처럼 염불하며 미소를 보이심은 어떨런

지요..

부모형제 가슴에 못 박고 어렵게 선택한 이 길입니다. 많은 유혹

이 있겠지만 부디 처음 그 마음 잊지 마시고 그 마음 거듭거듭 되

새겨 회향하는 그 날까지 같은 길을 걸어가는 길동무 되어주셨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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