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거산 가득 따스한 봄 바람이 가득 하더니 어느새 함박눈처
럼 새하얀 감자꽃이 만발한 여름이 이곳에도 찾아 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혜준입니다.
『대지도론』에는 “불법의 바다에 뛰어들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믿음이다. 만약 사람의 마음 가운데 맑고 깨끗한 믿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능히 불법에 들어갈 수 있고 믿음이 없다면
불법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이라는 이 두 글자는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지만 우
리의 삶을 지탱해주고, 참다운 수행자의 길에 들게 하며, 마침
내는 부처를 이루는 씨앗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내가 본래
부처’라는 것을 믿듯 다른 사람의 불성 또한 믿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수 있고, ‘나’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긍
정하고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치문을 지내고, 강원생활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사집 첫 철, 저
는 스스로를 돌이켜 살피는 것에 소홀해지면서 수행자가 아닌
생활인이 되어버린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서 처음 출가 당시의 ‘불법에 대한 믿음과 원력’을 다시금 생
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의 출가동기는 아버지의 갑작스
런 죽음으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때 은사스님과의 만남이 인연
이 되었습니다. 불법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던 전 ‘한집에서 출
가인이 나면 구족이 승천하고, 집안의 인연이 해탈 된다’는 말
씀을 듣고, 아버지의 은혜에 보답하고 집안의 인연 해탈을 하
겠다는 일념으로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결심만으론 왠지 2% 부족한 수행자의 삶이라고 생각되었습니
다. 그렇다보니 불법에 대한 믿음조차 굳건히 뿌리 내리지 못
하는 듯 싶었습니다. 그렇게 행자생활과 2년간의 소임을 마치
고 강원에 오면서 그런 생각조차 바쁜 일상속에서 색이 바래
졌습니다. 그러던 중 수업시간에 강사스님께서 ‘한 집안에 수
행자가 나오는 것은 그 집안의 인연법을 풀기 위함이며, 본인
의 인연법을 정리하기 위해서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순간 전 제 자신의 출가 동기를 생각하며, 그 동기가 바로 다
름 아닌 불법에 대한 믿음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각자 출가 동기가 다릅니다. 저는 뭔가 그럴 듯한 원
력을 찾아다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동화속에 나오는 파랑
새처럼 저의 믿음의 시작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말입
니다.
저희 은사스님께서는 순수하고 간절한 믿음만 있으면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늘 말씀하십니다. 단지 그 믿음의 뿌리
가 내리기까지의 힘겨움을 뛰어넘을 정도의 노력을 하지 않기
에 이루어지지 않을 뿐이라고 하십니다. 또 어떤 난관에 봉착
해도 그 문제에 대해 풀어내고자 하는 원력과 확고한 믿음만
있다면 세상에 넘지 못할 산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은사스님의 말씀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조그만 경
계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 경계를 뛰어 넘어보려고 합니다. 제
본분사를 여의지 않고 수행자답게 행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서 제 믿음과 원력이 깊이 뿌리 내릴것임을 확신합니다.
혼자 크는 나무는 크게 자라지 못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숲속
에 함께 어우러져 자라는 나무는 서로 서로를 보며 비슷한 키
로 훤출하게 자란다고 합니다. 지금 저에겐 호거산이란 숲이
있고, 옆에서 늘 자라는 것을 멈추지 못하게 이끌어 주는 은사
스님과 어른스님들이 계시고, 혼자만 삐뚤어지게 자랄 수 없
도록 늘 경책해 주는 대중스님들이 있습니다. 보조스님은 도
탄에 빠진 수행자들을 혁신하기 위해 ‘정혜결사’를 시행하여,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저는 비록 보조스님처럼
이 나라 불교를 일으켜 세우지는 못하더라도 지금부터 제 자
신을 혁신하기 위해 다시금 ‘믿음 결사’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동안 성장을 멈추었던 저의 믿음의 뿌리에 ‘상구보리 하화
중생’이라는 원력의 영양분을 듬뿍 주어, 신심의 줄기를 튼튼
히 자라게 하고, 참다운 수행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자 합
니다.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새
겨서 스스로를 살피는데 방일하지 않으려 합니다. ‘자등명, 법
등명’이란 부처님의 말씀을 근본 믿음으로 늘 깨어 있는 그리
고 날마다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성장해 가는 그런 수행자가
되고자 합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무더운 여름입니다. 이 여름, 무더운 햇살은 부처님의 자비한
광명이요, 장마비는 부처님의 법문이 꽃비가 되어 내리는 것
이라 생각한다면 호거산은 그대로 부처님이 설법하시던 장엄
스런 영산회상이 될 것입니다. 대중스님들의 ‘믿음’ 자리에도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길 기원하며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늘 행복한 나날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