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이 전해진다는 뜻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과 상대방이 생각하는 것이 같을 때, 또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내 뜻을 알아 줄 때, 서로 눈빛으로 의사소통이 되었을때 우리는 마음이 통했네 이심전심이네 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심오한 뜻은 마음으로 깨달아야 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문자나 경론에 의지하지 않고 스승과 제자가 대면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을 전하는 것을 이심전심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언어를 통한 가르침뿐만 아니라 언어를 떠난 가르침인 선법을 통해 중생들의 본래면목인 부처님 마음을 전하였습니다. 선가귀감에서도 말없는 데서 말 없는데 이르는 것이 선이요. 말 있는데서 말 없는 데로 이르는 것이 교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은 난행고행을 하면서 수행 정진한 두타제일 마하가섭을 귀중히 생각하면서 열반에 들 때까지 세 곳에서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였는데 이를 두고 삼처전심(三處傳心) 즉 이심전심이라고 합니다.
첫째, 다자탑 전 분반좌반 (多子塔 前分坐)
부처님이 급고독원에 있는 다자탑 앞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교화를 나갔다 돌아온 가섭존자가 자리가 없어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남루한 차림의 가섭존자의 모양새를 보고 수군거리고 있을 때 부처님께서 “어서 오너라 여기 내 자리에 앉아라” 하시며 자리를 내어 주며 모든 위없는 정법을 그에게 부촉하였으며 입멸 후 모든 수행자의 의지처가 되리라 예언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와 가사를 같이 두르고 앉아 계시는 모습을 보이시어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과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의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다 같이 평등하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둘째, 영산회상거(靈山會上擧) 염화(拈花)
영축산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려 부처님께서 말없이 꽃 한송이를 집어서 대중들에게 보였습니다. 대중은 부처님의 의중을 몰라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미소 지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미소를 지으며 “내가 마음으로 전하는 뜻을 너만이 알고 있구나. 내 진리를 너에게 주마.” 하시면서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으니 실상은 상이 없는 미묘한 법문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사라쌍수하(沙羅雙樹下) 곽시쌍부(郭示雙趺)
부처님이 ‘구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들 때, 멀리 교화 나갔던 마하가섭은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마하가섭은 애통히 울면서 합장을 하고 관을 세 바퀴 돌면서 “항상 모든 대중에게 생사가 본래 없다고 하셨는데 왜 이렇게 열반에 드셨습니까?” 하자 부처님께서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밀어 보이시며 광명을 놓았습니다. 가섭존자가 합장 예배를 올리자 부처님께서 발을 안으로 거두시어 생사일여(生死一如)의 묘법실상(妙法實相)을 보이셨습니다.
다자탑 앞, 영축산, 사라쌍수 아래 이 세 곳에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을 전하는 이심전심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저는 사고로 몸과 마음을 크게 다쳐 세상과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마음문을 닫은 채 세상과 사람에 대한 소통을 거부하며 외롭고 힘겹게 살아오다가 은사스님을 만나 머리를 깎게 되었고 김제 문수사에서 행자생활을 1년 2개월 하였습니다.
어느 날 새벽예불과 기도를 마치고 아침공양을 준비하기 위해 후원에 갔는데 미역국이 끓어져 있었습니다. 은사스님이 미역국을 끓여서 생일상을 차려 놓으신 것입니다. 그 날이 제 생일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가정의 따뜻함을 모른 채 살아왔습니다. 또 생일날 어머니가 직접 끓어 주신 미역국을 먹어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 날 은사스님이 미역국을 끓어주시면서 “울타리 하나 없이 혼자 이 세상을 살아오느라 고생이 많았구나. 이제부터는 마음문을 열고 나와 함께 부처님 의지하며 살아보자꾸나.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인연따라 연이 부딪쳤을 뿐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가슴이 복받쳐 오르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그동안 꽁꽁 닫혀 있었던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은사스님께서 기도를 주셨습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 49편을 매일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때 저는 천수경을 겨우 외워 예불을 할 때였고 평소 말을 빠르게 입 밖으로 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편이어서 기도를 머리로 따지고 숫자적으로 계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1번 할 때 3분이 걸리면 10분이면 3번 하는데 도대체 몇 시간을 해야 하나, 하루 종일 다른 일도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마치 사회생활을 하듯이 시간을 나누고 기도를 의무적인 노동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겁을 먹고 걱정하다가 은사스님께 신묘장구대다라니 49편은 도저히 못하겠다며 기도를 반으로 나누어서 25편 하면 안 되겠습니까 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은사스님께서 “기도는 그런 마음으로 하면 안 된다. 기도를 반으로 쪼개서 하는 것도 아니다.” 라고 하시면서 “그 쓸데없는 똥고집 쌈에나 싸서 먹어버려라 마음문을 열고 너의 생각을 버려야 중노릇 할 수 있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때는 몰랐습니다. 은사스님이 어떤 마음으로 기도를 주셨는지 그 마음과 뜻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사집이 되고 선가귀감을 배우면서 은사스님께 너무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왜 머리 깎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기도를 하라고 하셨는지 지금에서야 그 뜻과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치문 봄철 운문사에 들어와 생활한지 한 달이 조금 지나갈 때였습니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매일 계속되는 습의와 빡빡한 일정 속에서 체력은 고갈되고 서서히 불평불만이 쌓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랑의 쓰레기를 버리려고 지나가고 있는데 율주스님께서 비질을 하고 계시다가 저를 부르셨습니다. 작은 꾸지람을 하시고 저의 얼굴을 보시고는 “아! 내가 방부 때 처음 순번 뽑은 치문반 스님이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저를 기억해 주시는 게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모든 어른스님 대중스님이 치문에 들어와 잘 적응하고 있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시시때때로 살피고 보살펴 주고 계신다는 것을 그 때 깨닫고 나서 또 한번 마음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출가 전에는 저의 삶이 온전히 제 힘으로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출가 후에 만난 은사스님, 운문사 어른스님, 대중스님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길과 사랑으로 제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운문사 어른스님 대중스님께 배우고 닮아가면서 중물이 들어가고 싶습니다.
중국 당나라 임제선사의 임제록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古人云 向外作工夫 總是癡頑漢 處隨作主 立處皆眞 境來回換不得
고인운 향외작공부 총시치완한 수처작주 입처개진 경래회환부득이로다.
옛 성인이 말씀하시길, “밖을 향해 공부 짓는 것은 모두 어리석은 자들의 짓일 뿐이다.” 어디를 가나 주인이 된다면 서 있는 곳마다 모두 참된 것이 된다. 어떤 경계가 다가온다 해도 끄달리지 않아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객이 아니고 주인으로 살며 환경과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해야 할 의무와 도리를 다할 때에 그곳이 진리의 자리이고 헛된 번뇌 망상이 없어지면 그 마음자리가 부처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저는 원두 소임을 살고 있습니다.
밭에 작물이 땅의 단단함을 뚫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어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것처럼 저도 부처님 말씀으로 물을 주고 탐진치를 뽑아내며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서로 협력하며 화합과 소통으로 어른스님, 대중스님들 건강하게 드실 수 있도록 정성 다해 가꾸어 나가겠습니다.
항상 소중함과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보겠습니다.
어른스님 대중스님 존경합니다.
어른스님 대중스님 사랑합니다.♡♡
사집반 원두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