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초심과 발심(유정스님)

운문사 | 2006.04.10 11:23 | 조회 3106

화엄반 유정입니다.
출가할 때의 신심 충만했던 초심은 여전하십니까? 나날이 마음을 굳건히 일으키고 계십니까? 저에게서 초심은 고등학교 졸업을 한 달 반 남겨놓고 은사스님께 출가하겠다는 말씀을 드렸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 달 후 새벽기도를 마치고 삭발을 해 주실 때 머릿 속을 채운 것은 '잘 살자'였고, 가슴 속을 가득 메운 것은 행자로 거듭난 제 자신에게 신고식과도 같은 점심공양 메뉴였습니다. 어려서 절에 산 탓에 밥 때가 되면 공양을 하듯, 삭발은 큰 결단이 필요치 않은 자연스런 과정이었기에 제겐 점심공양 차리는 것이 더 중요했고 그것이 곧 초심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강원을 들어왔고 몇 번의 방학을 했습니다. 어느 날 제사 장을 보기 위해 대문을 나서는데 은사스님께서 대뜸 "저 봐라. 수행자가 달리 좋은 줄 아나, 동네 처사들이 저 집 안 기웃거릴 때가 없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희 절 반대편에 주거목적이 모호한 보살 한 분이 집을 짓고 이사를 왔습니다. 왕래하는 사람드릐 대부분이 남자였고 교회 봉고차도 주기적으로 주차되어 있는 그런 집이었기에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인 동네에서 부인이 일하러 간 사이 동네 처사님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얼마 뒤 우연찮게 그 보살님이 비구니였었고 지금은 카운슬러를 하는데 그 집에 상담하러 왔다가 절이라 구경하러 왔다는 사람에게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 집을 또 한 처사가 기웃거리는 걸 보게 되니 내 살림살이의 무게가 가볍진 않았는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삭발염의했단 이유로 저 음흉한 처사들의 눈빛에서 조금 비껴났다고 해서 방심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그 날부터 하루 삼천 배를 목표로 삼고 주력 만 번, 자는 시간 외엔 눕지 않기, 교과목 독송하기 등 나름대로 무게를 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종전의 생활보다 정말 빡빡했던 일정이라 은사스님의 심부름, 집에서 해야 할 내 몫의 일들을 미루었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어느 날, 은사스님께서 당신 방으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기도 다 했나?" "아니오, 아직 팔백 배 남았어요." "기도는 잘 돼 가나?" "예." "당연히 잡안을 네 기분데로 흔들면서 하는 기도인데 잘 돼야지." "그런데 유정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다른 게 아니다. 모서리져 있는 너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이 나이를 먹는 것이고, 수행이라는 것은 거기에 만 중생을 보듬을 수 있는 자비를 가지는 것이다. 그래, 네가 한 기도 갯수만큼 자비가 늘었드나?"

섬광처럼 스쳐 지나는, 그동안 스스로를 속박했던 행동들이 부끄러웠습니다. 방을 나와 자존심이 상하고 부끄러운 심정에 목욕탕에 들어가 울었습니다. 퉁퉁 부운 눈이 거울에 비쳤을 때 거기엔 무엇인가를 한다는 자만심에 꽉 찬 두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니구나. 그럼 뭘까? 무엇이 문제였지? 잘 하고 싶었고 힘이 생겨 함부로 보이기 싫었던 마음을 돌려 생각한 끝에 끝에 얻은 것은 일적수구억충一適水九億蟲 ! 한 물방울 속에 9억 수의 벌레가 있으려면 그 공간이 얼마나 좁겠습니까. 그렇게 남을 위한 배려없이 순전히 나만을 위한 기도였음을 깨달았을 때 그 기분은 폭파된 폐허의 참담함이었습니다.

나는 삭발을 했고 먹물옷을 입은 출가자입니다. 점심공양 상만을 생각했던 초심은 그나마 순수했지만, 보이려 했던 '뿔뚝신심'의 외형은 부끄러움의 발심이었습니다. 진발심眞發心은 점점 내가 잘못 살고 있기에 더 잘 살아야겠다고 다잡아,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반복해서 행하면 그 반복에서 축적된 것을 모아 성큼 진일보되도록 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인과 연을 심고 가꾸냐에 과보가 달라지듯, 옆 집 보살님에 의해 일으켜진 제 발심은 거듭 충전되었습니다.

중노릇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해타산이 필요치 않고 타인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을 때, 뜨거운 불덩이 될 땔감자료 '발심'이 가슴 속에 담아질 것입니다.

人身難得

佛法難逢

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

사람 몸 얻기 어려움이요

법 만나기 어려움이니

이 몸을 금생에 향해 제도치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향해 제도하려 하는고

열 손가락을 모은 합장은 십악十惡으로 흐르는 몸과 말과 뜻을 십선十善으로 돌려 마음을 순수하게 하나로 모두 모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진실되게 모은 두 손으로 어찌 거짓발원을 하겠습니까.

대중스님 !
공부 열심히 하시고, 저 또한 잘 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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