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절 심(切心) 선경스님

운문사 | 2006.04.10 12:25 | 조회 3779

안녕하세요. 화엄반 선경입니다.

저는 오늘 ‘간절한 마음’이라는 주제로 저의 법문을 시작할까 합니다.

여기 계신 대중스님들은 한 번씩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 보셨을 것입니다.

출가를 앞두고 망설이던 마음을 접고, 큰 신심과 부처를 이루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출가하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저도 출가하기 전,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해인사 장경각 법당에서 천배 100일기도를 회향한 적이 있습니다. 스님이 되고는 싶었지만, 아직 부족함이 많아서 출가할 결심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절 할 때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제가 출가하여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훌륭한 스님이 되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오로지 한 마음뿐 이었습니다. 너무나도 간절했습니다. 절이 끝나고 암자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포행하시는 선방스님들을 자주 보게 되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거룩하고 부럽기만 했습니다. 저는 스님들을 향해 ‘성불하십시오. 스님’ 하고 발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100일 기도 회향을 앞두고 함께 기도하던 분들과 우연히 지족암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자방’이라는 선방이 있다길래 그냥 한 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큰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족암에 도착하여 법당에 참배한 뒤 아자방으로 갔습니다. 팻말에는 ‘정진중이니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쓰여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몰래 들어갔습니다. ‘두근두근’ 4개의 좌복이 우리 4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좌복 하나씩을 맡아 앉았습니다. 마침 죽비가 있어서 제가 죽비를 치고요, 그렇게 몇 분이 흘렀습니다.


고요한 적막 속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눈을 살며시 들어 문 쪽을 바라보았더니 삭발한 머리에 하얀 구레나룻의 노스님이 저희를 보고 계셨습니다. 일타 큰스님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큰스님께서

차 한 잔 마시고 가지. 아주 맛있는 게 있는데... 이리와!

하시는 겁니다.

우린 다시 아자방 한 쪽으로 모였습니다. 미국에서 가져 왔다는 원두커피를 주셨습니다. 큰스님을 중심으로 이야기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의 기쁨이란!...

저희들의 생각을 읽으셨는지


출가를 하려면 딴 것은 다 놓아야 해. 배가 고파서 죽겠는데 밥 생각만 나지 딴 생각은 안 나잖아. 안 그래! 스님네 공부도 그래. 간절하게 기도하고 참선해야지. 딴 생각나면 공부가 안되거든. 이것저것 생각만하다가 시간이 다 가잖아.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길 ‘사람 몸 받기 어렵고, 그보다 남자 몸 받기 어렵고, 또 그보다 불법 만나기 어렵다.’고 하셨어. 모든 생각을 놓고 한 길만 봐. 그냥 출가해. 왜 아직 안했어!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아.


고민덩어리가 ‘확’ 날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스님의 간절한 마음과 4명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습니다. 우리의 간절한 100일 기도는 일타 큰스님을 만나는 것으로 회향되었고, 저는 이 기도를 마치고 바로 출가를 결정했습니다.


그 후, 절집의 새로운 일들을 익히고 시간이 되어 이곳 운문사에 들어오게 되었고 사교 가을, 저는 또 다시 간절한 기도를 했습니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미소를 보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주세요. 어른 스님을 모시는 소임이었으면 좋겠습니다.’하고 매 순간 발원했습니다. 기도는 성공이었습니다. 가을철이 끝날 무렵, 저에게 큰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죽림헌 하시자 소,’ 학장스님을 옆에서 모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뻤습니다. 서투르고 실수가 많았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매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잘 다듬어져 있는 화초들...큰스님의 흔적입니다. 큰스님이 서예를 하실 때 옆에서 살며시 봅니다. 연세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힘 있고, 강한 붓놀림과 글씨의 형상....

매일 포행을 하실 때는 한 손에 108염주가 있습니다. 쉬지 않고 열심히 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염주를 돌리시는 손가락에는 간절함이 느껴졌습니다.


행자시절 큰 형님과 함께 찾아가 뵈었던 혜암 큰스님께서는 저에게 참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간절하게 ‘이 뭣고!’하고 화두를 간해. 글자에 집착하지 말고 왜 ‘이 뭣고’ 하셨을까하고 생각해 가고, 생각해 오면 언젠가는 부처님, 조사스님, 선지식들이 경험한 그 길을 갈 수 있어

라고


대중스님!

우리 자신이 선택한 부처되는 길.

순간순간 초발심을 기억하고 경책하면서 함께 정진하는 수행자,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며 믿고 행하는 밝은 수행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다시 한 번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대중스님, 정진 여일하십시요!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