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뜨거운 여름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강원생활의 마지막 화엄반을 마무리하고 앞으로 어떤 수행자가 되어야 할 지 고민하고 있는 화엄반 도욱입니다. 저는 익숙함이라는 주제로 차례법문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은 오랜세월 익혀온 습관의 영향을 받습니다. 여러분들은 강원생활이 힘드신가요? 저는 힘들어 보이나요?
출가한 후 제게 많은 사람들이 질문했습니다. “왜 출가했어요?” 그러면 저는 거의 고정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출가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함도 출가의 이유가 되겠지만 그 진짜 이유는 “너무 익숙해서”라고 답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저는 3살 때 노스님의 손에 이끌려 한 절에 도착했습니다. 그 절에는 이미 많은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마 후면 다른 절에 맡겨질 상황에 처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저보다도 큰 텔레비전을 흔들면서 놀다가 텔레비전이 쓰러져 제 손 위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3주간 손에 깁스를 하게 되어 병원에 계속 다니게 되었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냥 그렇게 지금까지 저 홀로 남아 그 절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절 옆에 바로 부설 유치원이 있어 4년동안 거의 매일 공양게송과 어린이 오계를 배웠고, 매주 일요일 어린이 법회와 여름불교학교에 동참하였고 좀 더 학년이 올라가자 집전을 하고 저녁예불을 드렸습니다. 작은 물방울이 옷에 스며들 듯 절 안에서의 생활을 습득하게 되었습니다.
마음 속에 아주 조금 출가할 마음이 있었지만 선뜻 출가를 결심하지 않았던 저에게 가장 익숙함으로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노스님과 은사스님께 말씀드리고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삭발을 한 후 은사스님께서는 초하루 법회에 저를 신도분들에게 소개시키시며 “이제 도욱스님입니다. 앞으로 수행 잘하도록 잘 지켜봐 주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머리카락이 없어 머리는 가벼워 졌지만, 몸과 마음은 참 무거웠던 순간이었습니다. 늘 봐왔던 신도분들은 눈물을 흘리시며 제 손을 꼭 잡고 아무말 없이 쳐다보시기도 하고 웃으시면서 더 잘 어울린다고 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애정으로 지금까지 저를 봐주신 신도분들의 마음이 느껴지면서 좀 더 나은 수행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노스님께서도 "시주의 은혜를 갚기 위해선 중노릇 잘하는 것이 최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중노릇 잘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미니계를 받은 후, 은사스님께서는 저를 꼭 운문사로 보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운문사는 절에서의 생활이 익숙한 저에게도 매우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곳이였습니다. 늘 혼자 자고 혼자 공부하고 혼자만의 시간, 조용하고 차분한 것을 좋아했던 저에게 운문사는 익숙하지 않아 정신이 없고 바빴으며 많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참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저는 어른들께 "익은 것은 설게하고 선 것은 익게하라"시는 말씀을 듣고 익숙하지 않은 그 공간을 익숙하게 만들어 가고 싶었습니다. 강원생활과 스님으로서의 위의를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저의 습관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합장을 할 때 바로하는 것, 염불할 때 큰 목소리로 하는 것, 잘못을 했을 때 인정하는 것 등등을 처음에는 서툴지만 자연스럽게 나의 몸에 스며들도록 말입니다. 이것은 많은 대중스님들이 있는 운문사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이것이 은사스님께서 저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익혀야 할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은 몸에 익은 습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랜 시간 동안 몸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변화해야할 것을 순간순간 인식해서 바꾸려 노력한다면 분명 가능해집니다. 저는 출가 전부터 자세가 좋지 않고 등이 많이 굽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너무 몸에 굳어져 있어서 필려고 노력을 해도 자꾸 의식적으로 챙기지 않으면 다시 등이 구부러지곤 했습니다. 이런 제가 답답하기도 하고 바뀌지 않는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에게 참 소중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사교반 겨울에 노전 소임을 살면서부터입니다. 늘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허리를 쭉 펴고 앉아있어야할 상황이 온 것입니다. 그 시간 만큼은 제 몸을 의식하며 자세가 흐트러지면 곧바로 세웠습니다. 그렇게 한달, 두달, 세달.. 끝날 것 같았던 노전 소임이 코로나19로 인해 병법소임으로 바뀌면서 또다시 한달, 두달.. 점점 의식하지 않아도 허리가 펴져 있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그리고 피고 있는 자세가 편안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몸에 벤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혼자하려했으면 가능했을까요?
『화엄경』 「야마궁중게찬품」에는 이러한 게송이 있습니다. "心如工畵師하야 能畵諸世間하나니 五蘊悉從生이라 無法而不造로다" "마음은 훌륭한 화가와 같아서 능히 모든 세간을 그려낼 수 있으니 오온이 모두 다 마음으로부터 생겼났다. 어떠한 법도 마음이 짓지 않은 것은 없다"
이 운문사 강원생활을 힘들게 보낼 것인지 아니면 즐겁게 보낼 것인지는 어떤 마음으로 운문사에 익숙해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강원생활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익은 것은 설게하고 선 것은 익게하여 중물 들여 훌륭한 수행자의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 이것이 앞으로 중노릇 잘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행복한 수행자 되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