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상견자과환 불견천지인과죄 常見自過患 不見天地人過罪 - 치문반 천진

가람지기 | 2020.10.18 18:12 | 조회 836

안녕하십니까?

상견자과환 불견천지인과죄라는 주제로 2020년 가을철 차례법문을 하게 된 치문반 천진입니다

차례법문을 준비하던 학기 초, 큰 부전 스님이 가을철 목표를 적게끔 쪽지를 만들어 나누어 주었습니다

수행 목표를 생각하니 육조혜능스님께서 설하신 상견자과환 불견천지인과죄(常見自過患 不見天地人過罪)라는 열 두 글자와 이 구절과 연관된 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성찰해오던 내용을 차례법문으로 풀어내고자 합니다.

 

예전에 기도를 해 보라는 지인의 권유로 절에서 몇 달을 지내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일기도를 하겠다고 한 사람이 왔습니다. 그는 하루에 삼 천배를 하면서 능엄주 108독을 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하는 기도에 힘들어 하는데, 그는 두 가지를 하면서도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기도만 했습니다. 설거지 하나 돕지 않았습니다.

잘 하는 사람이 일 좀 도와주지.’

저는 체력과 시간을 요하는 힘든 기도를 하는 사람을 돕지는 못하고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사람이 미우니까 그가 사용하는 화장품 냄새조차 불쾌했습니다.

밤늦게 까지 웅얼대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주문 외우는 소리는 정말 싫었습니다

그는 백일기도를 무사히 마쳤고, 저는 백일동안 마구니 노릇을 했습니다. 그의 기도 회향의식에 저도 참석했습니다

의식을 마치고 주지스님께서 법문을 하셨습니다.

기도는 나를 낮추고 부처님께 참회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서 상에 사로잡혀서 기도를 거꾸로 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을 떠받드는 기도를 하면 안 된다.”

그리고는 갑자기 저를 지명하시며 크게 나무라셨습니다. 스님의 목소리가 벼락같았습니다

두렵고 부끄럽고 머리는 어질어질하고, 얼굴은 불타는 듯 뜨겁고, 가슴은 답답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시기 질투하여

미워했던 나의 잘못을 참회했습니다.

그렇게 미워했던 사람은 떠났지만 그 이후에 다른 미운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 사람이 가고 나면 또 다시 새로 미운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저는 모두 그만 두고 엉엉 울고 싶었습니다

법당에서 하던 절을 멈추고 잠시 서있으면서 나의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뭐지? 왜 모두 밉고 화가 나지? 이제는 나의 소중한 사람까지 미워하네? 그들이 잘못해서 미운 게 아니구나

내가 가진 미워하는 마음이 그들에게로 향했던 것일 뿐이구나. 그냥 화를 낼 대상, 미워할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구나.’

 

그 무렵 육조단경에서 이와 같은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신회가 육조스님께 예배하고 물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좌선하시면서 보십니까? 보지 않으십니까?”

육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신회가 또 여쭈었습니다.

큰스님은 어째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십니까?”

육조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상견자과환 불견천지인과죄(常見自過患 不見天地人過罪)”

,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항상 나의 허물을 보는 것이요. 내가 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허물과 죄를 

보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을 통해 크게 뉘우친 후부터 저는 항상 나의 잘못을 참회하고, 남을 향해 시시비비를 따지던 시선을 제 자신에게로 

돌리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후 은사스님의 은혜로 출가를 하고 불보살님의 가피로 아름다운 운문사에서 치문반으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한 도반의 지적에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 자신과 대화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자 생각해봐. 나이 빼고, 표정 말투 빼고, 그 때 내 상황 빼고, 그 일 하나만 보자고

어때? 잘못했지?” “잘못했네.” 

그래 변명하지 말고 도망가지 말고 인정하자. 변명하고 말투 표정으로 시비하는 건 나의 잘못을 상대에게 전가하고 회피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 일은 지나갔지만 다음에는 종두 일을 하던 중 다른 도반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 도반이 저에게 왜 화를 내냐고, 화를 내는 것은 나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미안합니다. 화를 낸 건 아닙니다. 스님에게 감정은 없었습니다시간은 정해져 있고 일은 해야 하는데

스님의 말이 길어져서 상황을 정리하려니 그랬습니다.”

그렇게 도반의 마음을 상하게 했는데, 며칠 뒤 또 다른 도반에게 똑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그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제 마음은 더 불편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상황이 바빴다는 건 핑계일 뿐, 문제는 제게 있었습니다. 습관대로 편한대로 말하고 행동하다보니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결국 나의 마음도 불편해 진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대화하는 와중에 시간이 흘러 가을철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사소한 습관 하나 바꾸지 못해서 매번 같은 습의를 반복해서 받고, 똑같은 내용의 걱정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견자과환 불견천지인과죄(常見自過患 不見天地人過罪), 적어도 제게 다가오는 이 모든 걱정과 문제들의 원인이 

제 안에 있다는 것만은 항상 마음에 새겨두려 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제 모습도 더 나아져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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