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천수경 이야기 - 사집반 정연上

가람지기 | 2020.10.18 18:20 | 조회 1019

안녕하십니까? <천수경 이야기>라는 주제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사집반 정연입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방금 제가 <천수경>이라고 하니 어떤 경전이 떠오르십니까

대부분의 스님들께서는 우리가 매일 독송하고 있는 <천수경>을 떠올리셨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 법문의 주제는 조금 다른 <천수경>입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홀로 훌쩍 떠난 인도배낭여행에서 불법을 만난 후, 템플스테이에서 처음 천수경을 읽었을 때,

 ‘아약향도산 도산자최절이라는 육향문을 읽으며 스님들께서 매일 이런 기도를 해서 세상이 이만큼 유지되었구나라는 

감사한 마음과 스님의 삶에 대한 호기심이 시작되었습니다.

출가 후, 매일 천수경을 독송하며 여기 나오는 글은 누가 지은 것일까? 무슨 뜻일까?’ 라는 물음을 가지게 되었고

후에는 왜 <천수경>은 다른 경전처럼 여시아문으로 시작하는 육성취의 형식을 갖추지 않고 짧은 게송들로 이어지는 것인지 궁금하였습니다. 그런 물음을 통해 접근한 천수경을 이 자리를 통해 대중스님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현재 우리가 독송하고 있는 <천수경>은 불교 의식에 적합하게 개편된 편집본입니다. 밀교 의례의 전승발전과 함께 삼국시대 때, 당나라 유학승으로부터 전래된 원본 경전의 일부와 다른 경전 등의 내용을 편집하여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말씀드리려는 경전이 현행 <천수경>의 원본인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경>입니다. 쉽게 부르기 위해 원본 천수경은 <불설 천수경>이라 약칭하겠습니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 신앙과 관련된 천수다라니 및 그 신앙의궤를 전하고 있는 경전의 총칭'으로서의 소위 천수경류 경전은 2-3세기경 인도에서 형성된 관세음보살 신앙에 바탕을 둔 채 만들어진 밀교부 경전입니다

중국에 전래된 것은 기원 후 7세기이며 중국에서 번역된 천수경류 경전만 18종에 달합니다

그 중에서 우리나라에 삼국시대 때 의상대사를 통해 최초 전래된 것이 앞서 말씀드린 가범달마 역본의 <불설 천수경>입니다.

<불설 천수경>은 보타낙가산 관세음보살의 궁전에 계시던 부처님께서 총지다라니를 설하시려 하자 관세음보살이 

부처님께 허락을 받고 대신 설법을 하는 내용입니다.

다른 경전과 마찬가지로 여시아문으로 시작하여 육성취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화자를 중심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전반부에는 관세음보살이 직접 대비심다라니와 천수천안을 갖추게 된 연유, 다라니 독송법, 다라니 지송의 공덕 등을 설법합니다

후반부에서는 아난의 물음에 부처님께서 답하는 형식으로 다라니의 명칭과, 관세음보살의 기원, 마지막으로 관세음보살 42수주에 대한 설법이 담겨 있습니다.

 

능엄주가 마등가의 주술로 위험에 빠진 아난을 구하기 위하여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주신 다라니라면

대비심다라니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요?

 

<불설 천수경>에 따르면, 무량억겁 전 관세음보살이 보살초지였을 때, 당시 출세하신 천광왕정주여래 부처님께서 

관세음보살을 불쌍히 여기시고 또한 일체중생을 위하여 대비심다라니를 설하시며 이 다라니를 가지고 미래세상에

 죄업이 무궁무진한 중생들을 위하여 이익이 되는 일을 하라시며 금색의 손으로 관세음보살의 정수리를 만졌고 

관세음보살은 다라니를 듣고 바로 팔지(부동지)의 경지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환희하여 일체중생을 안락하게 하기

 위하여 천수천안을 구족하길 발원하자 천수천안을 구족하게 되었고 언제나 다라니를 수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관세음보살은 왜 다라니를 우리에게 설법하셨을까요? 경전 속 관세음보살님의 법문을 잠시 들려드리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 대비심 다라니주가 있어 지금 선설(宣說)하고자 합니다. 모든 중생을 안락케 하고자 하는 연고며

일체 모든 병을 없애기 위함이며, 수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며, 부요(富饒)를 얻게 하기 위함이며, 일체 나쁜 업과 큰 죄를 

멸해주기 위함이며, 모든 장애와 어려움을 여의기 위함이며, 일체 백법(白法)과 모든 공덕을 기르기 위함이며, 일체 모든 

착한 일을 성취하기 위함이며, 일체 모든 두려움을 멀리 여의기 위함이며, 속히 일체 바라는 원을 만족하게 되기 위함인 

연고로 선설코저 하오니,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큰 자비로써 중생을 불쌍히 여기사 선설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런 마음으로 부처님께 다라니를 설할 것을 허락받은 관세음보살은 다라니를 수지코자 하는 중생을 위하여 다시금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다라니 독송법을 설합니다.

만약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동남·동녀가 이 다라니를 수지코자 하거든, 모든 중생에게 자비심을 일으키고

나를 좇아 먼저 이와 같은 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이 저희가 잘 알고 있는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지일체법으로 이어지는 십원문아약향도산 도산자최절의 육향문이라는 발원문입니다. 발원 후에는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과 아미타 여래의 이름을 부르며 오롯이 생각하고, 일체 죄의 장애가 소멸될 수 있도록 시방의 스승들에게 참회하며, 참회함으로써 시방의 스승들이 오셔서 증명해주신 다음에야 다라니를 외우되 하룻밤에 5편을 독송할 것을 설합니다.

 

이 밖에도 경전 속에는 각 열다섯 가지의 좋은 생과 나쁜 죽음을 피하는 공덕 등과 같은 다라니 독송 및 수지자의 공덕과 

위신력, 과거 성불한 부처였으나 일체중생을 안락하게 하기 위하여 보살로 형상을 나투셨다는 관세음보살의 기원 등

인터넷 속 출처가 불분명한 지식이 아니라, 경에 근거한 지식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행지구비(行知俱備) 여거이륜(如車二輪)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행하는 데에 아는 것이 합쳐져 올바른 이해가 밑받침된다면,

마치 수레의 두 바퀴가 균형을 이뤄 굴러가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불교에 대한 바른 지식은 바른 믿음과 바른 실천을 

하기 위한 주춧돌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른 지식이 반드시 바깥에서 얻는 것만을 가리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렇게 구한 지식을 살아내지 못한다고 자책하거나 스스로는 몰아세우는 일도 바른 것은 아닐 것입니다.

 

처음 발심을 하고 어쩌면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는 작은 발견 이후로 부처님을 따라 걸어온 

길들은 꽤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기준을 세우고 그 틀 안에 자신을 몰아넣은 

후에는 부족한 나를 확인하는 시간의 반복이었습니다.

 

하지만 차례법문을 준비하면서 글로 쓰고, 그 내용을 대중 스님들 앞에서 말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웠지만

관련 서적을 읽고, <불설 천수경>을 살펴보는 과정만큼은 환희심의 연속이었습니다. 스스로 가졌던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살펴보는 동안에는 내가 잘난 인간인지 못난 인간인지에 대한 낡은 관심은 점점 멀어졌습니다

기도를 할 때, 처음에는 관세음보살과 내가 분리된 존재였다가 기도를 하다 보면, 관세음보살과 내가 하나가 되듯이

어쩌면 경전 속 천광왕정주여래께서 관세음보살에게 다라니를 설하시고 관세음보살이 우리에게 다시 다라니를 설하신 

것처럼, 나 또한 관세음보살처럼 중생을 위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처음에는 관세음보살님께 구하는 마음으로 기도했지만, 그 구하는 마음이 관세음보살님의 원과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욱 넓고 깊은 마음이라 느꼈기에 이제는 관세음보살님의 원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경전이 부처님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라면,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모든 내전들은 우리에게 숨겨져 있는 비밀을 

스스로 발견하기 위해 움직였던 분들의 기록이 아닐까요? 또 그러한 움직임 속에서 그들이 무엇을 보았고 발견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들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모든 이야기들은 가장 가슴 뛰는 여행기이자 보물지도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불설 천수경> 속에서 대범천왕이 다라니의 형상을 말해주기를 청하자, 관세음보살이 설한 내용으로 

법문을 마치고자 합니다.

 

크나큰 자비의 마음(大慈悲心)이며 치우침 없이 평등한 마음(平等心)이며 함이 없는 마음(無爲心)이며, 물듬 없는 청정한 마음(無染着心)이며 존재를 공으로 살피는 마음(空觀心)이며, 늘 공경하는 마음(恭敬心)이며 늘 낮추는 마음(卑下心)이며 어지러움이 없는 평화로운 마음(無雜亂心)이며 집착해 취하지 않는 마음(無見取心)이며 위없는 깨달음의 마음(無上菩提心)이니, 이와 같은 마음이 곧 다라니의 모양이니 그대들은 마땅히 이를 의지해서 수행할 것이로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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