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일체유심조-사집반 영인

가람지기 | 2021.01.02 08:06 | 조회 1131

일체유심조

영인/ 사집과

 

운문사에서 두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는 사집반 영인입니다.

어느덧 한 해의 마무리하는 달이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12월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대중스님들께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 하시고 계신가요?

 

저는 한 해를 돌아보며 저의 행자 생활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갓 출가를 하고 나서는 넘치는 의욕으로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그 어떤 일도 힘들다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하며, 평소에 잔소리라고 생각했을 말조차 기분 좋게 넘기며 즐겁게 행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3개월 정도 지나고 행자 생활이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주변 사람의 말과 행동이 거슬리고 화가 나기도 하고, 일에 대해서 힘들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갓 출가했을 때 제가 가졌던 마음, 그 의욕은 어디로 사라지고, 즐거웠던 행자 생활이 괴로움으로 변한 것일까요?

우리는 흔히 행복과 불행은 상황 또는 환경에 따라 온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내 마음에서 만들어내는 것, 마음가짐에 따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문제해결을 위한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행복할 수도 있고, 작은 시련에도 상황과 환경 탓을 하고 원망하여 불행하기도 합니다. 마음가짐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이 행동을 만들고 반복되는 행동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또 성격과 태도를 형성합니다. 이렇게 그 누구도 날 행복하게 또는 불행하게 할 수 없으며,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화엄경의 핵심사상인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라는 일체유심조의 뜻 일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일체유심조 하면 가장 먼저 원효대사를 떠올리실 겁니다. 원효대사는 의상대사와 유학을 떠나기 위해 당나라로 가다가 날이 저물어 동굴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일어나 물을 찾다가 바가지에 담긴 물을 아주 맛있게 마시고 다시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간밤에 마신 물은 해골에 고인 물이었습니다. 원효대사는 이를 보자마자 너무 놀랍고 역겨운 나머지 구역질을 하였고 그 순간 어제 해골에 담긴 물을 달게 마실 때나 오늘 구역질을 할 때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다만 달라진 것은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 마음이 일어남으로써 갖가지 사물의 상이 생겨나고 그 마음이 사라지면 함께 사물의 상도 사라진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심생즉 종종법생 심멸즉 촉루불이 삼계유심 만법유식 심외무법 호용별구-마음이 일어나면 여러 가지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해골과 바가지가 둘이 아니다 삼계가 오직 마음일 뿐이요. 만 가지 현상이 오로지 식일 뿐이네 마음밖에 현상이 없거늘 어찌 따로 구하겠는가라는 게송입니다.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원효대사는 당나라에 가서 불법을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신라로 돌아와서 각고의 노력 끝에 수많은 저술을 남기고 불교사상 발전에 크게 기여 하셨습니다.

 

일체유심조는 화엄경 사구게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의 한 구절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들에 대해 알고 싶으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찰할 것이니 모든 것은 마음이 지은 것이니라여기서 법계성이란 일체의 근본 성품인 진리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알려면 법계의 성품을 보아야 하고 법계의 성품을 보려면 자신의 마음이 세상만물을 지었다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종종 부처님이 설하신 의미와 다르게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단순히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항상 좋은 마음을 일으키고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일체유심조의 진정한 의미는 마음이 주체가 되어 세상만물을 구성해간다는 뜻이 아닐까요?

 

예를 들어 여기 붉은 색의 연꽃이 있다면 마음이 눈앞의 물체인 연꽃을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연꽃에 마음이 개입하여 명칭을 짓고 개념을 짓고 가치를 지었다는 의미입니다. 연꽃이라는 이름도, 붉다는 색깔도, 줄기, , 꽃이라는 구분도 연꽃은 저렇게 생긴 것이라는 개념도 모두 마음이 구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꽃은 저희들이 보는 것처럼 고정불변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보는 중생의 마음에 따라 천만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연꽃은 실체가 없는 것인데 오로지 마음이 정해놓고 실체가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원효대사가 한밤중에 아무런 생각 없이 마신 물이 아침에 보니 해골물이라 구역질 한 것도 마음이 물에 대해 깨끗하다 더럽다고 일으킨 분별심일 뿐이지 물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저의 행자 생활이 즐거움에서 괴로움으로 변한 것도 저의 분별심 때문이었습니다. 어떠한 한 가지 사물이나 상황을 놓고 보았을 때 받아들이는 저의 마음에 따라 그 현상을 좋다 싫다 분별했던 것입니다. 사물이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하더라고 그것을 괴로움으로 받아들이느냐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므로 괴로움이란 제 스스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보통 사물이나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생각하는 과정을 거쳐서 사실을 왜곡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배우고 특히 보고 들은 경험에 의해서 그런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되면 긍정 또는 부정적인 느낌이나 생각으로 분별심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본 것이 아니라 저의 경험이나 생각에 의한 분별심으로 왜곡되게 봄으로써 괴로웠던 것입니다.

 

눈앞에 전개되는 모든 사물과 일들이 마음의 조작임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머리로만 알았을 뿐 체득하지 못하였기에 지금도 마음 다스리는 것이 무척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금강경을 항상 수지독송하며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이는 일체 인연 따라 화합하는 모든 현상은 꿈과 환상, 물거품과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번갯불 같은 것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니라.’라는 이 사구게를 항상 마음에 새겨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이 가르침을 체득하여 부처님을 알고 진리를 보게 되는 날이 오겠지요.

 

마지막으로 육조단경의 글로 마치겠습니다.

미혹한 사람이 만약 깨쳐서 마음이 열리면 큰 지혜를 가진 사람과 더불어 차별이 없다.

그러므로 깨치지 못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한 생각 깨치면 중생이 곧 부처임을 알아야 한다. 모든 만법이 다 자기의 마음 가운데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찌하여 자기의 마음에서 단박에 진여본성을 보지 못하는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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