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원
윤담/ 사교과
末世諸衆生이 心不生虛妄하면
말세의 모든 중생이 마음에 허망함을 내지 않으면
佛說如是人은 現世卽菩薩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러한 사람은 현세에 곧 보살이라 하시느니라.
<<원각경가운데에 청정혜보살장>>말씀이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사교반 윤담입니다.
대중스님들! 잠시만 대웅전 쪽의 어간을 바라봐주시겠습니까? 창문 위 액자엔 우리 운문인들이 불법문중에서 각자의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는 학훈이 있습니다.
立志發願 뜻을 세워 원을 발하고
精進不退 정진하여 물러나지 않으며
流通敎海가르침의 바다를 유통시켜라
여러분은 어떤 뜻을 세워 무슨 원을 발하려고 노력하고 계십니까?
저는 어린이 법회 등을 통해 만나게 되었던 아이들과의 체험으로 그들의 천진무구함과 고운 심성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나와 혹은 우리와 상대방이 다르다는 이유로 왜곡된 견해를 가지게 하면 안 되겠다는 뜻을 세워 그들과 함께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보살행을 하며 수행을 하고자 하는 원을 발했습니다.
제가 꼬마였던 어린 시절, 동네에 하나뿐인 타종교 소속의 유치원에서 겪었던 문화적인 충격과 그로인해 유치원 중퇴라는 이력을 가지게 된 것, 초등학교 입학 후엔 1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양호 선생님의 수위가 넘는 전도활동과 방과 후 다니게 된 속셈학원 원장 선생님의 종교 편향적인 태도,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듣도 보도 못한 황당한 종말론과 휴거 이야기, 중학교 때 선생님들의 조직적인 신앙형태를 겪고 나서 사춘기 시절을 혼란과 피해의식으로 어영부영 보냈던 걸 후회하며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은 저와 같은 착오를 겪지 않길 바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어린이 포교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발원하게 되었습니다.
남녀 쌍둥이로 태어나 같이 자라면 누군가 한명은 요절한다는 속설로 인해 일찌감치 가족과 떨어져 지낸 저는 살갑게 애정표현을 하는데 서툰 스타일의 차막내 고모인 스님 아래서 늘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남동생을 원망하는 마음과 빡빡머리의 모든 스님들을 미워하는 마음과 또래 아이들과 다른 가정환경을 싫어하는 마음으로 지내다가 다행히 선객이신 지현 사숙님을 만나게 되어 이 모든 것이 다 내가 전생부터 지은 인과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참회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업과 인과법에 대해 무관심하였고 절집 식구들에겐 마음의 문을 꼭꼭 닫으며 지냈던 제가 참회를 하자 마음의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아무도 저에게 불법에 귀의하기를 강요하지 않은 것, 부처님의 은혜로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며 자란 것, 시주물을 아껴 쓰며 검소함을 몸소 실천 하셨던 어른들의 모습을 본받게 된 것, 아프지 않고 일찍 죽지 않아준 나와 남동생에게 감사하게된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바탕으로 꾸준한 108배 기도를 통해 물러나지 않는 정진을 하는 수행자가 되고자 합니다.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내 손이 차가워 미안해요”하시며 삭발해 주시면서 행자의 길로 들어서게 해주신 은사스님, 뭐든지 엉성하고 미숙한 저를 대신하여 방부를 앞두고 발건에 이름을 새겨서 뽀얗게 빨아 빳빳하게 다려 살며시 건네주신 분, 시내에 나갔다가 늦게 들어온 날 내 방 보일러를 켜 주시고 이부자리까지 해주셨던 지원 사숙님, 새벽 예불하느라 늘 잠이 부족하다며 낮에는 좀 쉬엄쉬엄하라는 우리 노스님. 이런 어른 스님들의 그늘 아래서 이 분들을 모시며 정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가르침의 바다를 유통시키겠습니다.
끝으로 <<원각경의 미륵장>>에는,
善男子여!菩薩이 唯以大悲方便으로 入諸世間하여 開發未悟하며
선남자여! 보살이 오직 대비의 방편으로서 모든 세간에 들어가서 깨닫지 못한 이를 개발케 하며
乃至示現種種形相하이 逆順境界에 與其同事하야 化令成佛하나니
내지 갖가지 형상을 나타내어 역경계와 순경계에 그와 더불어 함께해서 교화하여 성불하게끔하나니
皆依無始淸淨願力이니라
다 비롯함이 없는 청정한 원력에 의함이니라
라는 이런 좋은 말씀이 있습니다.
대중 스님들도 각자의 발원 속에서 법계에 회향하는 수행자 되길 바라며, 여러분과 제 안에 있는 불성을 향해 예경 올립니다.
이상으로 차례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