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묵언默言과 구업口業- 사집반 경문

가람지기 | 2021.04.20 08:28 | 조회 797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경문입니다.

묵언默言과 구업口業이라는 주제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어느 날 한 신도분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천수경의 첫 소절은 왜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부터 시작합니까? 천수경은 관세음 보살님께서 부처님에게 청하여 허락을 받고 설법한 경이라 천수경을 시작하기 전 입을 깨끗이 하라는 것이라고 대답 해 주었습니다.

 

반공사로 인해 도반들은 두 번의 묵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묵언을 시작하면서 필요 없는 말들이 많이 줄어들게 되고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묵언을 강요받으면서 느꼈던 침묵 아닌 침묵이 저를 다시금 말에 대해 돌이켜 생각 해 보게 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는 귀가 두 개, 입이 하나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말하는 것 보다 듣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인데, 말은 신중하면서 적게, 들을 때는 진심으로 두 배는 더 들으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입이 귀보다 아래에 있는 것은 내 말보다 남의 말을 더 존중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하루 동안 내가 얼마나 쓸데없는 말을 하는지 알아차리기 위해 수첩에 적어 보았습니다. 너무나도 놀랍게 아직도 하루 종일 제가 알아차릴 틈도 없이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첩에 적어 놓으려 해도 말이 손보다 빠르고 적으려 노력해도 잊어버려 몇 번을 불필요한 말을 사용했는지 조차도 모르게 휙하고 하루가 지나간 것이 벌써 한 달이 넘었습니다.

말을 하지 않더라도 생각조차 너무 많이 일으키니 이 또한 수첩에 적어보자 하였으나 새벽 예불 때 천수경을 한 편하는 동안에 알아차린 일어나는 생각이 10번이며 그냥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 10번 정도였습니다. 입으로 뱉는 말, 속마음의 일으킴이 안과 밖으로 용광로 보다 심하게 들끓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제가 아는 것은 겨우 이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생각은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일까요? 미국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에서 2005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하루에 12,000~6,0000번의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그 중 부정적인 생각이 80%, 긍적적인 생각이 20%이며 이중 95%는 이전 반복되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잠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에 3530, 1분에 59, 1초에 1번 정도 생각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1초에 75번의 찰나가 있고, 1찰나에 16~17번의 생멸하는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업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잠재의식의 흐름이라 볼 수 있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먹고, 몸으로 감촉할 때 일어나는 생멸의 마음을 나타내며 그 변화의 과정이 16~17단계이고 순간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한 찰나에 16~17번 마음이 생멸한다면 1초에 마음은 1,200번 생멸합니다. 생각, 마나식, 아뢰야식까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마음의 변화는 하루에 일생동안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본래 묵언 수행의 의미는 침묵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지만 필요한 말만하고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험담하는 말, 상대방에게 상처주는 말 등을 하지 않으므로 해서 자기 내면의 세계를 보기 위함이라 하였습니다. 진정한 묵언은 남이 묻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 거라고 하였습니다. 어디서든 말 한마디에 시비가 붙고, 나는 그런 뜻으로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오해할 수도 있고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 법구경에 모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 입을 지켜라, 맹렬한 불길이 집을 태워버리듯 입을 삼가지 않으면 입이 불길이 되어 온몸을 태우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의 불행한 운명은 그 입에서 생기는 것이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은 찌르는 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실을 왜곡하는 말을 한다는 것은 이익을 구하든 자신의 허물을 숨기기 위해서든 마음에 걸림이 있기 때문이며, 그 말이 자비로워야 바른 말이라고 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그 말의 표현이 어떤가에 따라 받아들이는 상대에게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아무리 진실이라 해도 강한 표현과 어조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며, 상처를 받으면 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집니다. 따라서 상대에게서 상처를 주는 말은 바른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상대를 슬프게하고 가슴 아프게 하고, 화나게 하는 악구, 악담을 말할 때 그 내용이 진실이라 해도 거기에는 반드시 자신의 주관과 감정이 개입된 말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 날 지대방에서 도반스님에게 말을 했습니다. “스님은 목소리가 커요.” 제가 그러자 도반 스님은 화를 내면서 스님도 목소리가 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지대방에서 소리를 낮추어야 한다는 뜻도 있었지만 목소리가 크면 염불도 잘 한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뜻을 알길 없는 도반은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왜 상처를 받지? 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인데라고 생각 했습니다. 아무리 바른말이라 해도 자비로운 말은 아니었고 상처까지 주는 직설적인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도 이러한데 전 한갓 지나가는 고양이에게까지 돼지야!”라고 불렀습니다. 고양이는 저를 무시하고 지나갔고 또 어느 날은 이 고양이가 밥을 먹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배를 만졌는데 마구 화를 내며 싫다고 표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뚱뚱한지 아는 듯 하였습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무시해서도 안되며 내가 보는 것 말하는 것이 다 옳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함경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남을 절대 비난하지 말라. 비난하는 것은 마치 피를 물고 남을 향해 뿌리는 것과 똑같다"고 했습니다. 남을 향해 피를 뿌릴 때 남에게 피가 닿기 전에 먼저 자기의 입 속에 피를 머금게 되는 것입니다.

 

오조 홍인대사의 말씀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마음 움직이지 않기를 산과 같이 하고, 마음을 넓게 쓰기를 허공과 같이하고, 지혜로 불법 생각하기를 해와 달같이 하여, 남이 나를 옳다고 하든지 그르다고 하든지 마음에 끄달리지 말고, 다른 사람의 잘하고 잘못하는 것을 내 마음으로 분별하여 참견 말고, 좋은 일을 당하든지 좋지 아니한 일을 당하든지 마음을 평안히 하며 무심히 가져서, 숙맥같이 지내고, 병신같이 지내고, 벙어리 같이, 소경같이, 귀먹은 사람같이, 어린아이같이 지내면 마음에 절로 망상이 없어지느니라. 설사 세상일을 똑똑히 분별하더라도 비유하건대 똥덩이를 가지고 음식 만들려는 것과 같고 진흙을 가지고 흰 옥 만들려는 것과 같아서, 성불하여 마음 닦는 데 쓸데없는 것이니, 부디 세상일을 잘하려고 말지니라.”

귀가 왜 위에 있을까? 입은 또 왜 귀 아래에 있나? ! 내가 똥으로 밥을 짓고 반 스님들을 원망하며 도끼의 혀로 입안에 피를 머금고 살고 있었구나.’ 반성합니다.

선가귀감 서에 처음 나오는 글귀가 있습니다.

고지학불자古之學佛者

비불지언非佛之言이면 불언不言하고

비불지행非佛之行이면 불행야不行也.

예전에 부처를 배우는 이들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면 말하지 아니하고,

부처님의 행실이 아니면 행하지 아니하였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말씀, 부처님의 행을 실천하도록 하며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을 세 번 하고 마치겠습니다. 이것을 세 번 연거푸 외우는 것으로 입으로 지은 모든 업을 소멸하는 뜻도 있지만 그와 아울러 공덕을 쌓는 일도 이 진언 속에 들어 있다고 합니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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