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빛 새싹들이 돋아나고 만개한 꽃들이 세상을 장엄하는 계절에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란 주제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화엄반 지혜입니다.
이 주제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이유는 초발심의 의미를 되새기다 지금까지의 저의 생활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철없던 20대의 시절, 저는 오로지 성공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영어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상황에서 무지한 용감함으로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반드시 성공하여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로 9년간의 힘든 미국 생활을 견디고 버텨냈습니다. 그 시간은 저에게 처절하고 긴 외로운 싸움이었습니다. 하루는 너무나 힘든 마음에 일을 마친 후, 주차장에 세워진 차 뒤에서 홀로 쭈그리고 앉아 목놓아 울기도 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어려운 영어공부와 타국의 생활에 적응하며 지내다 보니, 제가 꿈에 그리던 성공의 삶에 가까워지는 듯 보였습니다. 하루는 평소와 다름없이 냉장고를 정리하면서 오래된 재료들을 무심코 버리다 그중의 한 상표를 보게 되었습니다. organic 유기농상품. 그 재료들은 제가 비싸게 구입한 고급 식재료였습니다. 이 고가의 제품이 무가치하게 쓰레기로 전락되는 그 순간,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많은 시간을 힘들게 버텨왔던가?
여러분들은 공감이 잘 안 될 수도 있겠지만 요리사였던 입장에서는 그 순간은 인생의 전환점을 준 큰 사건입니다.
그렇게 삶의 한 꼭지가 무너져 내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홀로 고민하던 중에 미국의 삶을 정리한 후, 출가하기 위해 한국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출가의 여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여러 절을 돌다가 마침내 현재 은사 스님께서는 21일 철야정진을 마치면 인연을 맺겠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출가의 길이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은사스님께서 저를 품어주셨기에 이 귀한 승복을 입을 수 있는 인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불과 몇 년 전인 치문, 사집의 시간도 되돌아보았습니다. 욕심이 많고 예민한 저는 부끄럽게도 많은 병치레를 하였고, 사교반이 되어서야 의무가 아닌 자발적으로 시자소임을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소임을 살다 보니 마음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저의 약한 체력과 밀려오는 일들과 관계 속에서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힘든 마음에 주변을 많이 원망도 하였지만, 지금은 그 모든 문제가 모두 제 안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만 힘든 일에 부딪쳐도, 인내하고 극복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체념하고 회피하였고, 때로는 무모한 고집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도반스님들과 하반스님들을 힘들게 했던 모습들이 생각나 많이 부끄럽습니다.
지금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이렇게 돌이켜 보면 지난 고통의 시간들은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있게 해준 너무나 귀하고 값진 시간들입니다.
제 삶을 돌아보면 결국, 모두 아상으로 인한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진정한 인욕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시간들은 저의 아뢰야식 블랙박스에 저장되어 몸과 마음으로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인욕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면서 그토록 바보같이 스스로 고통을 만들었던 지난 시간들의 어리석음에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진정 출가 후 늘어나는 것은 일체에 대한 감사함과 참회뿐입니다.
힘들고, 외롭고, 슬프고 , 짜증나고, 화나고 우울한 시간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 치문반 스님들도 처음 운문사에 들어와서 모든 것이 낯설고 긴장되어 많이 어렵지요? 여러분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은 나의 에고(ego)가 치성하고 있음을 알아차림하여, 주어진 모든 일에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지혜로운 삶으로 인욕을 하면서 경을 수지독송하며 오롯이 수행 정진하다 보면 4년의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갑니다.
지금 저는 죽림헌 시자소임을 살고 있습니다. 회주스님께서 책장정리를 하시다가 보라고 건네주신 일타스님의 <시작하는 마음>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신라의 의상스님은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 즉, 초발심 때가 바로 정각의 시간이라고 하였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올바로 정립된 이 마음가짐을 한결같이 유지할 수 있다면 어디에서나 어느 때에나 부처님의 깨달음을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우리들은 항상 시작하는 사람으로 모든 것을 비워버린 순수한 초심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일타스님께서도 ‘초심’을 쉽게 잘 풀이해주셨는데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초심! 그것은 시작하는 마음이요, 첫 마음이며, 첫 마음이기에 너무나 순수하다. 우리는 삶 속에서 이 시작하는 마음의 순수함을 쉽게 경험할 수가 있다. 새로 구입한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길 때나,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직장에 첫 출근을 하였을 때 등... 무엇인가를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은 언제나 순수하고 완전히 비어 있으며, 완전히 비어 있기 때문에 철저히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편견도 고집도 없이 순수하게 비어 있는 이 초심의 그릇 속에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 불도를 닦아 부처를 이루고야 말겠다고 결심한 이의 첫 마음 그릇에는 무엇보다 먼저 부처를 이룰 수 있는 뚜렷한 지표를 심어 주어야만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초심의 그릇에 무엇을 담고 계십니까?
수행자인 우리들은 초심의 마음을 늘 마음속 깊이 새겨 물러섬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무명에 가려진 업장을 녹이기 위해서는 참다운 인욕행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또한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운문사는 나에게 너무나도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살아야 하는 마음 쓰는 법을 일깨워 주었고, 이론과 실천이 결코 둘이 아님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한 시간이 아닌 업장을 녹이는 시간으로 늘 다시 시작하는 날들을 보내게 해주었고, 늘 초심을 잃지 않고 살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저희 노스님께서는 “복이 있어야 중노릇을 잘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운문사의 생활이 인욕의 실천과 복을 지을 수 있는 복 밭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자리이타행을 새기며 운문사의 생활을 잘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각자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운문사 도량이 정갈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매일 새롭게 방부들이던 초심에서 물러서지 않고 늘 진실한 수행정진으로 장애없이 행복한 강원생활 하시길 바랍니다.
또 늘 자신 안의 불성을 포기하지 않고 운문인으로서 이 아름다운 도량을 즐길 수 있는 행복한 운문의 수행인이 되시길 진심으로 발원하면서 차례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