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들에 꽃들이 피어 봄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꽃이 피었는데, 꽃을 감상하기보다는 꽃가루 때문에 고생하시는 스님들이 생각납니다. 눈물, 콧물로 인해 손수건으로 코를 감싸쥐게 하는 꽃가루 알레르기…
저는 처음 출가할 때 스님들은 수행하는 분들이라 부처님처럼 병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스님들이 약병을 끼고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매우 놀라 주의 깊게 아픈 스님들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스님은 강원에 있으면서 이가 아프기에 양치질을 하고, 소금물을 머금으며 자가치료를 해도 진통이 계속되자 입에 마이신을 물고 진통을 참았답니다. 2주가 지나도 아픔이 계속되어 병원에 갔더니 잇몸이 들떠 이를 새로 해 넣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참는 데까지 참아보려고 병원에 가지 않았답니다. 지금도 이는 앞으로 튀어나온 채 음식도 잘 못드시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또 한 스님은 절이 좋다며 스님이 되어 수행정진 하겠다고 절을 찾아왔는데, 1년쯤 지나자 허리가 아파 오고 허리통증으로 예불하기도 힘들며 소변보기는 불편하고 소변에선 피가 나와 고통이 심하다며 절에서 치료방법을 찾지 못하고 치료하고 오겠다며 가는 모습을 본 적도 있습니다. 물론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외에 아픈 스님들을 주위에서 쉽게 만납니다.
물 좋고, 공기 맑고, 솔바람소리 좋은 자연환경에서 생활하면서 병은 왜 찾아오는 것일까요? 「마하승기율」에서는 병을 전세의 업보에서 오는 병과 현세에서 생겨나는 병의 둘로 구분하고, 현세의 병인을 둘로 나누어 하나는 오장의 조화가 결여되어서 일어나는 것, 또 하나는 부상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또 부처님께서 병에 대하여 설하신 「불의경」에서는 地·水·火·風의 부조화에 의하여 404가지의 병이 생긴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병이 있다는데 어떻게 치료하고 간호해야 할까요?
부처님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한 장로비구가 몸에 병이 심하게 들어 대중과 함께 생활하지 못하고 기수급고독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천막을 치고 누워 있었는데 기수급고독원에 있는 비구들이 돌아가며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시일이 지나면서 비구들은 점점 장로비구에게 소홀해졌고, 공양도 제때 챙겨주지 않았고, 몸은 닦아주지 않아 피고름이 나서 냄새가 심하게 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빔비사라왕이 부처님께 공양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공양에 응하지 않으시고 오백비구들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장로비구가 있는 천막으로 가셔서 대소변으로 더러워진 짚을 깨끗하게 마른 집으로 갈아주시고 더러운 몸을 닦아주셨습니다. 장로비구는 몸둘 바를 몰라하며 감격하고 감사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 사뢰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분이신데 이렇게 몸을 낮추어 이 병들고 더러운 몸을 손수 닦아주시고 챙겨 주시나이까?"
부처님께서는 장로비구의 전생을 얘기해 주셨습니다. 전생에 장로비구는 채찍을 잘 휘두르는 고문관이었는데, 그 나라 임금은 포악하고 색욕이 강해 자신의 마음에 드는 여자는 처녀건, 유부녀건 가리지 않고 취했답니다. 어느 날 한 여인을 보고 반하여 자신의 부인으로 삼으려했으나, 그녀는 유부녀였고 남편 이외의 남자를 섬기지 않겠노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그 여인의 남편은 왕 앞에 끌려가 채찍질을 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 남편은 고문관에게 자신을 불쌍히 여겨 거짓으로 채찍질을 해달라며, 그러면 그 공덕을 잊지 않겠다고 사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문관은 그를 불쌍히 여겨 거짓으로 채찍을 하였습니다. 그때 그 고문관은 장로비구였고, 그 남편은 부처님이시며, 그 고문관이 살려준 공덕으로 장로비구를 간호하셨으며, 고문관으로 채찍질한 업으로 장로비구는 몸에서 피고름 나는 병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오백비구들이 돌아오자 부처님께서는 간병의 공덕을 설하셨습니다.
"여래가 이 세상에 나온 까닭은 돌봐주는 이 없고 가난하고 재앙을 만남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병들고 약한 수행자나 가난하고 고독한 노인에게 공양하면 그 복은 무량하여 무엇이든 뜻대로 성취되느니라."
대중스님, 자비심을 말하지만 아픈 스님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자비행을 실천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병을 간호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중생활에서 내 소임이 있는데, 옆 도반까지 간호한다는 건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간혹 도반스님이 아파 쓰러져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근심, 걱정이 있거나 화가 나서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면 그 우유를 먹은 아이는 먹은 후에 설사를 한다고 합니다. 아픈 스님은 예민해져있고 간호하는 사람만을 의지하므로 간호하는 사람의 말, 행동, 표정 등을 민감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간병인은 아픈 이는 다른 모습이 아니라, 바로 나의 모습임을 알고, 자비심을 내어 인욕과 끈기로 병고에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죽음 앞에서 괴로워하고 고통받는 이들까지도 자비심으로 보살도를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픈 스님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도와주기만을 바라고 기다릴 것인가요? 물론 아닙니다. 병의 원인을 알아 치료하여야 합니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듯, 병은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은 것으로 알고, 원인을 스스로 관하고 찾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분별하는 마음, 하기 싫어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음, 집착하는 마음 등을 놓아버리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병고를 받아들이며 허물에도 칭찬에도 끄달리지 않고 내 안의 밝은 빛을 관할 때 병고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것입니다. 치문의 「남악 법륜사 성행당기」에서는
병이나면 성행당에 들어가 자신을 반성하고 닦고 고치고 행하여 병을 물리치고, 아파서 날뛰는 놈을 잡아서 신음하는 즈음에 밀밀이 잡드려 이 누가 병을 받는고, 사람이 이미 보이지 않는데 병이 어디로 쫓아오는고 해서 사람과 병을 다 잊으면 다시 이 무슨 물건인고!
하라 하였습니다.
대중스님, 출가 수행자가 병을 치료하고 육체를 유지하려 하는 것은 육체가 소중해서가 아니라, 다만 청정한 수행을 돕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소우주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불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