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계 율(보영스님)

운문사 | 2005.12.26 13:17 | 조회 3366

自從今身至佛身 자종금신지불신

堅持禁戒不毁犯 견지금계불훼범

唯願諸佛作證明 유원제불작증명

寧捨身命終不退 영사신명종불퇴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보영입니다.

도량 내에 목련이 터질 듯한 봉오리를 뽐내는 것을 보셨습니까? 그런 봄날 차례법문 법상에 오르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 몸이 부처가 될 때까지

굳게 금계를 가져 범하지 않겠사오니

오직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증명하옵소서.

설사 신명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마침내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이 게송을 들으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십니까?

저는 계율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법문의 주제로 "계율"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계율의 의미와 율장이 형성된 과정, 그리고 계율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대중스님들과 제가 수행의 길을 가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계율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경계하고 규율 있게 한다, 부처님 제자들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막는 율법, 중이 지켜야 할 계율' 이라 하고, 또 불교의 계율은 "칠불통계七佛通戒" 즉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나쁜 짓 하지 않고 착한 일 많이 하며 제 마음 깨끗하면 이것이 바로 불법이다)"를 기본으로 한다고 합니다.

율장이 성립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드셨을 때의 일입니다. 그 때 상수제자인 가섭은 다른 곳에 있다가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쿠시나가라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쿠시나가라 가까이 이르렀을 때 누군가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가섭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다는데 누가 노래를 부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노래는 발란타 비구가 '잔소리쟁이 부처님에 없어져서 우리는 해방되었다'라고 하며 다른 비구들에게까지 '부처님이 열반에 드셨으니 우리는 이제 자유를 얻었다. 항상 우리에게 이것은 마땅히 해야한다. 이것은 마땅히 행해서는 안된다 하면서 우리를 간섭해 왔지만 지금부터는 내 마음대로 살아갈 것이다.'라고 선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가섭은 무엇보다도 계율을 먼저 정리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생각하고 지계제일 우바리 존자에게 계율을 외우게 하여 율장을 결집하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제정하실 때마다 이 일이 부처님의 제자로서 해야할 일인지 아닌지를 분명하게 판단하시고 그 행위의 옳고 그름을 일깨우신 것입니다.

계율의 중요성에 대해 경전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먼저 「유교경」에서는 "내가 열반에 든 뒤 마땅히 계율을 존중하고 보배로이 공경하되 마치 어두운 곳에서 밝은 빛을 만난 것과 같이 하고,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음과 같이 하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계율은 곧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니 만약 내가 세상에 더 머물러 있다 할지라도 이보다 더 할 것이 없느니라"고 하고, 또 「화엄경」에서는 "계는 무상보리의 근본이니 마땅히 구족히 정계를 지니라. 만일 능히 정계를 굳게 지니면 여래께서 찬탄하실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진정한 출가자라면 본래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계율을 소중히 지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열반 전에 계율을 보배로이 존중할 것을 당부하신 것일 겁니다.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은 어떠한 곳에 있더라도 당당하고 작은 두려움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를 돌이켜 보십시오. 평범하고 당연한 사실을 그래도 실천하고 있는지. 너무나 평범한 가르침인데도 행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악을 막고 선을 행하는 법으로 설하신 부처님의 계율을 행한다면 모든 덕행은 저절로 갖추어지게 될 것입니다. 계율을 철저히 지켜 나간다면 위없는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중스님, "나는 과연 계율을 잘 지키고 있나?"하고 우리 각자의 뒷모습을 살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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