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거사가 바라본 불국토의 세상
서륜/사교과
불국토, 여러분께서 생각하는 불국토는 어떻습니까? 열심히 수행한 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갈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저도 늘 막연한 곳으로만 생각했었는데요, 하지만 유마경이라는 경전에서 유마거사가 보여주는 불국토는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유마거사가 보여주는 불국토의 세상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유마경의 주인공인 유마거사를 소개해드리자면, 유마거사는 무동여래와 같이 묘희세계에 계신 분으로 중생들을 제도하고 성숙시키기 위해 방편으로 바이샬리성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아무리 써도 고갈되지 않는 재산을 가진 거부, 즉 재벌이고, 부처님께 셀 수 없는 공양과 선행의 공덕으로 무생법을 성취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혜와 방편바라밀을 통달해 신통이 자유자재한 인물로써 남녀노소 부귀빈천과 상관없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유머와 따뜻함을 소유한 사람으로 모두의 공경을 받고 있었는데요. 그러한 공덕을 갖춘 유마거사가 어느 날 병이 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왕을 비롯하여 고관대작 즉, 현대로 말하자면 정치인, 기업가 등 사회적 명망을 갖춘 온갖 유명인사들 수천 명이 문병을 가기에 이릅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병문안을 다녀올 것을 권유하여 문수사리가 병문안을 가게 됩니다.
문수사리는 유마거사에게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이에 유마거사의 병의 원인이 '대비심' 때문임을 알게 되는데요. 마치 자식이 병 들면 부모님도 병이 들고, 자식이 병이 나으면 부모님의 병도 낫는 것처럼 중생이 먼 과거부터 무명과 삶에 대한 갈애를 일으켜 장구한 세월, 생사윤회를 하면서 병들어 있는 모습에, 대승의 보살 유마거사는 중생에 대한 한량없는 자비심으로 병이 든 것입니다. 정말 유마거사가 병이 들어 아픈 까닭이 대비심 때문이라면 어찌 우리는..그러한 간절하고 진실한 광대한 자비심이 없는 것일까요. 중생이 아픈데 왜 유마거사가 아픈 것일까요? 그리고, 왜 나는 중생이 아픈데도 아프지 않는 것일까요?
우리는 여기서 대승불교 핵심이 지혜와 자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자비심은 지혜를 바탕으로 일어납니다. 세상 이치 대한 이해와 진리에 대한 깨달음의 결과로 대자비심을 갖게 되는 것이며 결국 우리는 자비심과 더불어 지혜가 밝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아픔에 따뜻하게 공감하고 아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유마거사에게는 '너 그리고 나'가 아니라 '너는 나이고, 나는 너'인 것입니다. 너와 나, 주관과 객관, 부처와 중생,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 삶과 죽음, 자연과 인간, 행복과 불행 등 끝없이 펼쳐진 이 상대적 세계에서 우리는 생의 전부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마경에서는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고 단호히 말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한 이 상대적 세계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처음부터 너와 나를 둘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시작은 아니었을까요? 서로 돕고 이해하고 사랑하며, 양보하는 마음은 사라지는 외로운 지구 속 우리들에게, 불이不二사상은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유마경에서는 반야공과 불이사상을 이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실천하며 수행할 것인지를 설합니다. 그 시작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즉 진리를 탐구하고 올바른 삶을 살고자 결심한 오백명이나 되는 훌륭한 청년들이 부처님께 보살님들과 부처님들의 나라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묻자,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 500개의 일산을 하나의 커다란 스크린으로 변화시켜 온 우주의 크고 넓은 다양한 모습의 부처님과 그 부처님들이 설법하는 모습을 화려하고 장엄한 영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에 감동한 보적이라는 청년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찬탄한 후 부처님들의 세계를 알고자하여 그 청정한 불국토의 모습과 불국토를 청정하게 할 수 있는 수행에 대해 질문하는데요, 이에 부처님의 놀라운 답변은 바로 '중생들의 국토가 곧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부처님들의 세계, 극락정토는 지금 여기 내 마음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유마경』 <불도품>에서는 높은 육지에서는 연꽃이 피지 않고, 낮은 곳의 더럽고 습한 진흙에서 연꽃이 피는 것과 같이 일체의 번뇌 속에서 지혜의 보배를 얻어야 함을 역설함과 동시에 다시 한 번 불이를 강조합니다. 즉 번뇌와 중생을 떠나서 지혜나 깨달음, 불국토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진흙과 연꽃의 비유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유마경이 보여주는 불국토의 세상, 진흙 속에서 핀 연꽃의 향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마경은 불이라는 한마디로, 이 세상의 어떠한 새로움도 '너는 나, 나는 너'라는 이 본질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우리 모두가 상대성의 세계에서 깨어나 둘이 아닌 불이의 세계에 눈을 뜰 때, 우리들은 비로소 행복이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임을 믿으며 이번 차례법문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