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부처는 무엇인가? - 사교과 선아

가람지기 | 2019.12.24 20:19 | 조회 1367

부처는 무엇인가?



치문 첫 철 봄방학 소임을 뽑을 때 기도를 해봐야겠다싶어 작압전에 지원했습니다작고 허름한 전각이라 나와 어울린다는 생각으로 지원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최상단이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특이한 일이 생겼습니다.

다음 날 사정이 생겨 오백전하고, 다시 사정이 생겨 비로전하고 바꾸게 된 것입니다. 이상함을 느꼈지만 비로전스님이 혼자 기도하는 모습만을 보았기 때문에 전각이 좀 커진 것뿐이라고 저를 다독였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원래 대웅보전 노전을 살기로 한 스님이 살지 못하게 돼 저랑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선덕여왕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지킬 수 있는 날엔 지키면 되고 지킬 수 없는 날엔 싸우면 되고 싸울 수 없는 날엔 후퇴하면 되고 후퇴할 수 없는 날엔 그날 죽으면 그만이다작압전 못하면 오백전 하면 되고 오백전 못하면 비로전 하면 되지만 비로전을 못하게 돼 대웅전을 가는 것인데, 대웅보전을 못하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습니다. 작은 작압전에서 내 주제와 분수를 알고 조용히 기도 해야겠다 마음먹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의아했습니다.


21일 노전 대타를 사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반야심경 목탁도 제대로 치지 못하는 내 자신을 개선시키고자 자원한 한 팔이 불러온 대참사는 엄청난 트라우마와 기도라는 행위에 대한 패닉을 가져왔습니다. 부처님을 향해 얼마나 많은 걱정과 불안과 감정들을 쏟아냈는지 모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치문 첫 철 대웅보전 노전 소임을 살고 난 후 마디점프를 하듯 사교가 되어 비로전 부전 소임을 살았습니다. 사집 때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기도부전 소임을 지원했지만 절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교가 되어 오백전을 지원했지만 그마저도 되지 않았습니다. 치문을 끝으로 한 번도 살지 못했던 기도 부전을 사교가 되어 비로전이라는 또 다른 최상단을 살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비로전에서의 목탁 한 소리 한 소리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처절한 절규가 녹아있는 제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는 지금 비로전 부전소임 이후 곧바로 별좌를 살고 있습니다. 후원은 저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의 장소입니다. 도반스님들은 계속 살았던 사람처럼 후원을 살고 있다고 우스게 소리로 이야기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그 속에서 내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나와 함께하게 될 치문 사집반 스님들에게 내가 느낀것들을 고스란히 전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기 억압과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치문 사집 때 불평하고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하던 사람도 화엄이 되면 똑같아진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치문 사집 사교를 불완전한 환경에 노출되어 사는 속에 자신의 내면을 이겨내고 극복하며 살지 않았던 사람이 화엄이 되었을 때 과연 다른 세상을 구현해 낼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화엄은 연기적 관점에서 보면 회향입니다. 저에게 있어 회향이란 당하는 것입니다. 변화 시킬 수도 고쳐낼 수도 없이 내가 살아온 업의 행위를 고스란히 그저 당하는 시기그래서 저에게 회향은 가장 무서운 결과의 때입니다. 저는 지금 화엄이라는 회향의 시기, 업의 때, 결과의 결실을 보는 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별좌를 살면서 지평선에 넘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듯 곧 나에게 다가올 어두운 밤의 때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노심초사하며 하루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저에게 화엄은 곧 졸업을 의미하고 졸업은 곧 출가의 첫 발을 내디뎠던 그 날의 목표와 마음가짐을 점검하는 아주 좋은 때입니다.

출가를 통해 몇 가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TV프로그램에서 한정식 맛있는 집이 있다고 소개해서 친구랑 놀러갔습니다. 산 속에 있었는데 산문에 들어서자마자 안개가 시작돼 한정식 집까지 20분정도 이어진 안개 숲에서 깊이가 너무도 깊고 또 이로 말 할 수 없이 오래된 태고를 느끼고 저는 출가했습니다.  치문, 사집 때는 내가 왜 그날 한정식을 먹으러 갔는지, 제정신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되묻는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세기경에서 중생이 땅을 먹은 순간이 보살도의 시작이라고 하듯 이번생 수행의 본격적 시작은 한정식을 먹는 순간이지 않았을까요? 그곳에는 한정식보다 더 진귀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절이 있었던 것이죠. 저는 그 절에 오랜 세월 머물렀습니다어느 날은 대웅전 앞을 바쁘게 지나는데 어떤 거지가 저를 부르더니 차비를 달라고 합니다. 양복을 입었지만 거지의 행색이었고 부인과 함께 왔는데 차비가 없어서 못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묻습니다. "부인은 어디에 있나요?" 그러자 매표소에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혹시 그런 경험 있으십니까? '그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는 힘' 내 속에 그보다 더 깊고 깊은 지하세계 어디까지 인지도 모르게 눌러져버리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도 없고 나에게 사기를 친다는 생각이 올라올 수도 없게 내 한 생각을 누르고 있는 깊이. 왜냐하면 그 사람이 부처님일지 모른다는 일념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 하는 여래장이 우리가 모두 부처라고 말하는 이 사상이 통용되고 일반화 되지 않는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왜 저는 그 거지에게서만 부처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일까요?

치문 때 도반스님에게 물어본적 있습니다"스님, 부처님은 마왕 파순을 교화했어? 아니면 물리셨어?"

도반스님은 물리셨다는 단호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깊은 생각에 빠진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여래라면 여래라고 하는 우리의 사상은 무엇이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여래는 이와 같은가 다른가입니다. 내가 부처라고 말하는 이 사상은 어쩌면 욕심에 의해 부처가 되고 싶은 오만한 생각에서 빚어진 중생의 욕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일어날 때면 저는 그때 거지에서 느꼈던 느낌을 기억하고는 합니다. 부처는 무엇입니까?

그날 안개자욱한 숲길에서 본성의 깊고 미묘한 태고적 사람을 발견하고 그길로 출가를 하겠다고 오랜 집을 떠나 오늘이 오기까지 10년이 꼬박 되었습니다. 스님이 되려고 출가 한 것도 큰 인물이 되어 중생을 교화하겠다는 뜻도 아닌 그저 '부처님께서 뭐라고 하셨는지 알면 그것을 의지해 이생을 살아가야지'라는 한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저에게 있어 오늘이 오기까지

 

가의 길은 결코 만만한 세월은 아닙니다.

행자로, 치문으로 사집으로 사교로 살아가면서 제 속에 일어나는 그리고 경계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저를 어떻게 공부시켰는지 얼마나 잔인하게 이루어졌는지 저는 진절머리가 날 지경입니다. 비로소 출가를 놓아버리고 나서야 출가를 하게 된 아이러니를 겪으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정식과 함께 찾아온 출가라는 이 단어가 오늘의 지금의 내 모습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아지다가도 저는 이 삶의 가치로부터 그리고 이 모습이 도대체 우리 모두에게 어떤 이익을 전하는가를 궁리하느라 사유체계에 빠져 쉽게 나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저는 어떤 사유에 빠져 그것들을 깊이 파고들어 가는 중에 도반스님들로부터 어떤 행동을 갑작스럽게 받았을 때 그것들이 삽시간에 산산히 부서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해체 분해하는 속에 감정을 내려놓고 잔인하게 부셔버리는 수행을 하는 중에 자신이 무시 받았다는 느낌을 받는 도반스님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수행자이지만 타인의 수행을 이해해주는 수행자를 만나기는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래장이 정말 실현 가능한 사상으로 이 사회에 뿌리내린다면 우리는 결코 지금처럼 서로를 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증일아함경 제자품에 나오는 구절입니다"내 성문 중 첫째 비구니로서, 쓸쓸한 무덤 사이를 즐기는 이는 우가마 비구니요, 사랑하는 생각을 많이 내어 생물들을 가엽이 여기는 이는 청명 비구니요, 도에 이르지 못한 중생을 슬피 여기는 이는 바로 소마 비구니요, 도를 얻은 이를 기뻐하고 소원이 일체에 미치는 이는 바로 마타리 비구니요, 모든 행을 단속하여 뜻이 멀리 떠나지 않는 이는 가라가 비구니이니라."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는지. 부처란 무엇인지 우리는 무척 궁금해 합니다. 부처님께서 증일아함경에서 설하신 제자품에 나오는 수많은 비구 비구니의 으뜸은 그들이 뛰어난 지능을 지녀서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가장 좋은 이타행의 장점이 곧 부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안위를 따져 물으며 너무 쉽게 다른 이의 수행을 묵살해 버리지는 않습니까?

'공을 지키고 빈 것을 잡아 <없음>을 깨달은 이, 마음이 생각 없음을 즐겨 해 모든 집착을 버린 이, 구함 없기를 닦아 익히어 마음이 항상 넓은 이> 이들이 모두 부처님입니다.


수행자로 출가해 저는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행이 잘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수행하는 일이 눈치가 보이고 부끄럽게 느껴지는 일들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사유하는 속에 격동적인 육체의 움직임을 이어나가야 하고, 육근과 육진의 경계를 떠난 속에서도 타인의 감정과 삶을 이해해 연대를 이어나가야 합니다. 때로는 정신이 양분화 되기 직전까지 갈 때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이때 어김없이 주변의 서늘한 걱정과 쉽게 판단되어 흘러나오는 말과 비난에 노출되는데, 마음이 다쳐서가 아니라 수행을 위해 모인 우리라는 마지막 벼랑마저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어떻게 수행하는 사람마저 그러한가? 라는 좌절이 저의 삶 자체를 막아서고는 합니다.

법당과 후원에서 그랬듯 치문 때는 어리숙한 저의 모습을 수행과 접목시켜 삶 그 자체를 수행으로 삼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교가 되어 같은 공간에서 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때 할 수 없는 일을 지금에서야 잘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치문이 아니라 사교라는 이름의 힘이 생긴 것이라고 역설적으로 생각합니다.

치문을 지나 사집과 사교가 되며 우리는 변했다. 달라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성숙해지고 유연해지고 능력있어 졌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곧 즉시 다시 이 모습으로 지금의 기억과 경험을 가지고 치문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다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내일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 곧 내일이지 않습니까?

부처님이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사람은 너무 불완전합니다. 감정의 기복과 서로의 이름과 끊임없이 규정지어 나누어 놓은 우리들의 위치와 이름과 형식들이 여래장이면서도 부처는 아니라고 말하는 우리에게는 필요하고 통용되어져야 할 규칙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부처님과 나라고 하는 인연 속에서는 너무 말끔한 '그런 것은 없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여래장을 실현 할 수는 없을 지라도 수행을 위해 모였기에 서로에게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것으로 차례법문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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