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찰
출가 전에는 몰랐던 나의 원초적인 모습에, 돌발적이고 아주 직설적인 언행에 저도 한 번씩 놀랄 때가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며, 지켜봐야 하는 상황들과 지켜야 하는 생소한 규칙들과 그리고 여러 걱정 사항들.. 누군가 나의 행동을 감시한다는 긴장감은 나의 행동을 뭔가 어색하게, 불편하게도 했습니다.
생각했었던 출가 후의 나의 모습에 실망하기도 하고, 이렇게 사는 것이 출가자의 삶인가? 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사실 출가 전, 몇 년의 절 생활로 절 문화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깊은 신심을 바탕으로 하는 발심 출가가 아니었던 것이 그 원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마음으로 불교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고자 삼장원 출입을 자주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전 사이에서 책을 고를 때는 읽기도 전에 신심이 났습니다. 읽었던 책 중에서 앞으로도 저의 승려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장주 스님께서도 추천해 주신 지눌스님의 <진심직설>이라는 책을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眞 心 直 說 , 만법(萬法)의 근본이 참마음임을 설한 내용입니다. 예부터 모든 조사 스님들이 말씀하신 마음공부 방법이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여기서는 크게 10가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마음을 살펴서 망념을 알아차리는 ‘각찰’입니다. 강원의 규율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왜 앉아서 가슴높이로 세수 대야를 놓고 세수해야 하는지, 얼굴을 스쳤던 그 물은 곧바로 적삼 소매안으로 들어가는데 말입니다. 이해를 하려고 하면 안되는 부분들은 번뇌로 이어져 후회하는 결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잡념은 끊는다는 것입니다. 평소 잡념을 끊고,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생각이 일어날 때, 바로 알아차리고 없애는 것입니다.
둘째, 망념을 쉬는 ‘휴헐’ 입니다. 이는 善도 생각하지 않고 惡도 생각하지 않아, 마음 일으키는 것을 쉬고, 인연을 만나는 것도 쉬는 것을 말합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도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내린 결론은 너무 나서서 앞서지도, 그리고 누군가 나를 흉보더라도 ‘욱’하지 말아야겠다는 겁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았을 때, 나 스스로 편안함과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셋째, 허망한 마음만 없애고, 경계는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임제 스님께서, 분별하는 사람을 없애고 경계는 그대로 둔다는, 탈인불탈경 (脫人不脫境)법문에서 ‘헛된 마음이 이미 쉬어짐에 어찌 해가 될 경계가 있겠는가?’하는 내용입니다.
스스로 무심하면 온갖 경계가 애워 싸도 방해될 것 없다는 말입니다. 이해할 수 없고, 혹은 내 상식의 잣대에 어긋났을 때, 괴로움, 서글픔, 답답함, 외로움, 화나는 감정들이 일어났고, 그것은 나 스스로만 힘들게 할 뿐, 어떤 것도 내 마음에 맞춰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땐, 포기나 방관이 아니라, 그저 다시 바라보고, 재고하고, 인정하니 내 감정들이 가라앉았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 혹은 내 것이라는 개입이 없이, 내가 느끼는 감정을 명확히 보고 자비로써 감싸 안을 수 있었을 때, 자유롭고 여유로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넷째, 경계를 없애고 마음만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다만, 안팎의 모든 경계를 다 공적하다고 보고, 오로지 마음 하나만 바로 세워 그대로 두는 것을 말합니다. 경계에 집착하면 그 마음이 곧 망념이 되지만, 경계가 없으면 어떤 망념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출가 전에는 오히려 몸에 대해 신경을 쓰고 살지 않았는데, 출가 후 감각이 더 예민해지고, 그 동안 눌러왔던 몸의 여기저기에서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통증이 올라오는 경계에서는 그 경계를 없애고 마음을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울함과 괴로움만 있었습니다.
다섯째, 마음도 경계도 모두 없애는 것입니다. 바깥경계의 실체가 없고, 그것을 아는 마음조차 없애는 것을 말합니다.
여섯째, 마음, 경계 둘 다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마음은 마음이 있을 자리에 두고, 경계는 경계가 있을 자리에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 경계 둘 다 취하지 않으니 망념은 생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생각하기도 경험하기도 어려운 부분입니다,
일곱째, 안과 밖이 모두 참마음의 바탕이라 보는 것입니다. 호거산, 이목소 ,달..내 몸과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세상의 모든 법이 다 똑같이 참마음의 바탕이어서 텅 비어있고, 맑고, 밝아서 조금도 다를 게 없다는 것입니다.
여덟째, 안과 밖이 모두 참마음의 작용이라 보는 것입니다. 텅 빈 고요라고 할지라도, 곧 참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깨어있으면서도 마음이 고요하고, 고요한 마음을 지니면서 깨어있는 것, 하지만 고요하면서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을 영가 스님께서는 무기라고 하셨습니다.
열 번째, 참 마음의 바탕과 작용조차 벗어나는 것입니다. 바탕과 작용이 나누어지지 않고, 조금도 번뇌가 없어 온몸이 참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다만 한 길로만 공부를 성취해도 망념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운문사에 들어와 대중생활을 한지도 2년이 다되어갑니다. 무엇을 배우는지도 모르고 힘들 거란 말만 듣고, 선택의 여지 없이 강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몸은 힘든데, 정확히 뭐가 힘든지 생각해보니, 정해진 틀에 나를 끼워 맞추어 살아가야하는, 세속의 자유로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마다 올라오는 직설적인 언행에서, 경계를 보기보다는 나 스스로를 각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될수록 처음보다는 더 긍정적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그동안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왔던 긴장감, 정신적인 압박감 등이 오히려 모르고 있었던 제 자신의 이면을 볼 수 있는 긍정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 계시다면, 오히려 수행의 도구로, 더 커지는 자신을 위해, 쓰디쓴 영양분으로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모두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