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 대
만물이 제각각 아름다운 보배를 감추고 봄을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영림입니다. 누구나 마음 속에 잣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삶의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깨달은 분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에 항상 그 잣대가 외부로 향하여 있었습니다. 제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에 대해 환경 탓을 하고, 부모님을 원망하면서 다른 이의 눈치만 보고 작은 키, 왜소한 몸이라고 남이 깔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살아 왔습니다.
다행히 늦게나마 불법과 인연이 닿아 밖으로만 향하는 잣대는 괴로움만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괴로움의 소멸을 위해서 출가를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삭발염의된 순간부터 아무렇지 않게 해오던 밥 먹는 일, 옷 입는 일, 잠자고 일어나는 일 어느 하나도 쉬이 되는 일이 없이 하루 일과의 시작과 마침은 걱정듣고 참회하는 일이었습니다. 소등 시간이 되어 누워서는 ‘먹고 사는 일이 이렇게 힘들었나? 나는 아무래도 출가자로 맞지 않는 사람인가 보다, 내가 왜 출가했을까? 재가자로도 얼마든지 공부하고 수행할 수 있을 건데...그래도 하루만 더 살아보자, 여기서 배우는 것은 밖에서는 못 배우는 것이니까 ...’ 이런 망상을 하다가 잠이 들고 아침이면 또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루하루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가며 살다보니 어느 덧 사미니계를 받게 되고 강원이라는 곳을 가야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강원 치문의 일과는 대중과 함께 움직여야 하니 행자 때와는 또 다른 괴로움이 일어났습니다. 『선가귀감』 본문 중에 有罪卽懺悔하고 發業卽懺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에 곧 부끄러워하면 대장부의 기상이 있는 것이다. 또 허물을 고쳐서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는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라는 말씀대로 참회와 참괴로 잘못된 잣대와 사용법을 고쳐나가야 할 것이며 또, 지주자는 현업은 이제라 자행가위어니아 숙업은 난제라 필차신력이니라. ‘신비한 진언(眞言)을 외우는 것은, 현세에 지은 행위의 업은 비교적 다스리기가 쉬워 자신의 힘으로 고칠 수가 있지만, 전생에 지은 업보는 지워버리기 어려우므로 신비한 힘을 빌리기 위한 것이라’ 하시니 묵은 죄업까지도 씻어서 괴로움을 하나씩 하나씩 떨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선가귀감에서 진언의 위신력을 조사들께서도 말씀하신 것을 들으니 출가하기 전부터 읽어 온 능엄주의 공덕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습니다.
“너희 배우는 사람들이 윤회를 벗어나는 도를 얻고자 하면서도 이 주문을 외우지 아니하고 몸과 마음에 마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옳지 아니하니라.” 하시니 게으르기만 하여 좋은 보배를 지니고도 활용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앞으로 강원에 있는 동안 매일 놓치지 않고 독송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러한 신력은 비단 진언 뿐만 아니라 매일 하는 예불, 독경, 운력, 수업 등 모든 행위 속에 깃들어 있을 수 있으니 가는 곳마다 정성을 기울이길 다짐합니다.
인과경에 ‘몸이 아픈 것은 전생에 살생을 많이 한 과보요, 키가 작고, 외모가 볼품없는 것은 남을 업신여긴 탓이요’라는 구절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느 하나도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없음을 알진댄 한 순간도 헛으로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삭발염의를 하고서도 몸에 익은 나쁜 습관대로 이런저런 탓만 하다가 허송세월로 보내는 날들이 대부분입니다. 치문 시절 매일 ‘잘못했습니다’를 입으로 말했지만 진정한 참회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요? 진정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마음과 더불어 밖으로만 치닫는 잣대는 화를 참지 못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상반스님 앞에서 억지로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하는 연습이 조금씩 업의 과보로부터 가벼워지는 삶을 살아가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사집반에게는 기도할 수 있는 전각과 맘껏 숨 쉴 수 있는 넓은 밭이 주어집니다. 강원 4년 중 1번 밖에 오지 않는 귀한 시간입니다. 치문일 때 ‘우리도 내년이면 각단 부전도 살고 밭에도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며 영원히 가지 않을 것만 같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사집이 되고 보니 힘들게 느껴졌던 하루의 일과들이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하나하나의 소중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당과 밭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난 잣대를 내려놓고 부처님, 대자연의 가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법당에서 절할 때처럼 채소들을 볼 때면 경건해집니다. 상추, 호박, 온갖 푸성귀들이 아무 댓가도 없이 뜨거운 햇볕과 차가운 비를 맞고 맺은 결실을 모두 우리에게 나누어 줍니다. 이 채소 보살들을 거둘 때면 맛있게 드실 스님들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즐겁고 가벼워집니다.
끝으로, 은사스님께서 강원에 오기 직전에 해주신 말씀을 되새겨 보며 차례법문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일체 세상 일에 잣대는 버려야 하지만 자기 삶의 잣대는 필요해요. 강원 4년 동안 학과 공부는 남들보다 못해도 좋으니 이 3가지는 유념하면서 하루하루 잘 살다가 오세요” 하시고는 손수 적어 주셨습니다.
1. 항상 큰 그릇이 되도록 노력하라
2. 몸을 이유로 퇴굴심을 일으키지 마라
3. 인간성 면에서 남이 꺼리는 사람이 되지 마라
매일 저녁 이 잣대를 저에게 대보면 ‘잘못살았습니다’만 되뇌이게 됩니다. 다시 아침이면 주문을 외웁니다. ‘영림아, 오늘도 새로 태어나자, 어제도 살지 말고, 내일도 살지 말고, 오늘만 살자, 오늘 할 일을 재미 있게 하자. 日新日信 日行日幸이라(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믿으며 날마다 행하고 날마다 행복하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