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겨울바람에 숨죽여 움츠렸던 생명들이 온 힘을 다해 꽃망울을 틔웁니다.
온 세계가 부처님께 공양 올리듯 꽃비 되어 장엄하는 아름다운 봄날.
‘탁발하는 마음’을 주제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대교반 자윤입니다.
화엄반이 되면 가장 먼저 치러야하는 신고식과도 같은 연중행사가 있습니다. 바로 탁발입니다.
화엄반이 되면 가장 먼저 치러야하는 신고식과도 같은 연중행사가 있습니다. 바로 탁발입니다.
의례적으로 해야 하는 행사로만 흘려보내기엔 아쉬움이 남아 대중스님들과 함께 나눠볼까합니다. 탁발이란 무엇인지 부터 알아볼까요?
출가하여 수행하는 자가 일정한 예법에 따라서 마을을 다니면서 음식을 얻는 일.
걸식으로 번역하며 행걸(行乞), 지발, 봉발 이라고도 합니다. 탁발은 인도에서 일반화되어 있던 수행자의 풍습이 불교에 도입된 것인데, 중국·한국의 불교에서, 특히 선종에서는 수행의 일환으로도 간주되었습니다. 수행자의 간소한 생활을 표방하는 동시에 아집과 아만을 버리게 하며, 걸식으로 살아가기 위해 목숨이 다할 때까지 힘써야 하므로 불교에서 탁발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수 있습니다. 또한 시주자에게는 보시하는 공덕을 쌓게 하는 데 있습니다.
『보우경(寶雨經)』에는 보살이 걸식을 통해 성취하는 열가지 법인 걸식십위(乞食十爲)가 있습니다.
첫째, 모든 유정을 섭수한다.
둘째, 正念에 머물고 위의를 구족하여 분별심이 없이 모든 집을 차례대로 찾아가 걸식함으로써 평등심을 얻는다.
셋째, 걸식에 대하여 싫어하거나 피곤한 마음을 내지 않고, 유정을 미워하지 않는다.
넷째, 만족할 줄을 알게 된다.
다섯째, 음식을 얻은 후 돌아와서 여러 사람과 나누어 먹음으로써 베풀 줄 알게 된다.
여섯째, 음식에 대하여 애착을 갖지 않는다.
일곱째, 지나치게 적거나, 많지 않은 음식을 섭취 합으로써 적당한 양을 먹을 줄 안다.
여덟째, 법대로 걸식을 행함으로써 선품(善品)을 증대시키고,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아홉째, 부지런히 수행하고 나태함을 떨쳐 선근이 원만하게 된다.
열째, 일체의 善으로 인하여 보리를 성숙시키고 아집을 여의어서, 마침내 자신을 버리고 유정에게 베풀 줄 알게 된다고 합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얼마 전에 저희 화엄반도 탁발을 나섰습니다. 지금 이 자리를 빌어 마음 담아주신 대중스님께 진심으로 고마움의 인사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운문사 도량을 벗어나 쏟아지는 봄볕 아래에서 석가모니불을 외치며 부처님이 그러하셨듯이 저도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스님들이 집 앞에서 목탁 치며 염불해도 아예 무시하는 무관심이 힘들었습니다. 몇 집을 들렸어도 빈발우를 들고 다니던 그때였습니다. 과거 하루 일곱 집만을 탁발하시던, 만약 그 결과가 빈 발우라면 그날 하루는 굶으셨던 부처님이 떠올랐습니다. 왜 부처님께서는 응당히 공양 받아 마땅한 분이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아침 마을로 내려가 걸식을 해야만 하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그들의 복밭이 되어주기 위해서만 이었을까요? ‘나’라는 아상을 내려놓고, 더 나아가 우리들의 복이나 수행의 목적을 떠나서, 오로지 그 보시를 받는 부처님이나 보시를 행하는 시주자들이 모두 다름없다는 평등함을 몸소 실천하시어 깨닫게 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스스로 중생들에게 다가가 먼저 손을 내밀고, 그들에게 당신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하는 음식 일체를 받으시며, 동시에 그들에게 법문을 해 주심으로써 진리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늘 탁발로써 중생들 곁으로 다가가 눈높이를 맞춘 자비행을 온몸으로 설법하셨습니다.
탁발하는 ‘우리’라는 존재가 외면 받으니 힘든 마음이 올라왔지만 과거 탁발로 보이셨던 부처님의 그 마음을 헤아리고 나니 평온해졌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변하자, 머뭇거리며 구경만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발우에 정성어린 시주를 담아주었습니다.
탁발 나갔던 반 스님들 중에는 시주자들의 모습에 눈물이 고였다는 이야기를 여럿 들을수 있었습니다. 수술 후 걷기 힘든 다리를 이끌고 힘겹게 나와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하고 다른 한 손으론 시주금을 건네며 한손으로 드려서 너무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시고 또 하시던 노보살님. 좀 전에 한 보시가 적었다며 더 보시 하고자 스님들 돌아가는 길목에 보시금을 들고 한참을 기다리시던 보살님. 염불하는 스님들의 목이 걱정되어 약국에서 목에 좋다는 약을 종류별로 사와서 손에 꼭 쥐어 주시던 처사님.
그 모든 불자님들은 그 순간, 우리 스님들의 모습을 통해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불교의 희망을 보려 했을 것입니다.
내가 부처님을 대신하여 인사를 받고, 공양을 받고, 불교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부끄러움과 반성으로 발우의 무게가 한없이 무거워졌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 모든 시주의 은혜를 돌려 드려야겠다는 행자 때부터의 서원이 조금씩 빛을 바랬던 것을 인정하던 순간이었습니다. 한없이 부끄럽고, 참회의 마음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감동어린 시주자 분들의 모습을 통하여 불교의 미래를 밝게 내다볼 수 있게 되었고, 저 역시 그 서원을 다시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자비 행을 실천할 수 있게 해준 부처님께 그리고 대중스님들께 시주자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탁발이 금지되어진 지금, 부처님께서 행하고자 하셨던 그 가르침이 4년에 한번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바람이 있다면 일 년에 한번, 화엄반 만이 아닌 온 대중 스님들이 탁발에 나아가 그들에 눈높이를 맞추어 먼저 손을 내밀고, 너와 내가 둘이 아님을 몸소 실천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이 친근하게 인연되어 질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출가하여 수행하는 자가 일정한 예법에 따라서 마을을 다니면서 음식을 얻는 일.
걸식으로 번역하며 행걸(行乞), 지발, 봉발 이라고도 합니다. 탁발은 인도에서 일반화되어 있던 수행자의 풍습이 불교에 도입된 것인데, 중국·한국의 불교에서, 특히 선종에서는 수행의 일환으로도 간주되었습니다. 수행자의 간소한 생활을 표방하는 동시에 아집과 아만을 버리게 하며, 걸식으로 살아가기 위해 목숨이 다할 때까지 힘써야 하므로 불교에서 탁발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수 있습니다. 또한 시주자에게는 보시하는 공덕을 쌓게 하는 데 있습니다.
『보우경(寶雨經)』에는 보살이 걸식을 통해 성취하는 열가지 법인 걸식십위(乞食十爲)가 있습니다.
첫째, 모든 유정을 섭수한다.
둘째, 正念에 머물고 위의를 구족하여 분별심이 없이 모든 집을 차례대로 찾아가 걸식함으로써 평등심을 얻는다.
셋째, 걸식에 대하여 싫어하거나 피곤한 마음을 내지 않고, 유정을 미워하지 않는다.
넷째, 만족할 줄을 알게 된다.
다섯째, 음식을 얻은 후 돌아와서 여러 사람과 나누어 먹음으로써 베풀 줄 알게 된다.
여섯째, 음식에 대하여 애착을 갖지 않는다.
일곱째, 지나치게 적거나, 많지 않은 음식을 섭취 합으로써 적당한 양을 먹을 줄 안다.
여덟째, 법대로 걸식을 행함으로써 선품(善品)을 증대시키고,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아홉째, 부지런히 수행하고 나태함을 떨쳐 선근이 원만하게 된다.
열째, 일체의 善으로 인하여 보리를 성숙시키고 아집을 여의어서, 마침내 자신을 버리고 유정에게 베풀 줄 알게 된다고 합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얼마 전에 저희 화엄반도 탁발을 나섰습니다. 지금 이 자리를 빌어 마음 담아주신 대중스님께 진심으로 고마움의 인사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운문사 도량을 벗어나 쏟아지는 봄볕 아래에서 석가모니불을 외치며 부처님이 그러하셨듯이 저도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스님들이 집 앞에서 목탁 치며 염불해도 아예 무시하는 무관심이 힘들었습니다. 몇 집을 들렸어도 빈발우를 들고 다니던 그때였습니다. 과거 하루 일곱 집만을 탁발하시던, 만약 그 결과가 빈 발우라면 그날 하루는 굶으셨던 부처님이 떠올랐습니다. 왜 부처님께서는 응당히 공양 받아 마땅한 분이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아침 마을로 내려가 걸식을 해야만 하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그들의 복밭이 되어주기 위해서만 이었을까요? ‘나’라는 아상을 내려놓고, 더 나아가 우리들의 복이나 수행의 목적을 떠나서, 오로지 그 보시를 받는 부처님이나 보시를 행하는 시주자들이 모두 다름없다는 평등함을 몸소 실천하시어 깨닫게 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스스로 중생들에게 다가가 먼저 손을 내밀고, 그들에게 당신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하는 음식 일체를 받으시며, 동시에 그들에게 법문을 해 주심으로써 진리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늘 탁발로써 중생들 곁으로 다가가 눈높이를 맞춘 자비행을 온몸으로 설법하셨습니다.
탁발하는 ‘우리’라는 존재가 외면 받으니 힘든 마음이 올라왔지만 과거 탁발로 보이셨던 부처님의 그 마음을 헤아리고 나니 평온해졌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변하자, 머뭇거리며 구경만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발우에 정성어린 시주를 담아주었습니다.
탁발 나갔던 반 스님들 중에는 시주자들의 모습에 눈물이 고였다는 이야기를 여럿 들을수 있었습니다. 수술 후 걷기 힘든 다리를 이끌고 힘겹게 나와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하고 다른 한 손으론 시주금을 건네며 한손으로 드려서 너무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시고 또 하시던 노보살님. 좀 전에 한 보시가 적었다며 더 보시 하고자 스님들 돌아가는 길목에 보시금을 들고 한참을 기다리시던 보살님. 염불하는 스님들의 목이 걱정되어 약국에서 목에 좋다는 약을 종류별로 사와서 손에 꼭 쥐어 주시던 처사님.
그 모든 불자님들은 그 순간, 우리 스님들의 모습을 통해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불교의 희망을 보려 했을 것입니다.
내가 부처님을 대신하여 인사를 받고, 공양을 받고, 불교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부끄러움과 반성으로 발우의 무게가 한없이 무거워졌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 모든 시주의 은혜를 돌려 드려야겠다는 행자 때부터의 서원이 조금씩 빛을 바랬던 것을 인정하던 순간이었습니다. 한없이 부끄럽고, 참회의 마음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감동어린 시주자 분들의 모습을 통하여 불교의 미래를 밝게 내다볼 수 있게 되었고, 저 역시 그 서원을 다시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자비 행을 실천할 수 있게 해준 부처님께 그리고 대중스님들께 시주자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탁발이 금지되어진 지금, 부처님께서 행하고자 하셨던 그 가르침이 4년에 한번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바람이 있다면 일 년에 한번, 화엄반 만이 아닌 온 대중 스님들이 탁발에 나아가 그들에 눈높이를 맞추어 먼저 손을 내밀고, 너와 내가 둘이 아님을 몸소 실천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이 친근하게 인연되어 질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끝으로 세상 모든 생명들이 부처님께 귀의해, 부처님의 품안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주인공들로 살아갈 수 있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부처님~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 바쳐 돌아가 의지하고 예배합니다.
“부처님~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 바쳐 돌아가 의지하고 예배합니다.
제가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부처님께 받은 은혜, 대중스님들께 받은 은혜, 시주님들에게 받은 이 은혜를 세세생생 온 누리 모든 생명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