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부끄러움의 용기 - 사집과 법운

가람지기 | 2018.04.15 10:20 | 조회 1627
벚꽃이 꽃비로 나리고, 하얀 새가 가지 끝에 앉은 듯하던 목련도 지고,
색 고운 튤립과 향기로운 수수꽃다리를 만나는 봄의 한 가운데서
차례법문을 하게 된 사집반 법운입니다.

오늘 법문의 주제는 ‘부끄러움의 용기’입니다.
부끄러움과 용기가 무슨 상관인지 궁금하시죠?
보통 부끄러움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험한 말이나 꼴을 당하여 느끼는 수치심이나
잘못을 저질러서 느끼는 죄의식, 혹은 이유없는 수줍음을 떠올립니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부끄러움은 수치심이나 죄의식, 수줍음과 다릅니다.
이 부끄러움은 누가 알든 모르든, 남에게 보여서,
혹은 외부 상황이나 타인으로부터 당해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고, 자신을 돌이켜보며 느끼는 참괴한 마음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부처님을 따라가면서 점차 깨닫는 부끄러움입니다.
죄의식이 ‘내’ 가 했다 혹은 ‘내’ 가 하지 않았다는 ‘나’ 라는 아상, 즉 오만함에서 태어난 어둠이라면, 이 부끄러움은 ‘나’라는 아상(我相)을 포기한 밝고 깨끗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끄러움은 곧바로 참회하는 마음이 되어,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러한 잘못을 하지 않겠습니다 하는 다짐과 맹세로 이어지고,
이 간절한 참회는 어느새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부처님, 온 세상, 이생와 전생의 모든 인연에게 감사하는 환희로운 마음,
신심(信心)으로 변했습니다.
이 기쁜 마음이 몸에 가득 차서 넘칠 때면, 절로 겸손해집니다.

이 마음은 누구에게나, 무엇에도, 어떤 상황에서도 ‘나, 나!, 나라니까?!' 하는 '나'는 일어나지 않고,
'네, 네.' 하고 따르는 유순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회는 마음으로 하고, "잘못했습니다." 하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행에 따른 인과는 분명해서,
부처님께서도, 목갈라나 존자도 받을 과보를 피하지 않고 받아내셨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은 환희심과 겸손한 마음으로 변해서
알고 짓고, 모르고 지은 바의 결과를 감내하는 용기로 나타났습니다.
과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용기가 아니라
어떤 결과를 맞더라도 물러나지 않고,
원망하지 않으며,
그 자리에서 계속, 계속, 참회하는 용기입니다.

부끄러운 줄을 알면 참회하고, 참괴한 마음이 깊으면 절로 하심이 되어
매사에 겸손하고 받아들이는 마음, 신심으로 변했습니다.
이 받아들이는 마음, 열린 마음이 되고서야 비로소 변화를 자각할 수 있었고,
제가 지은 바를 기꺼이 감수하는 용기가 솟아났습니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슬라이드 퍼즐을 기억하십니까?
정해진 틀 안에서 한 칸의 빈 공간을 이용해 뒤섞인 조각을 움직여 그림을 완성하는 놀이입니다.
상하좌우 할 것 없이 뒤죽박죽 섞여 있던 그림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공간은
오직, 한 칸이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은 바로 이 텅 빈 한 칸을 만들어내는 마음입니다.
이 한 칸으로 그림 전체가 움직이듯이 신심은 한계 없는 변화의 문을 엽니다.
신심이라 하면 막연하게 들립니다.
제게 신심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마음이고,
따라서 나도 부처님과 같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모든 고통을 여읜 행복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 믿음의 바탕은 ‘무상(無常)’입니다.
항상(恒常)하다면 저는 수행할 필요가 없고, 또 할 수도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다면 저의 어리석음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테니까요.
무상은 고통의 원인인 동시에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내 업장이 아무리 두텁고, 내가 지은 죄가 아무리 크고 무겁다 해도 부처님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앙굴리마라의 출가를 받아들이시고, 제바달다도 성불하리라고 수기하신 부처님의 자비 앞에서
"저는 안할래요." 라고 대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상하다. 그러니 지금 시작해라.' 하십니다.
'참회해라, 하심하라' 하시는 어른 스님의 말씀이 이 뜻인지는 모르지만,
참회와 하심이 연이어서 환희심-신심으로 변화하는 놀라운 경험은,
부처님을 따라가는 길의 기쁨과 자신을 바로 보는 용기의 원천이 됐습니다.
참회는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빨리, 점점 더 쉽게, 그리고 깊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 많이 행복하고, 오래 기쁩니다.

저 때문에 괴롭다는 도반 스님, 사형, 사제의 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그 말이 전부입니다.
내가 옳다거나 네가 그르다거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을 넘어서서,
고통의 원인이 된 것으로 부끄러운 참회를 하기에 충분합니다.
도반 스님들의 말을 들을 때면 억울해서 변명도하고 징징거리며, 목청도 높아집니다.
그러다가 말이 끊어지고, 5분......3분......1분.....
찰나에, 사나운 마음은 깊은 부끄러움이 되어 눈물을 참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또렷하게 보입니다.
마을에 살 때는 나 때문에 괴롭다는 말이 편가르고 배제하는 말로 들렸지, 제 허물인줄 몰랐습니다.
허물인줄 모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오만하며, 그래서 무자비한 마음이고 행동이고 말인지...

이제 부끄럽습니다.
드디어, 부끄럽습니다.
'잘못했습니다'는 발로참회에 '잘못했습니다!' 하고 대답해주는 도반스님의 모습에서
따라서 함께 기뻐하는 수희공덕만큼 큰,
따라서 함께 참회하는 '수참공덕'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이 부끄러움을 알려주신 부처님, 고맙습니다.
이 부끄러운 꼴을 봐주며 하나하나 일러주시는 스승님, 그리고 대중스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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