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明暗不二 - 대교과 현문

가람지기 | 2018.07.09 18:49 | 조회 1807

 안녕하십니까? 대교과 현문입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에는 밝음과 어두움 두가지 면이 존재합니다.
우리들의 내면도 하루 동안에 팔만사천가지의 번뇌가 일어나고 그 번뇌 속에서 선과 악이 끝도 없이 대립을 하며 싸웁니다
 지어놓은 업과 인연에 따라 삼업을 어지럽히는 일을 행해서 나와 타인을 괴롭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선행이지만 더불어 기뻐 할 수 있어 행복을 느끼기도 하며,  또는 내가 행한 일이 선인지 악인지 모르고 사는 경우도 더 많을 것입니다.

 강원에 들어오고 백명이 넘는 대중과 함께 지내다 보니 엄격한 규칙과 절제된 생활  속에서 우리는 늘 몸가짐을 조심해야 하므로 긴장감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조금만 규칙에 어긋나도 한 명의 잘못이 모든 대중의 마음을 일으키니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힘든 것도 싫고 저 사람 때문에 내가 힘든 것도 싫어서 더 신경이 바짝 서게 됩니다.
 하지만 서서히 강원생활을 하면 할 수록, 느끼시겠지만 나와 남이 구분지어 져서는 절대로 살 수 없는 곳이 바로 대중입니다. 운력이나 행사나 그 밖에 모든 생활이 나 혼자 잘해서도 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의 뜻과 행동, 거기다 폭넓은 이해심까지 있어야일이 이루어지는 곳도 바로 대중입니다.
  힘들고 두렵다는 생각에 갇혀 있다가도 그 생각에 빠질 새도 없이 옆에서 열심히 수행하는 도반들이나 대중스님들을 보면 거기에 기운을 받아서 나를 낮추고 또 조그마한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내면서 다시 즐겁게 수행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렇게 우리는 매 순간 도전과 선택의 기로에서 밝음과 어두움을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파일이 조금 지난 무렵이었습니다.
 신도분들이 공양한 꽃 바구니에 가득찬 꽃을 보는데 이미 시들어서 축 늘어져 버린 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꽃은 잎과 줄기가 싱싱해서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나중에 퇴공해야겠다고 생각하다 시들어 가는 꽃을 보니 안되겠다 싶어서 화분에 물을 주었습니다.
다시 몇 시간 후에는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미 시든 꽃들을 빼 보았습니다.
그 시든 꽃을 가만히 바라보니 내안에 일어나는 어두운 면과 닮았다는 느낌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돌려서 다시 보니 꽃은 그냥 생명이 다해서 시들었을 뿐 밝고 어둠의 차이는 제가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기 시든 꽃은 본래의 자리인 다시 땅으로 돌아가 대지의 거름이 되고 내가 어둡다고 느끼는 두려움과 고통은 그 근원을 따지고 보면 나의 아상과 아집에서 나오는 탐진치 삼독일 뿐 어둠도 밝음도 아니었습니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어둠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은 내가 심어 놓은 업의 인으로 인해 생겨난 과보입니다. 이 과가 나의 허물인 줄 안다면 이 어둠은 우리가 수행하는 곳에서 빛을 일으키는 재발심의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저 사람 때문에 힘들거나 나로 인해 힘들어 한다고 느끼는 것도 내가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었거나 또 내가 경험하고 내 식대로 단정지어버린 나의 관념 즉 아집, 아상임을 깨우쳐야 합니다.
 밝음과 어둠은 둘이 아닙니다
 밝음은 어둠이 있기에 존재하고 어두움도 밝음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팔정도에서 제일 먼저 정견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진리를 바로 보아야 올바른 수행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은 감사와 참회를 통해  내 마음의 땅에 거름이 되어 자비의 씨앗을 싹틔우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의 문에는 들어왔지만 그 끝은 아득하고, 한 번씩 느껴지는 큰 장벽 앞에 주저앉고 싶을 때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또 툭툭 털고 일어나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에 따라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서 역대 선지식들이 닦아 놓고 이어온 그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할 뿐 입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옷 속에 감춰있던 진짜 보배구슬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으로 저의 차례법문을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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