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대중스님 여러분! 치문반 일여입니다.
어느덧 장엄한 운문사에 들어와 네 번째 계절인 겨울을 맞이했습니다.
봄철의 치열했던 대중 생활 입문에서 저는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를 되뇌이며 종종 걸음을 치면서 ‘전쟁이 나면 이렇게 생활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도 언뜻 주변을 보면 눈에 들어오는 자연경관의 경이로움에 모든 걸 위로받고 보상받는 운문사의 봄철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맞이한 여름철, 짜면 흐를 만큼 땀에 젖은 옷을 입고 자면 밤새 마르는 엄청나게 더웠던 운문사의 여름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아름다운 가을의 운문사에서 저는 ‘저 운문사에 살아요.’ 라고 외치고 싶을 만큼 매일 매일이 힐링이었습니다.
봄철만 지나면 조금 괜찮다고……. 여름만 지나면 좀 더 괜찮다고……. 가을만 지나면 아주 많이 괜찮다시며 어른 스님들의 위로 아닌 위로가 맞는 거 같습니다.
한 해의 마무리 계절인 지금은 겨울철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후배를 습의할 자세가 되어 가는지 한 번씩 돌아보면서도 아직은 미숙한 치문반입니다. 마무리하면 제 머릿속엔 참회가 절로 떠올랐습니다. 좁은 소견으로나마 “참회”에 대해 대중스님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출가 전 위빠사나 명상 경험과 여러 불교서적을 읽다가 “盲龜遇木”에 관한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간 몸 받기 어려운데 받아 지녔고, 불법 만나기 어려운데 이렇게 만났으니, 어찌 허송세월을 보내랴 싶어 서둘러 출가를 단행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인 거 같습니다만, 처음엔 생각과 너무 다른 절집 문화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행자시절은 뭐든 죄인마냥 지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진참회는 아니었습니다.
“雖有才智나 居邑家者는 諸佛이 是人에 生悲憂心하시고
說無道行이나 住山室者는 衆聖이 是人에 生歡喜心 하나니라.”
비록 재주와 지혜가 있으나 마을 집에 사는 사람은 모든 부처님이 이 사람에 안타깝게 걱정하는 마음을 내시고, 설령 도행이 없으나 산실에 머무는 자는 뭇 성인이 이 사람에 환희심을 내느니라.
『發心修行章』의 한 구절입니다.
머리 깎고 산 속 생활이 2년여 지나니 점점 알음알이 생각들을 많이 내려 놓게 되고 자꾸만 진심으로 참회할 일들만 생기니 모든 성인들이 환희심을 내시나 봅니다.
“世樂이 後苦어늘 何貪着哉며, 一忍이 長樂이어늘 何不修哉리오.”
세상의 순간 즐거움은 나중에 고통이 되거늘 어찌 탐착할 것이며, 한 번의 참음이 긴 즐거움이거늘 어찌 수행하지 않으리오.
뒤돌아보면 강원 생활이 저에겐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사미니계 수계식을 마치고 일주일 만에 들어 온 운문사. 108배 할 때마다 긴 장삼을 밟아 일어나기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처음엔 5분이면 아주 짧은 시간이라는 생각에 양치질도 가슴 두근거리며 했고, 정랑에서도 항상 불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5분이 아주 긴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대방에 누워 허리를 펴고 잠깐 눈을 붙일 수 있는 시간, 여유 있게 양치질을 할 시간이고, 큰방에 경상을 다 넣은 후 정리하고도 남을 시간 등등…
봄철과 지금의 다른 점은 생각의 차이였던 것 같습니다.
참회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깊이 뉘우침이 사전적 의미라면, 불교에서는 새벽종성에 나오는 제일게송 “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만약 삼세의 부처님 경계를 알려면 법계의 성품을 관하라. 모든 것은 마음이 지었나니.“
이것만 깨닫는다면 진참회가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위탁교육을 받던 행자시절이었습니다.
도감스님이 천수경 강을 받는다 하여 열심히 외웠습니다. 다행히 행자 수첩이 있어 뜻을 조금씩 알며 외우다보니 생각보다 빨리 강을 받쳤습니다. 하지만 뜻을 전부 이해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시예불 때 암송하는 천수경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더욱이 참회에 대한 내용이 저를 뒤돌아보게 했습니다. 천수경 한 편을 진심으로 관하면 진참회가 자연히 되니 이보다 더한 부처님 법이 있을까 생각되었습니다.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亡, 罪亡心滅兩俱空, 是則名爲眞懺悔.”
죄는 자성이 없어 오직 마음 따라 일어나니, 마음이 사라지면 죄 역시 사라져서, 죄와 마음 함께 사라져 텅 비면, 이것을 이름 하여 진실한 참회라 하네.
대중스님들도 잘 아시는 앙굴리말라는 99명의 사람을 죽이고 마지막 한 명이 남았을 때 자신의 어머니를 헤치려 하였습니다. 그 순간 부처님은 평온하고 담담한 모습으로 앙굴라마라의 손에서 흉기를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로 받아들여 진리 속에 다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출가 후에 탁발하러 나간 앙굴라마라는 사람들의 모진 비난과 매질을 받아야 했지만 자신의 죄업에 대한 과보로서 기꺼이 받아들였고 진정한 참회를 통해 새롭게 수행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부처님의 성품을 지니고 있는 귀한 목숨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준 사례입니다.
저는 여전히 중생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깨어있을 때마다 마음이 어디로 요동치며 다니는지 관해보고 조금씩 알아차리려고 노력하는 새내기 사미니입니다. 알아차린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과의 만남이고 이것 자체가 진정한 참회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대중스님들, 우리 함께 자꾸 깨어있는 시간을 늘려가며 진정한 참회를 행하는 수행자가 되어보심이 어떠신지요.
대중스님 여러분. 항상 청안하십시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