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이 겨울 대중 스님들께 좋은 말 전하러 온 화엄반 혜공입니다.
이제부터 저의 회주스님의 시자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학인스님들은 ‘이게 내가 살 소임이다.’하고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화엄 첫 철, 봄을 맞이하여 한껏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찬시자인 현우스님과 손을 맞잡고 몸은 가볍게 발걸음은 무겁게 운명의 죽림헌에 올라갔습니다. 죽림헌의 부처님께서는 그러니까 회주스님께서는 저희의 인사를 받으시고 방으로 조용히 들어가셨습니다. 짐을 펼 기회를 주신 회주스님께 감사드리며
‘이제부터 회주스님의 옷은 어떻게 입혀드리며, 공양시봉은 어떻게 하며, 쉬실 때 어떤 걸 준비해두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 고민이 부질없었다는 건 그날 바로 알았습니다. 회주스님께서는 개인적인 모든 것을 홀로 행하십니다. 저희는 그저 주어진 일을 정성껏 해내면 되었습니다.
회주스님께서는 새벽에 일어나셔서 먼저 예불을 올리십니다. 그리고 바로 자리에 앉아 사경을 하십니다. 아침부터 시작해 그날의 사경을 끝내지 않으시면 잠자리에 들지 않으십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아요.”
시자 살면서 정말 많이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니, 몸소 행하셨기 때문에 매일 들었다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회주스님께서는 분명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는데 저는 많은 법문을 들은 것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었습니다. 예불과 사경, 참선, 그리고 독서 무엇 하나 흘리지 않는 회주스님. 정말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의 ‘귀감’이라는 게 무엇인지 제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회주스님께서는 매일 스마트폰으로도 사경을 하셨습니다. 제게 메모장 줄 바꾸기는 어떻게 하는 거냐 물으셔서 알려드리면 스님께서 스스로 줄 바꾸기가 될 때까지 도전하십니다.
정말 뭐 하나 대충 하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며칠 물으시더니 금세 메모장을 숙달하시고 사경을 시작하셨습니다. 반야심경, 약찬게, 법성게, 다라니, 일곱 번, 스물한 번, 서른 번, 그리고 그보다 많이
“내가 이만큼 썼어요.”하고 웃으시는 회주스님.
복사, 붙여넣기가 아닌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진 화면 속의 글자들, 모든 것을 불국토로 장엄하는 회주스님을 저는 마음 깊이 존경합니다.
또 하나의 말, 즉사이진 ‘매사에 진실하라.’ 이 말에는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겠지만 그 중 지금 우리 학인들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을 하나만 집자면, 스님께서는
“그럴 것이다, 그런 것 같다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확인 또 확인, 분명해진 말을 똑바로 전하라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작은 꽃을 심으실 때조차 말로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 위치를 정확히 손으로 집어 주시곤 나중에 정말 그 자리에 똑바로 심어졌는지 확인하셨습니다. 혹여 심어진 것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실 경우 제가 전화로 물어
“그 자리에 심었답니다.”
라고 전해드리면 스님께선
“누구한테 확인했나? 네가 가서 확인했나? 네가 봤나?”
라고 물으셨고. 그럼 저는 꼼짝없이 그 자리에 꽃이 심어졌는지 직접 확인하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여러 차례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저는 처사님이 어련히 심었겠거니 생각했는데 회주스님께서는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처음 꽃시장에서 꽃을 사 오셨을 때부터 제 소임이 끝나는 날까지 회주스님께서는 처음과 똑같이 직접 확인하셨습니다.
우리는 늘 ‘카더라’통신이라는 작은 이야기가 점점 부풀어지는 것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실상을 알면
‘아 뭐야 그랬어?’하고 끝나버릴 일을,
‘아니면 말고’의 태도로 지나 가버리고 맙니다.
반복되는 일은 어련히 진행되겠지 하면서 넘깁니다. 그리고 결국 이 찰나의 방심에 많은 일이 발생해버리곤 합니다. 이 찰나를 놓치지 않고 순간순간 어떤 일이라도 정성을 다하면 우리의 삶은 서로에게 조금 더 조심하며 조금 더 부처님께 다가가는 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
물론 회주스님의 시자는 정신적 배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도 같이 배웁니다. 방 정리는 기본이고 제가 정리를 당해 버릴 것 같던 그 시점에 회주스님께서는 바깥 장엄을 시작하셨고 분갈이, 톱질, 전지, 호미질, 화분 줄 세우기, 물주기, 몸소 체득한 꽃과 나무의 장엄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회주스님께 배운 것에 대해서 상세히 말하라면 구구절절 말할 수 있지만 이쯤에서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한 철 저의 꼴을 봐주시느라고 고생하셨던 회주스님께 죄송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면서 이 자리에서 학인스님들께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남은 소임이 어려우신가요? 내가 앞으로 무슨 소임을 살지?’
고민이 된다면, 대나무보다 소나무가 많은 죽림헌으로 올라오시길 바랍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 바른 생각 바른 행동, 눈앞의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이상 화엄반 혜공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