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영정사진 - 사교과 법일

가람지기 | 2017.12.16 18:47 | 조회 1967

눈길을 돌리는 곳곳마다 푸릇한 녹색 빛들이 일어나고 한결같이 광활한 푸르름을 만끽한 하늘 드리운 청풍료에서 영정사진이라는 주제로 차례법문하게 된 사교반 법일입니다.

어느 날도 예전처럼 제사를 끝내고 과일과 나물들을 내리던 찰나, 마지막까지도 술주정을 하다 눈을 감으신 사진속의 할아버지를 한참이나 바라보며 거칠고 터진 손으로 영정사진속의 할아버지를 몇 번이고 쓰다듬으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으신 노보살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우는 노보살님을 그저 말없이 앉아드렸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자신의 분신과 같은 존재이기에 온 몸으로 죽은 자식을 끌어안고 우는 습성이 있고 자식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아무리 부모라 해도 그 죽은 시신이 무서워 옆에서 죽은 부모를 보면서 운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절에 오시는 노보살님들의 기제일은 먼저 떠난 남편의 영정사진과 함께 가끔씩은 자녀들도 곁을 함께 사진이 올라와 있을 때를 종종 보고는 합니다. 남편 사진 옆에 자녀 밥숟가락까지 진뫼에 꽂는 그 심정이란 어떤 기분이 들까요.

그렇게 숨을 한 번 거두면 그만인 것을 무엇이도 그렇게 살고자 아등바등 인가 여러 생각들이 만감을 교차하면서 다시 한 번 출가한 계기를 되새겨 봅니다.

우리의 식 종자는 향상성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부터 선조들은 죽는다는 것은 헌 옷을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의식이라 하여, ‘인생을 잘 사는 사람에게 죽음은 절망이나 괴로움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인 것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가에 들리게 되면 저는 꼭 하는 일이 있습니다. 향을 사르고 절을 나누는 일을 하고 난 뒤 다시 한 번 사진 속에 주인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네는 일입니다. 뜻 모를 아무런 친분이 없는 상가에 들리게 될 때에도 특히 영정사진이 웃고 있는 모습일 때에는 눈길이 더 머물게 됩니다. 숨을 거두기 직전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면 무엇 이였냐는 질문을 주로 묻는 편인데요. 자리를 물러나게 될 때에도 다시 한 번 고인의 사진을 보면서 작별인사를 합니다. 살아있을 때의 작별인사를 하는 일보다 고인과의 마지막 인사를 통해 잘 보내드리는 일 이 얼마나 더 의미가 있는지 수년간 여러 아픔을 겪고 난 뒤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에서입니다. 이렇게 고인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마음으로 말을 건네고 작별을 고하고 가는 것이 사람에 대한 예의를 표하는 것이라 생각해서였습니다. 출가하기 전부터 만약 영정사진을 쓴다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사진을 써야 할까에 대해 늘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왕이면 행복하게 활짝 웃는 모습으로 그 저 한마디의 말도 필요 없이 웃고 있는 사진 속의 모습으로 하여금 보는 이들에게 충분한 위안을 얻고 갈 수만 있다면, 알지 못하는 누구에겐가 어디서 저를 보고 있을 맑은 눈 하나.

저 먼 아프가니스탄의 이라크의 죽어가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들꽃같이 부서진 이 땅, 어린 딸들의 영혼이 가난에 지쳐 절규하듯 몸을 던진 엄마와 세 아이들의 울부짖는 원혼들까지도 저의 미래 영정사진을 보며 한 물줄기 시원한 감로수로 교화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출가 한 본분을 다했다고 생각이 됩니다.

 

아직도 눈물과 고통이 흐르는 이 땅에서, 아직도 불행과 아픔이 끝나지 않은 이 땅에서, 그들의 작은 관 위에 하얀 꽃 한 송이도 못되는, 그들의 영혼을 달래줄 노래 한곡조차 못되는 작고 작은 염불이지만 정성을 다해 극락왕생 하도록 기원하기에 이 모든 것들이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고 여기고 있기에 전체적으로 보면 완성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감수성이 예민하셨던 부처님께서는 한번쯤은 죽는다는 것, 인생과 삶의 대한 진지한 고뇌의 시초가 바로 어머니의 죽음을 통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태어나신지 7일 만에 어머니를 잃으셨습니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한 나라의 태자로 풍족하게 사셨지만 친어머니에 대한 빈자리는 크셨을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발심동기는 여러 가지 의미가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빈자리를 느끼며 죽음에 대한 본질을 해결하지 않으면 부처님 당신 또한 피할 수 없다는 것에서 시작되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사색과 사치스럽고 호화스런 생활이 주는 지겨움의 목마름이 잠부(JamBu) 나무 아래 두 다리를 포개고 사색에 잠기신 이유가 아닐까요?

 

상가에 들러 바라보는 영정사진, 그것은 어쩌면 남의 사진이 아니라 제 자신의 사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그런 얼굴로 남들 앞에 놓일 모습을 회상해 봅니다. 새도 와서 지저귀고 풀벌레, 꿀벌 나비 등의 산천에 각각 흩어진 유정 무정의 권속들이 저의 죽음을 노래하고 그 자리를 위해 법문해 준다면 더없는 행복한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80세에 열반하셨습니다. 열반에 드신 날, 산천초목도 슬퍼하다 못해 사라쌍수의 잎들은 모두 말라 하얗게 변했다고 합니다. 다생 겁에 쌓은 선근공덕으로 열반에 드신 이후에 영원히 대성인으로 우리 가슴속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있듯, 뜨겁게 내리쬐는 이 불볕더위에도 정진하여 잠시 빌린 사대육신 끄달리지 말고 가볍고 당당하게 살아있는 성인이 되어 여일하게 회향합시다. 마지막으로 전라남도 민요로 내려오고 있는 흥타령으로 마치겠습니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나도 꿈속이요. 이것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 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라는 꿈, 꿈을 깨어서 무엇을 허니

아이고, 대고 허허 어루가 어루 성화가 났네.

새벽 서리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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