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발심과 비전 - 사미니과 동심

가람지기 | 2017.12.16 18:50 | 조회 1760

안녕하십니까?

만물이 결실을 거두고 난 후 내적성장을 키워 나가기에 좋은 계절.

운문사에 입방한지 엊그제 같은데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고, 출가하면서 심은 씨앗을 어떻게 성장시켜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는 이 계절에 발심과 비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법문을 하게 된 치문반 동심입니다.

 

수많은 수식어나 교리에 따른 설법은 아직 많이 서투르지만 서투름 속에서 저의 얘기를 여러분께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어릴 적 몸이 좋지 않아 활동하는 시간보다는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다는 순간순간 찾아드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생각만으로도 버거웠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몸에 변화가 생기고 고통에서 한숨 돌리게 되자, 내가 아닌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면 아픈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원을 간직한 채 시간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티비에서 호스피스 환우들을, 돌봄 하시는 은사스님을 보고 그래,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저거였구나....!’

저의 발원은 점점 구체화되어 그때부터 저의 이슈는 죽어가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삶의 여정을 함께 준비하는 호스피스에 포커스가 맞춰졌습니다.

 

저의 염원으로 지금에 은사스님의 주최로 펼쳐지는 불교 호스피스 생사의 장이라는 교육을 받으면서 생사에 대한 성찰과 제 안에 숨 쉬고 있는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드라는 수행 팀을 통해 환우들과 임상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보다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CPE"라는 자기성찰과 타인의 고통에 함께 머물며 영적 돌봄을 하는 전문교육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명 한명의 보디사트바가 탄생이 되고, 그 교육으로 많은 보디사트바들이 모여 정서적, 육체적, 사회적, 마음의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한 임상교육과 수행이 하나가 되는 돌봄을 통해서 서로 정진할 수 있었습니다. 정진할수록 뭔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갈 때였습니다. 문득 환우들의 얼굴과 지나가는 스님들의 옷자락만 봐도 미소와 환희심에 찬 환한 얼굴이 저를 자극시키면서 남은 삶을 가치 있게 보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호스피스라는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긴 순간이었습니다. 출가를 선택하고 더구나 호스피스를 하겠다는 것에 대해 많은 우려와 반대가 있었지만 저는 지금 이 자리 이 법상에서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출가는 저에게 한겨울에 삭발의 상쾌함과 환희심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조심스러웠던 행자생활을 끝내고 시간이 지나 모든 것이 익숙지 않아 서투르고 좌충우돌인 운문사 치문반의 생활 속에서 한 번씩 찾아드는 고통과 시행착오를 겪을 때 출가란 것이 저만의 욕심이었나 하는 생각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치문반 스님들과 대중스님들 그리고 저를 기다리는 환우들을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고통이란 저의 오만과 세상에 대한 겸손을 다시 생각하게끔 했고 환자들에게 각각 찾아드는 고통의 다양함을 알게 되었으며, 걱정과 두려움, 나 자신한테 국한되어 있는 것 같은 거부감과 화, 아픔과 슬픔들을 인지하고, 그것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며, 삶의 폭풍우를 지나 수많은 이들의 행복과 안락을 함께 하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걸음마를 배우는 단계에 불과하지만 호스피스라는 아름다운 동행을 위해 수행하고자 오늘도 저는 부처님께 또 발원합니다.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이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온전하기를......!

자애와 연민과 보리심이 잘 자라기를......!

그리고 행복한 동행 길에 보다 많은 보디사트바가 함께 하기를 발원합니다.

 

오늘도 청정도량인 운문사 대중스님들의 많은 배려와 이해 속에서, 저는 그 감사함으로 끈을 놓지 않고 저의 비젼을 향해 부처님께 또 한걸음 다가갑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언젠가 밤하늘의 별이 되는 그 순간에도 행복의 미소를 지으며 부처님 품에 안길 수 있는 수행자이기를 기원하며 이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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