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마음 보기 - 사교과 향광

가람지기 | 2018.04.15 10:16 | 조회 1792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향광입니다.

오늘 법문의 주제는 ‘미심수도(迷心修道)하면 단조무명(但助無明)’이라.
‘마음을 모르고 도를 닦는 것은 무명만을 도와 줄 뿐이다’라는 선가귀감의 한 구절을 통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20대 시절 저는 불교를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한 날 어느 스님께서 제게 헤드락을 걸며 물으셨습니다.
‘너 누구냐’
저는 한참 후에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모르겠는데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

저는 스님의 헤드락을, 책 속에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몸뚱이를 가지고 이 근원적인 물음에 답을 찾으라는 뜻으로 새겨듣게 되었습니다.
몸뚱이라는 교재를 가지고 어떻게 공부를 할까. 초발심자인 저는 먼저, 지금 이 순간을 살 것. 그리고 아주 깊고 면밀한 부분까지 자신에게 솔직해질 것과 그것을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큰 방에 앉아 화두를 들려고 하는데 화두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망상과 과거로부터 감정이 수시로 올라와 좌선을 하는 시간마다 자꾸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현재를 과거 혹은 미래로 인식하는 것은 한 생각이 만드는 것인데 그 한 생각이 일어나는 이유, 지금은 과거이지만, 한 때는 지금이라고 불리던 그 시점에 남겨놓은 무언가가 있었기에 좌복 위의 저는 앉을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저는 가만히 마음에 집중해 보았습니다.
과거에 남겨놓은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 동안 자신의 마음을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화가 일어납니다. 화 속에 비겁함, 비굴함, 비열함, 초라함, 나약함, 열등감, 자격지심, 등 온갖 부정적이고 어두운 미망들이 제 깊은 내면 속에 일어났던 것을, 알고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러한 부정적이고 어두운 감정들을 통틀어서 ‘슬픈감정’이라는 표현을 쓰겠습니다.
부정적이고 어두운 점이라고 하여 반드시 나쁜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슬픈 감정이 마음 속 깊이 차있는 동안 저는 화로써, 자신을 두둔하고 합리화하기 바빠, 결코 그것들과 정면돌파 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듯, 자신의 깊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야함을 체감한 후, 그 동안 교묘히 감추고 피해왔던 그 슬픈 감정들을 하나하나 독대하며 겸허하게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부분들을 ‘그게 나다’, ‘다 내 것이다’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렇게 인정할 때 마음 속에 엄청난 거부 반응, 즉 슬픔감정이 다시금 일어났습니다. 더 큰 화가 올라오기도 하고 상대방을 더욱 증오하고 싶은 마음도 일어나고, 또다시 어느 순간 자기합리화를 하는 저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불연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을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슬픈감정의 것을 인정하기 싫은 만큼, 이것이 내 아상의 크기이다’라고 말입니다.
자신의 솔직한 내면을 마주하여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회피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노력하면서 일상에서 즉각적으로 대면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차츰, 제대로 된 인정을 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가벼워지고, 마음 속의 번뇌의 찌꺼기가 사라져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우리는 사람을 떠난 수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을 사는데는 내 옆에 항상 사람이 있고, 나 혹은 상대의 말과 행동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의상관 속에 삶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화두를 참구하여 행주좌와 어묵동정에서 찰나에 살며 알아차림 하기를 어느 누가 바라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은 이리저리 외부에 휘둘리며 살고 있는,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인정하고 지속시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어리석음과 어리석음 사이에서 지혜를 키워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보았다면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기 위한 실행을 하는 것이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임을 잊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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