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들풀처럼 - 치문반 민재

최고관리자 | 2016.01.26 15:26 | 조회 2421

들풀처럼

치문반 민재입니다. 저는 자주 읽고 썼던 시를 가지고 얘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출가 전 저는 사람과 생활에 지쳐가고 있을 때쯤 마음에 와 닿는 시가 있었습니다.

  

마음가득 바람이 부는

무한 허공의 세상

맨 몸으로 눕고

맨 몸으로 일어나라

함께 있되 홀로 존재하라

과거를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갈망하지 말고

오직 현재에 머물라

언제나 빈 마음으로 남으라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하라

그리고는 침묵하라

다만 무언의 언어로 노래 부르라

언제나 들풀처럼

무소유한 영혼으로 남으라

  

제목은 들풀처럼 살라입니다.

그 동안 나는 뭔가에 매달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지친 일상에서 벗어났습니다. 빈 마음아닌 빈 마음으로 나를 놓고 나니 그 동안 나는 다른 사람을 너무 의식하면서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 후로는 좋으면 좋은대로 못하면 못하는대로 사람들을 대하기가 한결 편해졌습니다. 그래도 좋은게 좋긴했습니다. 그렇게 또 다른 일상으로 시간을 보내지만 허한 맘에 이런 글귀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번 생에 잠시 인연따라 나왔다가 인연이 다 되면 인연따라 갈 뿐이다. 장작 두 개를 비벼서 불을 피웠다면 불은 어디에서 왔는가. 장작 속에서 왔는가, 아니면 공기중에서 왔는가, 그도 아니면 우리의 손에서 나왔는가,아니면 신이 불을 만들어 주었는가,다만 공기와 장작과 우리들의 의지가 인연 화합하여 잠시 불이 만들어 졌을 뿐이고, 장작이 다 타고 나면 사라질 뿐이다. 이것이 우리 몸을 비롯한 모든 존재의 생사(生死)이다. 불을 어찌 고정된 실체라 할 수 있겠으며, ‘라고 내세울 수 있겠는가. 다만 공한 인연생 인연멸일 뿐이다. 여기에 내가 어디있고, 내 것이 어디 있으며, 진실한 것이 어디 있는가. 다 공적할 뿐이다. 이 몸 또한 그러하다. 인연따라 잠시 왔다가 인연따라 잠시 갈 뿐. ‘도 없고, ‘내 것도 없다. 그러할진데 어디에 집착하고, 무엇을 얻고자 하며, 어딜 그리 바삐 가고 있는가. 갈 길 잠시 멈추고 바라볼 일이다.

  

이제는 여러 사람들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나를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사람들 속에 있어도 헛헛함이 느껴져 산으로 절로 혼자 놀이를 즐겼습니다.

  

春來花滿地 (춘래화만지), 봄 오면 온 땅에 꽃이 가득 피어나고

秋去葉飛天 (추거엽비천), 가을이 가면 낙엽이 하늘로 날아가네

至道離文字 (지도리문자), 지극한 도는 문자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元來在目前(원래시목전) 근원에서 흘러나와 내 눈앞에 펼쳐 있다네

이 시는 고운 최치원의 시 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전해지는 시였습니다.

다음은 출가의 맘을 정하고 한 토굴에서 본 시입니다

  

가난을 스승으로 청빈을 배우고 질병을 친구로 탐욕을 버렸네 고독을 빌려 나를 찿았거니 천지가 더불어 나를 짝하누나 산은 절로 높고 물은 스스로 흐르네 한가한 구름에 잠시 나를 실어본다 바람이 부는대로 맡길일이지 어디로 흐르던 상관할것없네 있는것만을 찾아서 즐길뿐 없는 것을 애써 찾지 않나니 다만 얽매이지 않음으로 언제나 즐겁구나

  

이렇게 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묻습니다. 나중에 졸업하면 뭐할거냐고. 저는 그러죠, 밥먹고 살 수 있으면 됩니다. 너무 큰 욕심인가요?

마지막으로 이 시를 읽고 출가를 했습니다.

  

묻히리랏다 靑山에 묻히리랏다

靑山이야 할 리 없어라

나는 절로 질 꽃이어라

지새어 듣는 머언 북소리

이제야 난 굳세게 살리라

날 이끄는 흰 百合의 손도 바람도

아무것도 내 몸을 꺾으리 없어라.

  

신석초의 바라춤 서시의 일부입니다.

저는 지금 여기 있습니다. 나를 드러내는 순간 매사에 마찰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내가 왜?' 보다는 '그래, 내가 하자!'는 마음으로 살려합니다. '왜 이렇게 하지?' 하는 생각보다는 '이렇게 해도 되네' 하는 마음을 가지려 합니다. 사실 정해진 것은 없었습니다. 내가 그러했을 뿐! 행동없는 말 한마디에 화가 나고 말 없는 조용한 행동에서 더 깊은 것을 배우곤 합니다. 말을 삼가고 한 발 더 움직이며 오늘도 下心하려합니다. 함께하던 도반에게 ' 여기나 저기나 뭐가 다른가, 여기서 함께하자.' 고 했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저에게는 여기가 여기이고 그 도반에게는 저기가 여기인 듯합니다. 나를 놓으면 다 여기인데 그 도반에게 나를 고집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모두 여기에서 그냥 살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저는 요즘 치문을 읽고 있습니다.

  

若知物我冥一, 彼此無非道場, 復何徇喧雜於人間, 散寂寞於山谷?

만약 만물과 나 자신이 그윽하게 하나임을 안다면 저곳이나 이곳이나 도량 아닌 곳이 없을 것인데 다시 어찌 사람들 사이에서 떠들썩하고 혼잡함을 따르고 산 속 골짜기에서 고요하고 쓸쓸함을 흩뿌리겠습니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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