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의 길
화엄반 원일
“만약 여인들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다면 정법이 마땅히 1000세를 머무를 것이지만,
여인들이 출가를 허락하였기 때문에 정법의 기간이 500세가 줄어들 것이다.“
안녕하십니까,‘출가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화엄반 원일입니다.
방금 믿기힘든이구절은 대애도비구니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대애도비구니는이런부처님말씀을듣고 매우 슬퍼하면서, 그래도 출가를 하여 열심히 도를
닦겠다고 다짐 합니다.제게 이구절는 매우충격적 이였습니다. 삿된법을 여의고 정법을 수지할 것을 발원하고, 누구라도 부처님의가르침을 실천한다면 좋은일이지 어째서 감면한다고 하셨을까..? 여성이 출가하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일이였던가?
저는 어려서부터 절에 인연이 되어 부족함 없이 학교를 다녔고, 졸업할 때가 되어서는
수능 친 것이 아까워원서만이라도 넣어 보자, 하며 진짜원서만 써넣고 다음날시원하게 삭발하는 여유까지 부렸습니다. 한때는 독서실을 오가며 또래 친구들과노는 것이 어찌나 재밌고 행복하던지 출가하겠다는 뜻이흐려 질때면 은사스님께서는 “무명초달고는 대학교는 없다!” 라는 단호한 말씀과, 이제껏 키워주신 부처님과 노스님의 은혜를 져 버릴 수 없었기에 출가를 결심했고,출가하면못하는 것들이 많은 걸 알기에 리스트를 적어 하나씩 해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출가는저에게 있어 그렇게 어렵지않은숙제같은것 이였습니다.누구를 위해 살아야하는지도,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도 모른채, ‘부처님밥값해야지’ 하는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그후 해인사 보현암에서 행자생활을 하던중, 어느 비구스님께서 무심코던진말에저는분심이났습니다.
“비구니들은 절살림이나 살어~” 헐!!!
듣는 순간 저는 콧김을 내며 씩씩댔습니다.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남자 아이를 낳고 싶었는데 제가 태어났다는 말이 문득 뇌리를 스쳤습니다. 그냥 다똑같은 스님인줄알았는데, 막상 출가해보니 비구,비구니 구별이 분명했고, 그것이 제 삶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수행해야 할까?’ 심오한 불법이 그저 막연하게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실로 체득하여 본다면, 여자에게는 여자라는 고정불변의 상이 없고, 남자에게는 남자라는 상이 없다고 합니다.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 참다운 수행아닐까요.
‘번뇌가 곧 보리요, 열반이 곧 생사라’
번뇌에는 번뇌의 모양이 없고, 열반에는 열반의 모양이 없어, 지금 자리 그대로가 진여실상을 말하는 것처럼,본래 갖추어져 있기에급하게서두르지 않아도 시절인연이 도래할 때, 그 씨앗이 싹트고 꽃을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 같습니다. 당시 부처님께서여성을제자로 받아들인 것으로인해 사회제도의 벽이 허물어졌고 그때문에현재 많은여성들의 삶이 윤택해 졌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훌륭하신 비구니 스님들이 많이 계셨기에,어두운 수행의 길이 더욱 빛날 수 있었고, 앞으로도 보다 진취적인 불교를 만들어가는 것 또한 현재 젊은 출가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 뉴스에는 테러나 학생들의 단식 시위등 정치적,사회적,종교적으로
신경을 곤두서게하는 일들이 많아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피땀흘려 나라를 위해 혼신을 다하신 위대한 장군들 앞에 부끄럽고,
목숨걸고 바다를 건너 부처님말씀을 새겼던 간절한 고승들의 원력앞에 할말이 없습니다.
앞서가신 스님들의 발자국을 우리들이 무사히 밞아 왔던 것처럼 어려운 시기를 살고있는
현재 스님들이 수행을 잘 해야 훗날 발자국을 따라올 후배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수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때론 따뜻한 이불속에서 게으름 피우고 싶을 때 대애도 비구니가 흘렸던 눈물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아보는건 어떨까요, 500년 감면이 아닌 그 이상 부처님의
정법이 오래 머무르리라 생각합니다.
처음출가하여 행자교육장으로 향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운문사 강원 졸업이라니, 정말 실감나지 않는 요즘입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이법상에 제가 앉아 법문을 하게 되는 날이 오다니 시간 빠르죠? 자비행을 실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곳이 대중이라고 합니다. 대중하면 운문사인데요, 저도 4년이아니라 40년을 사는 것처럼 느껴졌던 운문사생활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돌아보면 가장 힘든 순간이 가장 큰 공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별일 아닌 일들인데어찌나 마음이 쓰이는지, 도반의 따끔한 말들에 내 몸이 부서지는 것도 아닌데 얼마나 아프던지...한때는 운문사를 바꿔야만 한다는 어리석음에 사로잡혀, 내 안목을 바꿀 생각은 왜 못했는지..그렇게 소비한 에너지가 참 많죠잉..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마음을 크게 써봅시다!!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대중에 수순하면서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지혜로운 수행자 되어봅시다.
이 자리를 빌어, 출가의 길을 열어준 많은 인연들에 감사하고, 어른스님들을 가까이 모실수 있게 해준 운문사에 감사하고, 무엇보다도 32응신을 나투는 화엄반 31명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혼자보기 아까운 어느 노스님의 편지글을 전하며, 제 차례법문 마무리 하겠습니다.
“삭발염의한 채 걷는 출가의 길이 먹고 입는 것을 위한 방편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부처되는 길이기에 이길을 가는 것, 그런 ‘원’하나 품은채 가다보면 이생에 성취되지 못하더라도 그 인연 남아 내생에 또 닦지 않겠는가, 후회스럽게 살았다면 후학들에게 이길을 권할 수 있었겠는가“
대중스님들, 출가의 길 잘 가고 계신가요? 부족했던 제 차례법문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