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사교반-주성스님

최고관리자 | 2015.01.19 12:06 | 조회 2841

밥과 법

 

사교반 주성

 

스님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주제는 무엇일까요? 바로 먹는 것입니다. 그럼 스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울력은 무엇일까요? 그것도 먹는 것과 관련된 일입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스님들은 먹는 것에 과도할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먹는 일은 솔직히 욕계에서도 가장 말초적인 일입니다. 욕계, 색계, 무색계를 뛰어넘고자 삭발염의한 출가사문으로써 먹는 일에 집착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법을 깨닫기 위해서는 밥을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는 왜 음식을 먹을까요? 오관게에 따르면, 마음속의 온갖 욕심들을 버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음식을 먹습니다. 번뇌를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고자, 생사윤회를 끊어 버리고 삼계를 뛰어넘는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어 온갖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우리는 음식을 먹습니다. 이렇듯 밥을 먹는다는 것은 수행자에게 있어서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밥은 곧 법인 것입니다.

비구(比丘)는 음식을 빌어먹는 걸사(乞士)를 뜻합니다. 부처님 당시 출가 수행자는 걸식에 의존했습니다. 하루에 한 끼를 먹었으며 시간은 정오를 넘지 않아야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공양 때가 되면 손수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서 걸식하셨습니다. 음식은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이어야 했고 묵혀 둘 음식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발우 하나에 담겨진 음식 한 그릇이면 그것으로 하루는 충분했습니다.

그로부터 2600여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수시로 들어오는 공양물에 의지합니다. 운문사의 밥상은 무척이나 풍성하고 화려합니다. 특정행사가 있을 때는 반찬 가짓수를 세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공양시간에 반찬을 뜰 때면 마음이 무척 바쁩니다. 이것도 먹고 즐겁고 싶고, 저것도 먹고 즐겁고 싶습니다. 온갖 것을 조금씩 다 맛보고 맘껏 즐겁고 싶습니다. 그래서 과식하기 일쑤입니다. 그렇다면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탐욕을 먹는 것이 아닐까요? 탐욕은 삼독의 한 가지인데, 애써 먹은 밥이 약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독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밥상 말고 다른 먹거리도 정말 풍성합니다. 솔직히 다 먹기 버거울 정도로 들어오는 공양물의 양은 엄청납니다. 그렇게 먹을 게 많은 데도 여전히 무언가 허전합니다. 바로 코앞에 먹을 게 한 가득인데도 또 다른 특별하고 맛있는 것이 없을까 끊임없이 두리번거립니다.

그 옛날 부처님과 제자들이 거리에서 걸식하여 얻은 발우 한 그릇의 음식 속에는 온갖 것이 뒤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차마 사람으로서 먹지 못할 음식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계정혜 삼학을 철저히 지키는 청정한 수행자에 입에 들어간 순간 그 음식은 세상에서 가장 경건하고 성스러운 음식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자타가 공양한 우유죽을 드시고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집집마다 거두어들인 거친 음식을 먹고 아라한과를 얻었습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가장 소박하고 천한 음식을 드시고 위없는 가장 숭고한 법을 깨달으셨으며, 보리심을 발하여 뭇 중생을 널리 제도하셨습니다.

중아함경에서 부처님은 밥을 얻었을 때에는 생각하면서 먹고, 탐착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 다만 이 몸을 유지하기 위해 얻으라.”고 하셨습니다.숫타니파타에서는 음식을 얻을 때에는 칼날의 비유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면도날에 묻은 꿀을 겁도 없이 탐욕스럽게 먹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인과의 칼날이 언제 되돌아올지 생각하면 이렇게 마냥 화려하고 배불리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탐착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하겠습니다. 맛있고 맛없고를 늘상 따지고, 또 다른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혀를 날름거리는 이 놈 한 번 잡아보자고 큰 맘 먹고 집 나온 저희들이 아닙니까. 솔잎가루와 나무껍질 등으로 연명하며 목숨을 걸고 공부해서 깨달은 스승들은 많습니다. 그렇지만 화려한 음식을 배불리 잘 먹고 깨달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조화롭고 아름다운 삶을 실천한 헬렌 니어링은 저서소박한 밥상에서 소박한 음식으로 소박한 삶을 살자고 제안합니다. 다양한 음식이 차려진 풍성한 밥상은 우리를 과식으로 이끌고, 음식이 입맛을 돋울수록 더 많이 소비되고 건강에 해롭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식사를 간단히 준비하자.”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아낀 시간과 에너지로 우선시해야 할 다른 존귀한 것들을 인식하자고,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자연과 대화하자고 합니다. 버터와 소금을 뿌리지 않은 팝콘보다 뿌린 팝콘을 두 배쯤 더 먹게 된다면, 아무것도 안 뿌린 팝콘을 적당히 먹자고 합니다. 소금을 넣지 않은 팝콘이 입맛을 당기지 않는다면 그만큼 배가 고프지 않다는 얘깁니다.

춥고 배가 고플 때에 도심(道心)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 도를 깨닫지 못하면 밥알 하나도 소화시키지 못하며, 도를 깨달으면 하루에 황금 만 냥을 써도 모두 녹일 수 있다고 옛 어른은 말씀하셨습니다. 도심은커녕 입맛만 고급이 된 저는 밥알 하나도 어쩌지 못하는 소화불량 스님 축에 들 것 같습니다.

대중 스님 여러분, 우리 지나치게 잘 먹고 사는 건 아닐까요? 풍성한 밥상을 차리느라고,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준비하느라고 오랜 시간을 일하고, 다치고, 아프고, 이렇게 사는 것이 아무렇지 않으십니까? 먹고 남은 그 많은 음식들이 과연 어디로 가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무엇보다 이렇게 풍성한 공양을 녹일 수 있을 만큼의 덕행을 쌓고 있거나 도업을 이루고 계십니까? 우리가 먹는 밥이 곧 부처님의 법이 될 만큼의 공부를 하고 계십니까? 출가사문으로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지 반추하는 저녁이 되기를 기도하면서 이상 마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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