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불교의 무아와 윤회설- 대교과 민우

최고관리자 | 2014.05.29 14:57 | 조회 4117

불교의 무아와 윤회설

대교과/ 민우

<!--[if !supportEmptyParas]--> <!--[endif]-->

안녕하십니까. 대교반 민우입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싯타르타 왕자가 출가를 결심하고 성벽을 넘는 깊은 밤, 말을 끌고 나온 마부 찬나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찬나는 명령을 어기지 못해 싯타르타 왕자를 홀로 떠나보내고 왕자의 몸에 차고 있던 보물들만 가지고 다시 까삘라바스투의 궁전으로 돌아갑니다. 이후 부처님께서 성도하시고 고향인 까삘라바스투를 방문하셨을 때 많은 석가족 사람들과 함께 마부였던 찬나도 출가합니다. 그 이후 찬나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며 논란의 중심에 서게됩니다. 바로 자신이 부처님의 출가를 직접 도왔다는 이유로 거만하고 무례했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부처님 열반 직전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 열반 후 찬나를 어떻게 해야할지 여쭈어 봅니다. 그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은 바로 묵빈대처였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찬나는 그 동안 자신의 행동을 깊이 참회했고, 열심히 수행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찬나가 40년 이상 수행을 하면서도 도과를 얻지 못하고 승단의 문제거리가 된 것은 바로 유신견 때문입니다. 데와다따가 부처님을 해할 의도를 낸 것이나, 아자타사투 왕자가 자신의 아버지인 빔비사라 왕을 죽이면서까지 왕위에 오른 것, 또 부유한 집의 딸이였던 빠띠짜라를 미치게 한 것도 모두 유신견이 원인이었습니다.

아함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유신견은 존재를 행복한 세계로 인도하지 못하고, 그 대신 비참한 세계로 끌어 내린다. 완두콩 크기만한 자갈돌이라도 결코 물 위에 뜰 수 없듯이 유신견을 가진 존재는 윤회의 표면으로 결코 떠오를 수 없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유신견이란 불멸하는 영혼이나 인격 주체와 같은 존재론적 실체, 즉 내가 있다고 믿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존재, 개체 또는 나라고 부르는 이것이 항상 변화하고 있는 다섯 가지 물질적, 정신적 에너지의 조합, 즉 오온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 오온 외에 자아나 영혼이라고 불리는 영원불멸하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다만 의지, 욕구, 갈망등이 존재하고 계속되는 한 이 오온의 에너지도 그에 따라 강력해질 뿐이며 사실 이 오온의 힘은 생명을 움직이고 존재하게하며 심지어 전체 세계를 이끌어 가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힘은 죽음으로도 멈출 수 없으며 죽음후에 환생 또는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형태의 삶을 취할 뿐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불교가 아닌 다른 문화권에서도 이러한 윤회와 환생을 믿어왔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천여년 전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에 살고 있던 인도 게르만 원주민들이 아마도 기온 변화에 따른 식량의 부족으로 이란과 인도, 그리고 유럽 전역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방으로 흩어진 인도 게르만 민족들은 유사한 언어와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신교에 대한 믿음이라든지, 순환적인 역사관 그리고 심지어 윤회 사상은 인도의 여러 종교와 고대 유럽 철학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됩니다. 그리스 시대의 대표적인 철학자 피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윤회를 믿었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플라톤은 인간이 죽은 후 1000년에 한 번씩 10000년 동안 9번 윤회를 하고 그 후 별나라로 간다고 믿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여러 차례 몸을 받아 죽음과 해방을 되풀이 한다는 것입니다.

힌두교에서는 윤회를 이렇게 말합니다. 죽음이 일어날 때 영혼은 몸을 떠나서 그것의 갈망을 적셔줄 수 있는 적당한 몸을 찾을 때까지 우주를 떠돌아 다닙니다. 이 영혼은 몇 번의 환생을 거듭한 후 결국에는 우주 영혼인 브라흐만과 합일을 찾게됩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해탈, 열반입니다. 영혼은 나무와 같은 가장 낮은 단계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높은 수준의 단계로 점차적으로 윤회하며 한 영혼도 빠짐없이 모든 영혼은 반드시 해탈, 열반에 이른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의 영혼이나 힌두교에서 말하는 지바라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유신견입니다. 불교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무아의 증득을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윤회를 인정했기 때문에 많은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윤회할 주체가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윤회하는 것일까요.

당연히 영원불멸하는 무엇인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한 삶에서 다음 삶으로 옮겨가지 않습니다. 단지 매 순간마다 변화하는 끊어지지 않는 연속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연속은 사실 단지 움직임, 또는 운동일뿐이라고 설명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밤새워 타는 불꽃과도 같고 어린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초저녁에 타는 불꽃과 한밤중에 타는 불꽃은 같은 불꽃입니까 다른 불꽃입니까.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면 이 두 사람은 같은 사람입니까 다른 사람입니까. 똑같은 방식으로 여기서 죽어서 다음 생에 태어나는 사람은 같은 사람도 다른 사람도 아닙니다. 단지 하나의 연속일 뿐입니다.

여러분, 유신견이 있다면 수다원의 도과조차도 얻을 수 없지만 유신견만 제거되면 다른 무명과 갈애가 남아 있어도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과의 도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함께 유신견을 타파하여 무아의 도리를 체득해서 하루 빨리 도과를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