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소 길들이기
태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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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봄날입니다. 꽃이 만발합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봄이 온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 봄날에 나 자신은 어떤 꽃과 잎을 피우고 있는지, 꽃으로 피어날 씨앗을 일찍이 뿌린 적이 있었던가, 되돌아보는 마음으로 차례법문에 임한 사집반 태우입니다.
꽃이 우연히 피지는 않습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꽃이 피고 지는 것 같지만 한 송이 꽃이 피기까지의 그 배후에는 인고의 세월이 떠받치고 있습니다. 모진 추위와 눈바람, 더위, 혹심한 가뭄과 장마, 이런 악조건에서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견뎌 온 나무와 풀들만이 참고 이겨낸 그 세월을 꽃으로 혹은 잎으로 펼쳐 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된 나무와 풀만이 때를 만나 꽃과 잎을 열어 보이듯, 준비된 사람만이 계절을 만나서 시절인연을 만나서 변신을 이룰 수가 있다고 합니다.
부처님 당시 바라드바자라는 바라문이 음식을 나누어 줄 때, 음식을 받기 위해 한쪽에 서 있던 부처님을 보고 말합니다.
“사문이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습니다. 당신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십시오. 갈고 뿌린 다음 먹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이 말합니다.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갈고 뿌린 다음에 먹습니다.”
이에 바라문은 다시 되묻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의 쟁기나 호미, 소를 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나도 갈고 뿌린 다음에 먹는다.’라고 하십니까?”
부처님이 대답합니다.
“나에게 믿음은 씨앗이요. 고행은 비이며, 지혜는 쟁기와 호미, 의지는 쟁기를 매는 줄입니다. 몸을 조심하고 말을 삼가며 음식을 절제하여 과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는 진실을 김매는 일로 삼고 있습니다. 또한 부드러움과 온화함이 내 소를 쟁기에서 떼어 놓습니다.”
즉, 부처님 자신은 마음의 밭을 간다는 말입니다 .
마음의 밭, 참으로 광대무변한 공간이 제 안에도 있습니다. 수행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부지런히 밭 갈기에 힘써야 할 그 밭에는 쟁기조차 갖추지 않은 소 한 마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치문 첫 철, 믿음이란 씨앗 대신 먹물 옷이 내게 맞는 옷인가란 의심을, 새벽 세 시에 열리는 몽롱함과 긴장이 뒤섞인 하루의 시작, 끊임없는 습의, 걱정자리, 운력, 인수인계, 다양한 소임이 메마른 고행으로 다가오고, 익숙하지 않은 일정을 넓은 도량에서 소화하다 보면 고단한 몸이 먼저 꺾이며 잘 살아내겠다는 의지는 자취를 감추곤 했습니다. 부드러움과 온화함 보다는 두려움과 걱정으로 예민해집니다. 의심과 메마름과 고단함과 두려움을 먹고 자란 소가 벌떡 일어나 운문사 밖, 저 멀리 달아나려고 합니다.
워낙이 초심자의 마음엔 소가 한 마리 들어있단다. 것도 엉덩이에 뿔이 난 소가. 멀리 내보내더라도 다독여 데려오고, 때때로 엉뚱한 길로 들어서거나 한 눈 팔 때도 이랴 이랴 하면서 지 가던 길로 몰아갈 줄 알아야 하고. 그러자면 고삐를 쥐었다 풀었다 조정할 수 있어야 된다, 는 은사 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내달리던 녀석을 어기어기 끌고 와 제 자리에 묶어둡니다.
그리고 종두 소임과 여름불교학교, 가을 동문회 행사, 겨울 김장을 하면서 온 몸을 다해 근력을 씁니다. 꽁꽁 묶여 있던 녀석이 발광처럼 달아나려 하지만 고삐를 더 단단히 쥐고 소임에 임합니다. 게다가 저는 성격도 엄청 급해 학대에 가깝게 몸을 사리지 않습니다. 찬상 공양 후 설거지 물통을 용쓰며 들어올리고, 음료와 과일상자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 손님용 이불을 키 높이로 쌓아올리고, 소금에 절인 배추를 줄 맞춰 쟁입니다. 그런 제게 상반스님이 한 마디 합니다.
“운문사에서 4년 살아야 하는데 태우 스님처럼 하면 일 년 만에 몸 다 망가져요. 살살 해요.”
그렇습니다. 상반스님의 말은 언제나 정직하게 따르는 것이 수입니다. 왜냐면 제가 걸어가는 길을 먼저 걸어갔기에 그 굴곡을 다 알 것입니다. 살살 하라는 말 속에는 대충하거나 태만 하라는 게 아니고 같이 하라는 뜻일 겁니다. 그제야 돌아보니 제 주변에는 삼십 여 명의 도반 스님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저와 같은 소 한 마리가 들어 있어 마음 밭을 일구기도 하고 때로는 날뛰는 녀석이 분탕질을 할 테고, 가끔은 너무 잠잠해 묵정밭이 되기도 할 겁니다.
선배 스님들이 걸어갔던 길, 그 위로 어른 스님들이 일군 운문사란 수행 밭에 저와 반 스님들은 한 알의 씨앗으로 뿌려진 게 아닐까요? 믿음이란 씨앗 말입니다. 그 씨앗에서 지혜의 꽃과 의지의 잎을 피우기 위해, 진실한 수행자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4년 간 준비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손에 흙을 묻히며 농사를 짓는 원두반입니다. 기대에 차 있습니다. 마음 밭에 살고 있는 소를 부리며 또 일 년을 잘 살아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