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능관/ 대교과
삶의 가장 화려한 순간처럼 여름의 푸르름이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도 그 푸르름이 빛을 발하고 계십니까? 안녕하십니까? 게으름 이란 주제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대교반 능관입니다.
행자시설 처음 삭발을 하고 입승스님께 편지를 한 장 받았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열어보니, 그것은 성철스님의 수좌 5계라는 글 이였습니다.
어느 수좌가 성철스님께 질문을 합니다.
공부가 안되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성철스님은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면서 내가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공부가 안될 리가 없다고 하시면서 이 수좌 5계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공부하는 강원생활에 맞게 바꾸어 적용해 보면, 첫째, 6시간 더는 자지 말고 둘째, 꼭 필요한 말 이외의 잡담은 하지 말고 셋째, 부처님경 이외의 책은 보지 말고 넷째, 간식하지 말고 다섯째, 돌아다니지 말라 입니다. 수좌들이 이 말을 듣고는 자신 있게 이것쯤은 지킬 수 있다고 하고 돌아가지만 이것을 지킨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철스님께서는 결국 지금까지 공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못 봤다고,,, 그런데도 어떻게 공부가 안된다고 하는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 공부법은 매우 간단하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매우 쉬운 방법입니다. 그래서 이것쯤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실천하기가 매우 어렵고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위의 5계와는 반대로 생활하는데 오랫동안 습관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 습관을 버리고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쉬운 방법은 무시하고 간과하면서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고 푸념하거나, 노력하지는 않고 다른 특별한 방법을 찾고 있는 게 아닐까요?
저는 특히 잠이 많고 여러 가지 일을 귀찮아하며 오늘할일도 내일로 미루는 잘못된 습관이 있습니다. 도반들이 저를 게으름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위의 5계를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 게으름 때문입니다.
열반경에 “부처님께서는 방일하면 열반에 갈 길이 없어진다. 방일에는 열세가지 과실이 있으니,
세상의 악한 행위를 즐겨하고, 무익한 말을 즐겨 말하며, 잠을 즐기고, 세속 일을 즐겨 말함이요, 나쁜 벗을 가까이 하고, 항상 게으르고 태만하며, 남을 경멸함이요, 무엇을 들으면 이내 잊어버리고, 변두리 지역에 살게 되며, 육근을 제어하지 못하고, 탐욕의 포로가 되며,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소견이 바르지 못함이다. 방일의 과실로 도(道)와 어긋나 가르침의 다리를 끊고 온갖 망념(妄念)을 이끌어 낸다. 악취에 떨어지는 일은 방일에서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수행하는데 왜 게으르고 나태함 마음이 드는 걸까요? 그만큼의 간절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마른 이가 물을 생각하듯, 배고픈 이가 밥을 생각하듯 우리는 깨달음에 대한 간절함이 없습니다. 그것은 신심의 문제입니다. 신심은 정진과 비례한다고 했는데, 해탈 열반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가득 차 있다면 열심히 하지 않을래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처음 발심할 때의 간절함과 열정이 있다면 어떻게 게으름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 신심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지만 생활이 익숙해지고 편해지면서 차츰 희미해지고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재발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출가를 했는지, 우리가 진정 원하는 자유로운 길이 생사 해탈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매일 재발심해야 합니다.
게으른 습관을 떨쳐버리고 성철스님이 말한 5계중에서 하나라도 마음먹고 지킬 수 있다면 우리의 강원생활은 훨씬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불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부처님의 경을 다 외우고도 그것을 직접 수행하지 않아서 깨닫지 못했던 아난처럼 아무리 경을 다 이해하고 외운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매일 충만한 신심으로 게으른 생각, 방일한 생각에서 벗어나 부지런히 정진하여 스스로 해탈 열반의 경지를 체득하기를 발원합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