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돌려서 나아가기 - 화엄반 덕원스님

가람지기 | 2018.12.07 21:34 | 조회 1719


 

반갑습니다. 화엄반 덕원입니다.

어쩌면 오지 않았으면 했던 날이 오늘이 아닐까 합니다.

여러 상반스님들 , 하반스님들이 법상에만 올라갔다하면 떨렸던 목소리와 모습에 왜 저렇게 떨까? 했는데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체감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항상 가을철이면 사중 어른스님들과 대중스님들의 배려로 1920일 장기출타를 합니다. 저희 사찰에서는 매년 1013~ 14일 회향일에 맞추어서 49일 동안 수륙재를 봉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먼저 수륙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수륙재의 정식명칭은 천지명양수륙무차평등대재(天地冥陽水陸無遮平等大齋)입니다.

수륙재는 하늘과 땅, 그늘진 곳과 밝은 곳, 육지, 수중 어느 한곳도 차별 없이 산자와 죽은 자를 위해 불, 보살님들의 가피와 법을 근기에 맞게 막음 없이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건너 주기 위한 큰 법회입니다. 일반적으로 영산재를 흔히 알고 계시는데 수륙재는 영산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수륙재는 단에 음식을 차리는 설단, 불교음악, 지화와 번으로 하는 장엄, 수인, 의식 등 어느 것 하나 빠짐없는 불교미술의 총 집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조는 조선을 건국하기 위해서 죽어간 고려 왕실의 혼을 달래고 전쟁으로 세상을 떠난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조선건국 초 진관사에 59칸의 수륙재만을 지낼 수 있는 수륙사(水陸社)를 지었습니다.

국가를 위해 죽은 신민(臣民)가운데 제사지낼 사람이 없어 구제받지 못하는 이가 많으니 이제 그들을 위해 진관사를 수륙도량으로 정하여 해마다 수륙재를 여노라하여 진관사 수륙재는 나라에서 행했습니다.

직접 태조 이성계가 행차했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며 6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후 억불정책에 따라 뜸해지다가, 일제 강점으로 금지되기도 하였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복원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1977년부터 자운율사스님의 지도와 무위당 진관스님의 원력으로 다시 진관사 국행수륙재가 이어오게 되었고, 20131231일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무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수륙재의 회향은 야단법석을 차리고 낮재와 밤재의 2부 구성으로 이틀 동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낮재는 아직 극락으로 인도되지 못한 영가들을 청해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산회상에서 다함께 가르침을 듣는 의식이며, 밤재는 지난 49일간 정성을 다해 올린수륙재의 공덕이 외로이 생을 마친 존재들에게 나아가 일체 세계의 모든 이들에게 두루 미치기를 바라는 의식입니다. 어쩌면 저희도 수륙재 원만회향을 위한 노력들이 불보살님과 닮아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수륙재가 저에게 있어 뜻 깊었던 것은 강주스님께서 회향을 함께해주셨고 염불시연대회에 참가한 저희 반 스님들이 바라작법과 소임으로 함께 동참하여 맹활약을 하며 많은 이들에게 신심을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수륙재의 길고 긴 여정을 마치는 봉송회향이 끝나면 대중들은 경내로 모여 원만회향을 기뻐하며 삼회향놀이로 마무리합니다.

일찍이 나옹화상은 어두운 세상, 밝은 세상의 큰 도량이며 티끌마다 세계마다 두루 미치는것이 수륙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만큼 수륙재의 봉행과 동참의 공덕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습니다.

모든 순간순간이 뜻 깊고 중요하지만 저는 회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륙재의 기도는 준비부터 시작됩니다. 봄에서 여름은 도량을 장엄하는 한지를 염색하며, 여러 장엄, 기물, 유물을 점검하며 지나갑니다. 이때가 회향을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끝이 중요하듯 시작도 중요했습니다. 강주스님께서 과정을 즐기면 보살이 고 결과를 즐기면 중생이라고 하셨듯이, 모든 준비하는 순간순간이 사실 회향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회향은 모든 일은 시작만큼 잘 끝내는자 하는 것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잘 마무리 하지 못했습니다. 절실히 느낀 때는 겨울, 봄 작은 찰중소임을 살면서 부터였습니다. 시작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소임의 기간이 길었던 만큼 같이 살고 있는 스님들의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오직 라는 것에 집착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소임을 마쳤으나 무엇인가 찝찝하고 좋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여름철이 되고 방학을 하여 집에 갔을 때 사형님들과 차담을 하던 중 사형님의 도반스님이 강원 때 상반스님과 사이가 좋지 못한 채로 그렇게 졸업을 하고 인연이 끝난 줄 알았는데, 선방 결제 때 가는 곳마다 만나게 되었고, 소임을 같이 살게 되었다고 하며 인연 회향을 잘 마쳐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형님께 제 이야기를 하였고 형님은 우리의 윤회하는 인연이 여기서 끝이라면 괜찮지만, 우리는 윤회하고 인연을 잘 회향하지 못하면 더 좋지 않은 인연이 되어 회향하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돌고 도는 윤회 속에 우리의 회향은 끝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 속에 저는 오늘 차례법문을 하며 또 한 번 원만회향을 하고자 합니다. 운문사의 4년 동안 겉으로는 성장하였지만 내면의 저는 아직 철없는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많이 성장했나요? 만약 제가 강원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 이 모습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강주스님께서 치문 첫 수업에 들어오셔서 막내를 잘 키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배울 것도, 익혀야할 것도 많은 저이지만 운문사 회주스님, 강주스님 여러 어른스님들과 대중스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가 이렇게 크지 못했을 것입니다. 화엄을 모두 함께 잘 회향하여 앞으로 만나 회향할 인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반스님들과 도반스님들! 저는 수륙재를 준비하면서 도반스님들, 하반스님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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