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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명행족 - 사집반 정현

가람지기 | 2018.12.07 21:41 | 조회 618

              

법문하기 딱 좋은 계절 차례법문을 하게 된 사집반 정현입니다.

많은 불교경전에서는 부처님을 불(), 붓다, 석가모니 등 많은 다른 이름으로 칭하고 있습니다.

그 중 경전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세존(佛世尊)부처님을 대표하는 열 가지 명호이며 여래십호라 합니다.

 

오늘은 제가 이 여래 십호 중 명행족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대반열반경에서 명행족에 대해 이렇게 설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명행족(明行足)이라 하는가. 명은 한량없는 선한 과보를 얻는다는 말이요, 행은 발[脚足]이란 뜻이며, 선한 과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말함이요, 발은 계율과 지혜를 이름함이니, 계율과 지혜의 발을 의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므로 명행족이라 하느니라.

또한 불설십호경에서는 왜 명행족이라 합니까?”라며 아난이 묻자 ()은 천안명(天眼明)숙명명(宿命明)누진명(漏盡明)을 말한다. 행족(行足)이란, 여래는 몸과 입과 뜻의 업을 만족하게 잘 닦아 바르고 참되고 청정하다는 것이다. 큰 가사와 발우 등이 있더라도 자재하게 관조(觀照)하여 애착이 없으며, 스스로의 원력으로 일체의 행을 닦아 만족하게 한다. 이를 명행족이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경전에서 설한 명행족의 두 가지 뜻 말고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명행족의 사전적 의미는 지혜와 수행을 완성한 부처를 뜻하며 부처님께서 밝은 행을 구족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처님께서 설하신 명행족의 뜻과 사전적 의미의 명행족의 뜻을 바탕으로 하여 저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명행족의 뜻을 이해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래십호는 단지 부처님을 부르는 호칭만이 아니며 사전적 의미 말고도 여래십호 하나하나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숨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응공은 부처님은 공양 받아 마땅한 분이라는 뜻이지만, 그 말씀의 진의는 부처님께서 인연이 되어 만나는 모든 이에게 먼저 공양을 바치셨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따뜻한 말 한 마디의 공양, 사소한 배려의 공양, 부처님께서 자비로써 베푸신 공양이 온 우주에 넘치고 가득하니 당연히 부처님은 공양 받아 마땅한 분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응공이란 이름을 얻었다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명행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자의 해석이 필요합니다. 그전에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옛날에 사이좋은 사돈지간이 있었습니다. 한 사돈은 글을 잘 아는데 다른 사돈은 글을 전혀 모르는 까막눈이었습니다. 어느 날 큰 잔치를 앞둔 글을 잘 아는 사돈이 주위에 서신으로 소식을 알리던 중 까막눈 사돈에게 만큼은 다른 방법으로 소식을 알립니다. 그는 종이에 글을 적는 대신 소 다섯 마리를 그려 넣습니다. 그가 글을 써서 서신을 보내지 않은 것은 글을 모르는 까막눈 사돈이 누군가에게 글의 해석을 부탁이라도 하는 날이면 무식이 탄로날까봐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림을 본 까막눈 사돈이 미소를 지으며 까마귀를 그려서 답신을 보냈습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다섯 마리의 소는 오소잔치에 오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까마귀는 무엇일까요? 옛날에는 검은색을 감색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감새잔치에 가겠다는 뜻이죠. 여기에서 글을 아는 사돈은 부처님을, 까막눈 사돈은 우리 중생을 비유한 것입니다. 탐진치 삼독에 빠져 눈이 있어도 바로 보지 못하는 까막눈인 우리에게 구마라즙존자는 세상의 진리를 중국의 불경으로 옮기면서 표의문자인 한자 속에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을 묻어 두었습니다. 양파의 껍질은 벗기면 벗길수록 하얀 속이 나오듯 불경도 이와 같아 글자 안에 속속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숨어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해석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명행족의 명()은 밝다는 뜻입니다. ()와 달()이 함께하니 밝다는 의미인데 그렇다면 해와 달은 어떻게 밝은 것일까요? 해도 밝고 달도 밝으니 같이 있으면 더 밝다고 해석을 할 수 있을까요? 대낮에 해와 달이 함께 있을 때도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달이 떴다고 하여 낮이 더 밝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낮에 떠 있는 달빛은 햇빛에 감춰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해와 달을 함께 놓고 밝다고 하였을까요?

 

저는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해는 양의 성질, 달은 음의 성질을 갖고 있으며 같은 빛을 내지만 그 빛의 역할과 몫이 다릅니다. 해는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온도를 유지시켜주며 만물을 보듬는 따뜻한 빛을 내고, 달은 어둠을 밝히는 빛을 내며 음의 기운으로 만물을 길러줍니다. 이렇듯 해와 달은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상생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서로의 성질이 너무나도 다른, 그렇기에 양립불가능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간혹 함께 떠있기도 하고, 둘 다 밝은 빛을 내지만 동시에 함께 떠서 빛을 내지는 않습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빛나야 할 순간에만 밝은 빛을 내며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합니다. 동녘에서 해가 뜨면 달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줍니다. 또한 달이 솟아오르면 해가 서쪽으로 줄행랑칩니다. 해는 달이, 달은 해가 각자의 자리에서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줍니다. 서로의 빛이 더 밝고 훌륭하다 다투면서 서로를 시기질투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여기에 바로 명행족의 숨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밝은 행이란 나와 다른 상대를 부정하지 않고 그와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하며 묵묵히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께서는 제자인 제바달다가 자신을 살해하고 교단을 장악하려 악행을 여러 번 시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마음으로 품으시고 항상 제바달다를 근심하셨습니다. 제바달다의 악행을 하늘땅이 보다 못해 지진으로 땅을 갈라 그를 지옥에 떨어져 죽게 만듭니다. 죽는 최후의 순간 제바달다는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라 부르짖으며 진심으로 참회를 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토록 부처님을 근심케 한 제바달다지만 오히려 법화경 제바달다품에서 부처님께서는 제바달다에게 부처의 수기를 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바달다 선지식 덕분에 육바라밀 사무량심, 삼십이상 팔십종호, 금색의 몸과 십력, 사무소외, 사섭법, 18불공법등 여러 신통력과 도력을 구족했다고 말씀하시면서 천왕여래라는 부처가 될 것이라고 수기를 주십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시 당신을 위협했던 존재인 제바달다를 통해 게으르지 않는 수련과 수행력으로 묵묵히 자신을 훈련시킨 것입니다. 제바달다가 부처님을 향해 보낸 시기와 질투를 원수와 미움으로 상대하지 않으시고 자비로서 그를 품으시어 그로 말미암아 지혜를 얻으신 것입니다.

 

언제 어느 곳을 가든 나와 뜻이 맞지 않는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그가 사라지면 나는 살만하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를 부정하는 순간 나에게는 그가 아닌 또 다른 한명의 괴로운 존재가 마음에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그자만 떠난다면 나의 모든 근심이 사라질 것이라 믿었으나 그를 떠나보내고 나니 그보다 더 강력한 존재가 새로이 찾아와, 나는 괴롭습니다. 내 안의 그놈, 남을 미워하는 내안의 그놈은, 나를 속이며 사람들을 바꿔가면서 나로 하여금 누군가를 미워하게 만드니 상대를 미워하는 나의 잘못이지 상대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학교, 직장, 출가하여 대중생활을 하는 속에서도 나와 뜻이 맞지 않는 제바달다는 꼭 한 명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대중 생활을 하면서 저에게도 뜻이 맞지 않는 제바달다들이 있습니다. 이 스님 욱해서 싫고, 이 스님 바른 소리 잘해서 싫고, 이 스님 이기적이라서 싫고, 이 스님 뭐든지 잘해서 싫고, 이 스님은 게을러서 싫고……. 이렇게 나와 다른 도반스님들을 마음속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싫다고 버리고 또 버리고 다 버리고 했다면 저는 외톨이가 되어 나중엔 미워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 결국 저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명행족이 되려면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함께해야 합니다. 명행족은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할 때 비로소 밝아진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나에게는 맞지 않는 사람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맞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대중생활을 하는 우리 스님들은 너와 내가 따로 없는 이웃이며 동반자인 것입니다. 상대가 아닌 우리가 되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나아갈 때 우리는 부처님과 같은 밝은 행을 실천하는 명행족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스님들 오늘부터 우리 함께 부처님과 같은 명행족의 삶을 살아보지 않으시렵니까?

 

이상으로 차례법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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