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차례법문 - 치문반 보현스님

가람지기 | 2019.07.06 10:37 | 조회 1291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보현입니다.

먼저 이 자리를 빌려 저를 사람 몸 받아 태어나게 해주신 속가 부모님께 감사함을 전하고자 합니다. 사람 몸 받기가 얼마나 어려우며 또한 부처님 법 만나기는 더더욱 어렵고 스님이 되는 것은 이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이렇게 완벽한 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신 속가 부모님께 너무 감사합니다.

 

이러한 복을 받은 제가 출가할 마음을 먹고 준비하면서 속세에서 살아온 햇수만큼 크고 작은 인연과 소소하게 지어온 삶의 모든 것들이 무거운 짐이 되어 버리고 또 버리는 과정에서 순간 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내 삶이 어떤 선택과 행을 짓는가에 따라서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출가란 단지 그 동안 지어놓은 인연을 버리고 몸의 모습과 살아가는 환경만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태에서 막 태어난 갓난아기처럼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다시 새 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엄마라는 말을 하게 되고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수 만번의 반복된 듣기와 발차기 연습을 해야만 엄마라는 한 마디의 말과 앉고 서면서 한두 걸음발을 떼고 자아가 형성되어 갑니다.

 

이처럼 저희 22명의 치문반 역시 부처님의 근원에서 운문사라는 아름다운 천상계와 같은 곳에 머물며 원력보살이신 어른스님들을 부모로 삼아 그 뜻을 이어받았습니다. 또한 저희들의 거울이 되어주시는 상반스님들을 스승으로 모셔 수만 번의 습의와 훈계를 받으며 승려로서의 모습이 갖추어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싹트는 봄철에 운문사에 입학하여 첫 철을 무탈하게 지냈습니다. 첫 철에는 장검사가 있었습니다. 습의 과정을 거치면서 처음으로 교화부라는 곳에서 훈계를 받게 되던 날, 걱정을 듣는다는 생각에 우리 치문반 도반들은 불안과 초조함으로 긴장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화엄반 스님들의 걱정을 들으니 어느덧 긴장감은 사라지고 상반스님들이 저희들을 정성어린 마음으로 품어주는 것이 느껴져 감동하였습니다. 물론 아주 따끔한 훈계도 곁들여서 말입니다.

 

아마도 이런 훈계가 없었다면 저희들은 그 동안의 익숙했던 생활습관에 젖어서 삼시세끼 먹고 쓰고 하는 모든 것들을 당연한 것처럼 알고 시주물에 대한 깊은 마음을 잊고 생활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반스님들은 저희들의 모습을 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일깨워 주셨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훌륭한 어른스님들 밑에서 교육을 받으며 저희들이 마음을 닦아나간다면 어찌 도를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저는 도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좁고 얕은 소견으로 나에게 없는 특별하고 뛰어난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아니라 머터러운 생활습관들을 반복되는 노력으로 설계하고 수승한 위의를 갖추어 나가면서 도반들과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친절을 베풀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진실로 참회하는 마음. 이러한 것들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을 때, 저는 그것이 바로 도를 이룬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경문에 도불원인 인자원의 道不遠人 人自遠矣

아욕인 사인지의 我欲仁 斯仁至矣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도가 사람을 멀리하지 않고 사람 스스로 도를 멀리하며, 내가 어질고자 하면 어진 마음이 따라온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처럼 특별한 무언가가 아닌 나 자신을 갈고 닦아 완전한 내 것이 되었을 때 도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문수보살님의 칼이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을 향한다는 뜻과 보현보살님의 보살행이 바로 이 뜻이 아닐까 합니다.

 

이상으로 서툴고 두서없는 내용으로 차례법문을 준비했습니다. 경청해주신 대중스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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