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누구의 복으로 출가했나? - 대교과 서림

가람지기 | 2019.11.10 21:23 | 조회 1073


누구의 복으로 출가 했나?

대교과 서림

 

   안녕하십니까? 오늘 신중기도를 회향한 대교과 서림입니다.

어느 덧 가을빛에 곡식들은 여물어져 고개를 숙이고 정신없이 달려온 화엄반은 아름다운 회향을 위해 수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간은 흘러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제 차례법문의 순서가 오고서야 이제 이곳 생활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차례법문을 쓰는 동안 다시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대중 스님께서도 저를 통해 앞으로의 생활에 용기와 희망으로 힘든 상황에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힘차게 이겨 내시길 발원합니다.

   대중 스님들께서는 누구의 복으로 출가 하셨습니까? 화엄반이 되고서 긴장과 행복으로 물든 첫 수업 스님들은 누구의 복으로 출가했나?’라는 주지스님의 큰 목소리에 놀랐지만, 그 질문에도 놀랐습니다. 한 번도 누구의 복으로 출가 하게 됐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 후 교수스님께서는 수업시간에 자주 이 질문에 대해 이야기 하셨습니다. 처음엔 당연하게 저의 복으로 출가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에 점차 의구심이 들었고, 그 생각은 제겐 곧 화두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모든 답은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듯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저는 부족함 없이 부모님께서 주시는 사랑에 자연과 하나가 되어 세상에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연히 근처에 있는 절에 가시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불자가 되어 불교에 귀의 하셨고 그로인해 교회에 과자를 받으러 다니던 저희 삼남매는 자연스럽게 종교를 불교라고 생각하며 어머니를 따라 불교에 귀의를 하게 됩니다.

   새벽에 떠지지 않는 눈으로 가기 싫다는 저희를 끌고 절에 가는 어머니를 원망하면서 법당에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내일은 절대 오지 않겠어.’ 라며 매번 꺾기는 쓸모없는 다짐으로 108배를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저희를 잡고 말하셨습니다. ‘여자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 결혼 하는 것만이 꼭 답은 아니란다.’ 라고 말입니다. 어머니는 불교에 귀의 하시면서 세상에 부처님 법보다 좋은 것이 없다며 불교를 몰랐던 지난날에 대해 후회를 하셨습니다. 그러다 성지순례를 갔을 때 우연히 어머니께서 기와불사를 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삼. . 매 출. . . ! 충격이었습니다. ‘부모가 어떻게 자식의 출가를 발원할 수 있나?’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어머니의 정성스런 기도와 발원에 감동을 하셨는지 저희 자매는 어린나이에 스스로 자진 출가를 하게 됩니다. 삼남매의 출가를 발원한 어머니께 한편으로 서운했지만, 출가의 길을 떠나는 저를 보내며 우시면서도, 그 뜻을 끝까지 꺾지 않으신 어머니께 현재는 너무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출가 길에 올라 평탄대로일 것 같았던 절집 생활은 제 생각과는 너무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행자는 사람이 아니다. 처음 출가를 발원한 어머니보다도 충격적 이였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과거의 업, 현재의 업,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업을 닦아야만 했습니다. 사미니계를 받고 강원에 들어왔을 때, 모든 것이 의문인 상태에서 운문사에서의 생활은 지옥이었습니다. 걸 그룹도 아닌데 단체 생활은 왜 해야 하는지, 몸도 무거운데 일은 왜 이렇게 많은지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힘든 생활의 연속, 인생에 힘든 일은 한꺼번에 찾아온다는데 저의 치문, 사집 때의 삶이 딱 그랬습니다. 잘못된 실수와 오해들로 얼룩져갔고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어 무조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생각의 끝이 강원을 나가는 것이 답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대중의 돌아가는 생활과 저의 상이 그 누구도 아닌 저를 점점 지치게 했습니다.

   바늘하나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긍정적인 생각은 사라지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제일 밑바닥이라고 생각되는 한계에서 문득 떠오른 것은 힘들 때 기도하라고 하셨던 어머니 말씀이었습니다. 출가 전 교통사고로 죽기 직전까지 간 어머니께서 꺼낸 첫마디 말씀은 살아서 다행이다.’ 부처님 덕분이라며 힘든 상황을 기도와 긍정으로 바꾸시는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기도가 답이다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뭐든 잡히는 대로 시간만 나면 기도를 했습니다. 관세음보살보문품49, 신묘장구 대다라니300, 참회절기도, 법화경, 자비도량참법 등…….

   이 괴로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관음전에서 1000배를 마쳤을 때 안에서 말뚝 심지가 생긴 듯 마음이 단단하게 느껴지고 제게 일어 난 힘들고 마음이 아팠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상황은 그전과 달라지지 않았고 막막했지만 단단한 마음으로 생각을 다잡으니 긍정적인 마음들이 솟구쳤습니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안 될 건 없어’ ‘잘못한 것은 참회를 해서 바로잡고, 오해는 살면서 아니라고 보여주면 되지또 기도를 하며 느낀 것은 내가 누군가를 잘했다 잘못했다. 라며 심판할 수 없고,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아닌 신장님들께서 알아서 해결해주실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힘들었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봉정암의 깔딱 고개를 넘어서는 것 같은 그 때 그 기분 비로소 심신 출가한 것 같았습니다.

   그 후 시선을 남보다는 자신을 보는데 노력했고, 무엇보다 혼자서만 살 수 있을 거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렸습니다. 나를 보려고 할수록 내 자신의 나쁜 부분과 좋은 부분을 보며 좋지 못한 부분은 고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남을 탓하는 것을 멈췄습니다. 현재 누군가는 바뀌어 가는 저의 모습을 좋은 마음으로 바라보며 응원하지만 누군가는 좋지 않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탓하면서 내 인생을 남의 손에 쥐어주고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혼자 살 수 있다는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려 노력하니 그동안 제 꼴을 봐준 도반스님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그들과 함께 가는 즐거움을 알았습니다. 설탕을 먹어 봐야 단 것을 아는 것처럼 힘든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잘 보이고 그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현재에도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고, 남을 위한 것입니다. 내가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나임을 자각하고 더 나아가 다른 모든 이들이 부처임을 자각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통해 불행과 행복이 따로 있지 않다는 좋은 결과를 보여 줬습니다. 대중스님들께서도 마음이든, 몸이든, 생각이든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해 보세요.

   어머니의 작은 발원처럼 지금은 작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들이 나중에는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보세요. 불가능한 일들을 할 수 있다라는 가능성으로 내 자신을 발전시키고, 그 좋은 영향력으로 불자들에게 포교하면서 더 나아가 불교를 비방하는 이들 조차도 교화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어머니의 작은 발원의 씨앗이 싹이 나 현재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가듯이. 대중스님들께서도 이 소중한 모든 순간을 알차게 보내시기 바라며 이상으로 차례법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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